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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Oct 18. 2017

번잡함에서 고요로 바뀐 태백 철암탄광마을

강원도 태백시

            

박물관 들어가는 입구에 깔려있는 발판


태백에는 유명한 장소와 음식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 방영했던 '태양의 후예'를 촬영하던 세트장이 태백에 위치하고 있어서 유명세를 많이 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태백에 위치하고 있는 철암탄광 역사촌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잘 알지 못해 방문하는 이가 적습니다. 저도 태백에 방문했을 때 철암탄광 역사촌을 방문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번 고민했습니다. 태백 시내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태백 현지인 중에도 철암마을에 구경할 것이 많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더욱 망설였습니다.





실제 생활하던 건물 통째로 활용한 철암탄광 역사촌


철암탄광 역사촌을 갈 것인지 고민하다 철암마을로 출발하는 버스 운전기사분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봤습니다. 기사분이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르니 직접 가보시는 게 제일 좋지요.'라는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나니, 제가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는 기본을 잊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철암탄광 역사촌은 태백 여행 중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웠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잡화를 파는 동네 슈퍼가 아닌 전시관


버스에서 철암탄광 역사촌을 알려주는 안내방송을 듣고 하차했지만 눈에 보이는 광경은 일반적인 시골 동네 풍경이었습니다. 버스에서 잘 못 내린 줄 알고 고개를 꺄웃거려야 했습니다. 철암탄광 역사촌에서 村(촌)은 분명 마을이라고 알려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박물관으로만 생각한 저의 선입견으로 인해 겪은 혼동이었습니다.


결국 철암역에 들어가 역무원에게 철암탄광 역사촌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봐야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역사촌에서 역사촌이 어디냐고 묻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저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지 역무원분께서 친절하게 미술관과 박물관을 알려주면서 이곳에서 많이 듣는 질문이라고 답해주셨습니다.






철암역 뒤로 보이는 선탄시설


철암탄광 역사촌 맞은편으로 선탄시설이 보였습니다. 관광해설사분의 설명에 따르면 선탄시설은 석탄과 다른 광석을 분류하는 곳으로 선탄시설 위로 보이는 시커먼 것들은 석탄이 아니라 석탄에서 골라놓은 쓸모없는 자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해설사분의 설명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얕다 보니 해설사분을 통해 선탄이라는 말도 처음 들어봤습니다. 처음에는 선탄을 석탄을 알아들어서 해설사분에게 석탄을 저렇게 방치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나서야 선탄이라는 것을 자세하게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철암마을의 옛 모습 재현


역사촌에는 여러 주제를 가지고 전시관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첫 번째 들어간 곳은 옛 탄광촌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이었습니다. 탄광촌은 드라마에서나 접해봤을 뿐 실제로 방문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방송에서 너무나 자주 보았던 탓일까요? 6~70년대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을 많이 다녀서인지는 몰라도 전시관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옛 탄광촌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모습이 낯설지 않고 친숙한 것은 더 이상 제가 어리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철암탄광 역사촌을 다녀간 사람들의 낙서


철암마을이 21세기에도 과거의 번잡함 속에 삶의 활력이 넘치던 시절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낙서판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낙서판을 보니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철암마을에 남아있는 현지인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그 빈자리를 외지인들로 채워 마을에 삶의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저도 그 뜻에 일조하기 위해 낙서판에 메모를 남겨보려고 했으나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사진으로만 담았습니다.






과거 철암마을을 담아놓은 사진들


철암탄광 역사촌은 밖에서 보이는 낡은 건축물과는 다르게 실내가 너무 깔끔한 전시장이었습니다. 전시관에서는 철암마을의 옛 모습을 담아놓은 사진을 통해 관람객이 현재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모습과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분주하게 바쁜 점포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해설 사분에게 철암마을에는 예전에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을 들었지만, 제 눈에 비치는 과거 철암 마을은 번화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한적한 시골 마을로만 보였습니다. 아무리 봐도 과거에 활기 넘치던 철암마을이라는 말에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늘날  경제대국이라 불릴 정도로 발전한 대한민국에 사는 내가 전반전으로 생활수준이 낮았던 과거 대한민국과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비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번창했던 모습도 지금의 수준에서 보면 규모도 작고 낙후된 모습으로 비치어질 수밖에 없음을 뒤늦게서야 알았습니다.





옥상위 광부의 조각상


역사촌 건물 옥상에 올라가니 철암역 뒤에 쌓여있는 선탄을 바라보고 있는 광부의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광부의 조각상을 보는데 가슴속 어디선가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순간적으로 울컥했습니다. 광부는 저 선탄을 보면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젊은 시절의 넘치던 열정과 패기가 늙어가는 육체를 따라 쪼그라들고 사라져 버렸음에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빠르게 변화되는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이 사라져 가는 철암마을을 아쉬워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희망을 걸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짧은 지식으로 광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쭙지 않은 동정심으로 발현된 상상이라면 대한민국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분들에게 큰 실례를 끼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작가들의 예술 작품


역사촌에는 탄광의 역사만 담아두지  않고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탄광과 관련된 내용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작가들의 멋지고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예상치 못한 선물을 덤으로 얻는 기분이었습니다. 예술에 문외한이라 작품을 봐도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그렇기에 작품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탄광에서의 일을 마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마을로 달려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해석하다가도, 철암마을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끌벅적 활기가 넘치는 곳으로 변모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고 의미를 부여해보기도 했습니다.





설원의 태백산을 표현한 작품


전시관 중에는 추운 겨울에 푸른 잎을 다 떨구고 마른 가지만을 내놓은 채 매서운 한파를 견디고 있는 나무를 통해 태백산의 설경을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었습니다. 스피커에서는 한겨울 새벽에 태백산 장군봉에 서서 직접 맞아야 했던 매서운 바람소리가 쉬지 않고 나오며 제 귓가를 때렸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날 태백산 장군봉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추위에 벌벌 떨면서 얼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하던 새벽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생각만으로도 밀려오는 한기를 쫓기 위해 몸을 떨며 점퍼의 지퍼를 올려야 했습니다.






3D 입체 그림


최근에 입체 그림을 전문적으로 보여주는 미술관이 전국적으로 많이 있지만, 대부분이 유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백의 철암탄광 역사촌에서 입체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료라는 것에 놀랐고, 기대하지 않았던 3D 입체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두 번 놀랐습니다.





여러 번 뒤돌아보게 했던 조형물


또 다른 전시관에는 인체 부위가 서로 연결되지 나무 인형이 있었습니다. 인형을 통해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온전한 모습이 아닌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별 의미를 두지 않고 대충 둘러보고 나가려는 순간 그림자를 보였고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헉.' 소리가 났습니다. 늦게라도 알아차리길 잘 했다고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면서도, 일행 누구에게도 내가 이해한 것을 쉽게 자랑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일행을 따라나가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쉬움에 연거푸 고개를 돌려야만 했습니다.





마을 자체가 예술


역사촌을 나오니 나무로 된 전봇대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전봇대에 매달려 있는 아이가 한 손을 들며 반갑게 맞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철암마을 곳곳에 숨겨진 보물이 많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역사촌을 둘러보다 보니 배가 출출해졌습니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가게를 찾아보니 전봇대 뒤로 호떡을 파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파는 호떡을 먹었는데 정말 너무 맛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먹는 호떡이 맛있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호떡을 만들어 파시는 분의 음식 솜씨가 대단했습니다. 혹시 철암마을을 간다면 이 호떡을 드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영화 촬영 배경


철암역 선탄장 앞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영화를 촬영했던 장소로 현재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안성기와 박중훈의 제2의 전성기를 이끌어내며 '역시 믿고 보는 명품 배우'라는 평가를 받게 했던 작품으로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본 흥행 영화입니다. 영화 개봉 당시 많은 패러디를 만들게 했던 명장면이 포토존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이 이목을 끌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나서 보니 안성기와 박중훈 그림 뒤의 배경도 만화처럼 보입니다.





철암역 담벼락 문구


철암역 철길 담벼락에 쓰여 있는 문구에는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담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내용인 것 같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웠던 6~70년대의 삶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제성장이라는 네 글자에 자신들의 삶이 희생되어도 괜찮았던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의 삶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개인의 행복이 아닌 다른 것에 가치를 두고, 타인에게도 지금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분들을 보면 더욱 안타까움이 듭니다.





역사촌 뒷모습


상생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고 사치였던 시대를 살아온 분들이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삶과 가치만이 옳은 것이라 강조하며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부 어르신들의 생각을 억지로 바꾸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역사촌 건물의 뒷모습처럼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풍파를 겪으며 힘들게 살아온 어르신들입니다. 그분들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 도와주던 가치관과 국가관이 오늘날 부정된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행복이 많은 어르신들의 노력과 희생 속에서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의 말을 올리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세대 간에 삶의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데 한쪽에 무조건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은 서로에게 아픔을 주는 올바르지 않은 행위라고 생각해봅니다.





미쳐 보지 못했던 광부의 아내와 아기


역사촌 뒤편에는 전시장 안에서 보지 못했던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아기를 업고 탄광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어머니가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곳에 젊은 부부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없겠지만, 과거에는 많은 가족들이 살던 이곳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아침부터 시끄럽고, 탄광으로 떠나는 남편의 무사귀환을 위해 어깨를 주물러주는 아내들이 가득했을 겁니다.





신발 속 이물질을 털어내는 광부


역사촌 건너편에는 광부가 곡괭이질을 멈추고 식사를 하는 조형물이 있어 전시장을 비롯해 마을 전체가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문화마을로 꾸며져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광부 아저씨가 아이를 포대기에 업고 남편을 배웅하던 아주머니의 남편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현재에도 철암마을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역사촌 뒤에는 아직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철암마을이 있습니다. 철암마을이 벽화마을로 소개되고 있지만 실제로 마을에 들어가 보면 많은 폐가들이 존재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금할 수 없습니다. 벽화마을을 만드는 목적이 거주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철암마을은 제가 가본 벽화마을 중에서 가장 주거환경이 좋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오랜 세월 터를 잡고 한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외지인의 눈에는 불편하고 위험한 공간이라 생각하는 이곳에서 사시는 노인분들이 가파르고 위험한 계단을 오르내리며 작은 텃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철암마을의 벽화 그림


철암마을에는 많은 벽화들이 있었습니다. 밝은 색상으로 따뜻함과 희망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벽화도 있었지만, 쓸쓸하고 외로움이 느껴지는 벽화도 있었습니다. 벽화 속에서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자로서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의 발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탄과 나무, 그리고 가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유독 눈길이 갔던 곳은 연탄을 쌓아 올린 담벼락 밑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탄광산업은 사양산업이 되어 조만간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데, 아직 연탄이 꼭 필요한 사람들은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철암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연탄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연탄은 한평생을 먹고살 수 있는 일을 제공해주었으며, 겨울의 추운 날씨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이곳에 계시는 분들에게 연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철암마을에 있는 우물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나게 되는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렸는데 어르신들 모두 반갑게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셨습니다. 마을을 방문한 외지인들이 연신 사진을 찍으며 이야기를 나누면 불편할 만도 한데 싫은 내색을 한 번도 비추지 않아서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계시는 분들은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사시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을 둘러보던 중 우물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보았습니다. 어렸을 적 할머니가 살던 마을에 가면 맑은 물로 가득 차 있던 깨끗한 우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물에 있는 물을 아무도 길지 않아 녹조가 가득 차 있었고, 우물을 보는 저의 양미간을 찌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우물은 깨끗한 물로 가득했습니다. 어린 시절 우물을 길어 올리던 추억을 재현해보고 싶어서 두레박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두레박은 물을 조금도 담지 못하고 우물에 둥둥 떠있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서야 물을 끌어올리게 되자 왠지 모를 성취감으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꿈을 꾸는 철암마을과 전경


철암마을은 태백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여행지였습니다. 철암탄광 역사촌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고 있어 가족들이 함께 방문해도 공유할 것이 많은 곳입니다.


또한 태백에는 아직 두 곳의 탄광이 운영되고 있어서, 매일 1800톤 정도의 작업량을 소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만간 두 곳의 탄광이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탄광이 운영되고 그 속에서 광부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는 힘들기만 한 광부를 직업으로 삼아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철암마을을 방문하는 동안 무한도전이라는 방송에서 탄광 일을 체험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방송에 나온 광부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보다 국내에서 석탄생산이 중단되었을 때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없는 어려운 분들을 오히려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따스함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철암탄광 역사촌에서 제가 보고 온 것은 사람내음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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