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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Oct 13. 2017

꼭 올라가 봐야 할 제주도 아끈다랑쉬 오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의 수많은 오름 중 하나인 아끈다랑쉬 오름


제주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백롬담이라는 화산 분출구입니다. 그러나 제주도에는 백록담 이외에도 368개의 화산 분출구가 존재하는데 이를 제주도 말로 오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지리나 지구과학시간에 측화산 또는 기생화산이라고 배웠던 것이 바로 오름입니다. 이러한 오름을 통해 제주도가 한 번의 화산 분출로 이루어진 만들어진 섬이 아니라 수많은 화산 분출 끝에 오늘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억새 가득한 아끈다랑쉬 오름


제주도가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에는 오름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곳이었습니다. 제주도 택시기사들이 신혼부부들을 데리고 예쁜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서 방문하는 경우가 아니면 외지인들이 방문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름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가치가 높아지면서 오름만을 보기 위해 매번 제주도를 방문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름으로 올라가는 길


저도 제주도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몇 개의 오름을 올라갔습니다. 그중 제가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오름이 구좌읍에 있는 아끈다랑쉬 오름입니다. 아끈이란 말은 제주도 방언으로 '작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랑쉬 오름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끈다랑쉬 오름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제주도 방언으로 아끈다랑쉬 오름은 현지인이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운 외국어 같아서인지, 아니면 평소에 잘 듣지 못하는 우리말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름 자체가 예뻐고 제 마음에 쏙 듭니다.




 

하늘과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오름


아끈 다랑쉬 오름은 198m의 높이지만 차를 끌고 근처까지 갈 수가 있어서 실제 걸어서 올라가는 높이는 50여 m에 불과합니다. 오름 정상에 올라가면 억새로 뒤덮인 분화구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랑쉬라는 말도 분화구가 달처럼 보인다는 제주도 방언으로 아끈다랑쉬 오름을 풀이하면 '작은달처럼 보이는 분화구'란 의미가 됩니다. 이런 단어의 뜻을 몰라도 아끈다랑쉬 오름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쉽게 올라가서 제주도의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억새 속에 듬성하게 서있는 나무


아끈다랑쉬 오름에 올라가면 멋진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억새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넓지 않은 공간 속에 세상의 모든 자연이 가득 채워져 있어 내가 얼마 전까지 번잡한 세상에 있었던 사실도 잊어버리게 할 장소이기도 합니다. 아끈다랑쉬 오름에 있는 사람만이 이 세상에 남아있는 전부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작은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우도와 성산일출봉


오름 정상에 서서 저 멀리 바다를 내다보면 제주도의 명소인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입니다. 분명 저곳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인데 여기에서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태고적의 모습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곳에 오르면 한 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에 취하게 됩니다. 술에 취하면 숙취가 남아 몸이 괴로운 반면 아끈다랑쉬 오름에 오르면 자연에 취해서 다음에 또 오고 싶은 향수에 빠져 마음이 괴롭습니다.





웅장한 구름으로 뒤덮인 제주 하늘


제가 아끈다랑쉬 오름을 방문한 날은 유독 웅장한 느낌을 주는 구름들로 가득했습니다. 바다보다 더 넓고 거친 것이 하늘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듯 구름이 큰 파도를 만들어 하늘과 바다를 휘몰아치는 광경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장관이었습니다. 만약 오름 아래 지역에 있었다면 흔하디 흔한 구름 많은 하루였을 뿐 웅장한 하늘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아끈다랑쉬 오름에 있는 무덤


아끈다랑쉬 오름에 제주도 전통 무덤이 하나 있습니다.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비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덤 속 주인의 후손이 관리를 하는 것 같은데 과연 누구이기에 이곳에 묘를 만들었을까? 만약 후손이 지금도 관리한다면 아끈다랑쉬 오름이 공유지가 아니라 사유지인가? 사유지라면 누구나 방문할 수 있도록 개방한 것인지 궁금증에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납니다.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멋진 장소에 누워계시니 자연과 혼연 일치하여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아직 하늘로 안 가셨다면 이 멋진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며 삶을 정리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


아끈다랑쉬오름에 오르면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곳에 있었던 과거의 역사를 알게 되면 가슴이 무거워집니다. 다랑쉬오름 아래에는 20여 호가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농사와 목축을 하며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하게 살던 그들에게 1948년 큰 비극이 일어나며 마을 주민들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멀리 보이는 성산일출봉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 제주도는 광복에 대한 기쁨보다는 어려움이 더 많았습니다. 일본에서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로 일자리는 부족하고 식량은 부족해졌습니다. 더욱이 미곡 정책의 실패로 굶주림이 일상화되어 면역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많은 질병이 창궐하면서 제주도민은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1948년 비극의 시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민족을 배반했던 친일 순사들이 다시 미군정하에서 경찰로 복귀하면서 자신들의 과거 잘못을 덮고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제주도민들을 탄압하고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주도 4.3 사건이 시작된 사건이 1947년 3.1 운동 기념일 날 발생합니다. 경찰이 타고 있던 말에 부딪힌 아이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지만, 경찰들은 아이에게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지나가버립니다. 경찰들의 이러한 행태에 분노한 제주도민들이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경찰들은 사과는커녕 항의하는 군중에게 총을 난사하면서 6명이 죽고 8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아끈다랑쉬 분화구에서 바라본 세상


제주도에 있던 남로당은 이를 계기로 경찰에 반대하는 활동을 주도하며 제주도 직장의 95%가 참여하는 파업이 진행되게 됩니다. 미군정은 파업에 동참한 모든 이들을 공산당으로 간주하고 강경진압을 하면서 많은 제주도민들이 붙잡혀 고문과 탄압을 게 됩니다. 1년 동안 끌려간 사람만 2,5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일반 민간인들까지도 공산당으로 몰려 잡혀갔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인 5.10 선거가 치러졌고, 제주도 2개소만이 투표수를 채우지 못해 무효처리가 되면서 이승만 정부에 큰 부담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9월에 북쪽에서도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자 이승만 정부는 공산당 토벌의 본보기로 제주도에 군대를 파견하며 계엄령을 내리게 됩니다. 해안선에서 5km 이상 들어가면 폭도로 규정하며 제주도인을 대량 학살하게 됩니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집에 거주하지 않으면 부모 형제를 대신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고 벌이게 됩니다.  6.25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4.3 사건으로 형무소에 갇혀있던 제주도민을 즉결심판으로 죽이면서 공산당만이 아니라 무고한 제주도민까지도 학살하면서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의 과오로 남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다랑쉬 오름


다랑쉬 오름 아래에 살던 마을 주민들도 제주도 4.3 사건 때 산 아래로 내려갈 것을 요구받지만 오랜 삶의 터전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경찰과 군인들이 다가오면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은 입구를 가진 다랑쉬굴에 들어가 숨으며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위태로운 줄다리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경찰에게 발각이 되어버립니다. 경찰들은 굴 밖으로 나오라고 했지만, 두려움에 떨던 마을 주민들은 나오지 못했습니다. 경찰들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자 굴에 연기를 피어 불어넣었습니다. 그러나, 경찰들의 보복이 더 두려웠던 주민들은 동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흩날리는 억새


그러나,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 경찰들이 이 사실을 숨기고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1992년에 이르러서야 다랑쉬 굴에서 최후를 맞았던 주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다랑쉬 마을에 내려가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은 7살부터 50대에 이르는 아이와 여성들이 포함된 평범한 제주도 주민들이었던 것입니다. 마을로 돌아가고자 했던 그들의 꿈은 시신으로 발견되고 나서도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다랑쉬마을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 4.3 사건의 희생자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사과하며 추도식에 참여했습니다. 대통령의 사과와 역사 교과서에 정부의 잘못을 기록함으로써 70여 년 전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3~8만여 명의 제주도민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수십만의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끈다랑쉬 오름에서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자연의 흐름처럼 제주도 4.3 사건의 진상이 어서 빨리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바로잡고 다시는 잘못된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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