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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Nov 27. 2017

아름다운 동해를 마주한 하조대

강원도 양양군

           

하조대를 알려주는 바위

군대를 제대하고 단돈 20만 원 들고 전국 일주하면서 강원도 하조대에 올라 동해를 오랫동안 내려다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 이후 10년 가까이를 여유 없이 살아오면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급하게 발을 동동거렸을 뿐 무엇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도 하나 없이 불안하게만 살아왔습니다.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예전만큼 불안해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에 걸맞은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일상생활의 단조로움과 고단함을 여행을 통해 해소합니다. 여행을 떠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오는 짧은 시간이 저에게 삶의 활력을 줍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멋진 풍경과 재미있는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던 하조대는 저에게 휴식과 활력을 채워준 장소였습니다. 그 옛날에도 하조대는 삶의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명소로, 선조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선을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하륜과 조준 두 분이 이곳에서 말년에 은거했다 하여 두 분의 성을 따 하조대라 불렀다는 점에서 이곳의 자연경관이 매우 빼어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임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하조대를 방문하면 정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정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위에  암각 되어 있는 글씨입니다. 정자는 98년에 해체 복원된 반면 바위에 새겨진 하조대는 조선 숙종 때 참판 벼슬을 지낸 이세근이 쓴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더 높다 할 수 있습니다.





하조대에서 바라보는 풍경

하륜과 조준은 과연 어떤 인물들이기에 두 사람의 성을 딴 지명이 나왔을까? 하륜과 조준은 조선을 건국하고 이후 6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여 당대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큰 영향을 준 인물들입니다. 하륜은 고려 말 신돈을 비판하고 최영 장군의 요동정벌을 반대하는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강직한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의 뜻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륜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하륜은 선택의 운도 좋았습니다. 제1,2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을 지지하면서 권력의 중심이 되어 많은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하륜은 왕이 정국을 주도하는 육조직계제를 도입하고 신문고 설치와 저화라는 화폐를 발행하면서 조선 초기의 상황을 안정시키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특히 역사에도 깊은 조예가 깊어 '동국사략', '태조실록'을 편찬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됩니다.


조준은 고려 말 최영 장군을 도와 왜구를 토벌하는 등 공훈을 세우지만, 우왕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조선 건국에 동참하게 됩니다. 조준은 이성계와 손을 잡고 전제개혁에 앞장서면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조선 건국의 기반을 마련합니다. 이후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주면서 공신에 올라 하륜과 함께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특히 조선 시대 '경국대전'의 초석이 되는 '경제육전'을 편찬하는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조선 전기의 법체제를 완성합니다


이처럼 당대에 가장 큰 권력을 가졌던 두 분이 함께 은둔했던 장소이니 이 고장 사람들에게는 매우 자랑스러운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높은 절벽에 정자를 세우고 기념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조대를 통해 하륜과 조준을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동해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은 필연적인 흐름이 아닐까 합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면 언제나 마주하게 되는 고민이 있습니다. 동해 바다의 멋진 풍경을 눈에는 담을 수 있는데 사진으로 온전히 담을 수가 없어 늘 아쉽기만 합니다. 하조대에서 바라보는 동해는 에메랄드 빛으로 티브이에서 만나던 해외의 유명한 바다와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어 놀랍기만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평선으로 시선을 옮길 때마다 바다의 색깔이 달라지며 같은 모습을 가진 곳이 한 곳도 없었습니다. 또한 하조대에서 바라보는 동해는 해변에서 바라본 바다와는 다른 바다였습니다. 바다는 하나지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에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일까요? 하조대가 하륜과 조준에서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내려오지만 지명과 관련된 또 다른 전설도 내려옵니다. 하조대 인근에 건장하고 잘생긴 하씨 성을 가진 청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인근 많은 여성들이 흠모를 했지만 그중에서도 조씨 성을 가진 두 여성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여인들의 변치 않는 오랜 구애에 하씨는 한 여성을 선택하지 못하고 두 여인 모두를 함께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세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어 살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셋은 여기서의 삶을 마감하고 저 세상에서 함께하기를 약속하며 하조대 절벽에서 같이 바다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합니다. 흡사 영화 '글루미 선데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전설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의 삶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조대 무인등대

하조대 옆으로 무인 등대가 있는데 이곳은 필히 가봐야 합니다. 하조대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하조대와는 또 다른 자연경관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무인등대 위로 펼쳐진 다양한 무늬의 구름과 파란 하늘은 너무도 잘 어울리는 풍경을 선사해주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홍천을 들려 양양까지 오는 긴 시간 동안 지치고 짜증낼만한 어린 두 딸도 등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뛰어다니며 즐겁게 놉니다.


여행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에서 재미도 얻고 잊지 못할 추억도 남깁니다. 어린 두 딸들도 탁 트인 바다 풍경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전의 에피소드로 이미 즐거워져 있었습니다. 양양에 숙박시설을 잡지 않고 차에서 하룻밤을 잘 생각으로 떠난 여행이기에 창문에 붙일 모기장을 구매도 해야 했고, 아이들의 양치질과 세면을 위해 대형마트를 가야만 했습니다. 양양 근처의 대형마트를 검색해보니 하조대 근처에 있는 '롯데마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롯데마트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하조대에 왔지만 롯데마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를 달리면서 주변을 둘러봐도 대형마트가 들어설 입지공간이 보이지 않았지만 내비게이션이 잘못 알려줄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조대 주변을 샅샅이 돌아다녔습니다. 그 결과 롯데마트를 찾긴 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예상했던 대형마트가 아니라 해수욕장 끝에 튜브와 폭죽을 파는 작은 롯데마트가 있었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믿기지 않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아주 정확하게 목적지로 저를 데려왔으니 내비게이션을 탓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시 되돌아서 속초로 갈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힐 뿐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한 제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아이들은 차속에서의 지루함을 잊어버리고 생기를 되찾아 활발해졌습니다. 몇 년이 지나 사춘기에 접어들어 툴툴거리는 딸들에게 하조대 해수욕장의 롯데마트와 남들의 눈치를 살피며 대형마트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다 보면 어느덧 그 시절로 되돌아가 행복한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 등대

하지만, 아이들과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여행지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맞춘 여행과 내가 가고 싶은 여행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여행을 돌아오는 날까지 계속 가족들의 눈치를 살피며 숙박, 먹거리, 놀거리를 고민합니다. 아이들에게 여행을 맞추다 보면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져 어디를 가든 비슷한 볼거리와 놀거리로 특별함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굳이 가까운 근교를 떠나 멀리 여행을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듭니다. 그렇다고 어른들에 맞추면 아이들이 따분하고 지루함에 불평과 불만을 쏟아냅니다. 아이들이 여행에서 지루해하지 않도록 색다른 놀이와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끊입없이 두뇌회전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아이들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순간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나의 모습에서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가끔 만나게 됩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같지 않아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양보하면서 맞추어야 합니다. 물론 서로 배려만 할 수 없어 싸우고 토라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래도 여행을 다녀오면 이런 모든 일들이 공유되면서 가족이라는 틀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조대 무인 등대에서 나이가 많은 모녀를 만났습니다. 모녀를 보고 있자니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두 모녀는 먼 바다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같은 시간과 장소에 있어도 각자만의 시간과 공간에 존재할 수 있도록 여행은 선물을 선사해줍니다. 제 옆에 있는 두 딸은 지금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훗날 시간이 훌쩍 지난 후에도 가끔씩 여행을 같이 떠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때는 딸들에게 여행의 대부분을 맞추는 여행이 될 테지만 주도권을 빼앗기는 서운함보다는 기대가 더 큽니다. 과연 나와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허물없이 장난치다 싸울 수 있는 부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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