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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Dec 29. 2017

박물관에서 연극을 보다.

전라북도 군산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전경

교사 연수를 받을 때에 군산과 전주에서 올라온 두 분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두 분은 수업이 끝나고 술 한잔을 기울일 때면 늘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의 자랑으로 티격태격하셨습니다. 전주와 군산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여행정보를 얻는 데 있어 귀를 쫑긋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곳 모두 좋은 도시이지만 군산이 전주보다  부분을 찾는다면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보존하고 후세에 역사를 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군산이 과거 일제 건물을 무조건 파괴하는 것보다 교육적으로 재활용하는 측면이 좋았습니다. 특히, 박물관과 전시장들이 연계되어 있어 관람을 용이하면서도, 스스로 보고 깨우칠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은 제가 다닌 어떠한 박물관보다 지역사회와 연계가 잘 되어 있으며,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장소였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며 만나는 군산 옛 모습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은 2011년에 개관되어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그 가치는 결코 낮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군산의 전체적인 모습을 전망할 수도 있으며, 근현대사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하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근대역사박물관을 입장할 때 패키지 입장권을 발급받으면 스탬프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종이를 줍니다. 스탬프 도장을 찍는 종이에는 군산에서 꼭 봐야 하는 중요 관람지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스탬프 도장을 찍으러 다니기만 해도 군산 여행을 알차게 할 수 있습니다. 스탬프를 다 찍으면 손바닥 크기 정도의 봉투에 담긴 보리를 나누어줍니다.


저희 부부와 큰 딸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체험으로 치부해버리고 도장을 찍지 않은 반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작은 딸만이 스탬프 도장을 열심히 찍은 결과 혼자서만 보리를 받았습니다. 작은 딸이 보리를 받아서 좋아하자 큰 딸의 얼굴에는 아쉬운 표정이 묻어났습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묻어난 것은 큰 딸만이 아니었습니다. 집사람과 저는 네 명의 가족이 스탬프를 찍었다면 얼마를 버는 것이었는지를 계산하면서 후회를 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집으로 오면서 부부간에 순수하지 못한 모습을 이야기하며 반성도 하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1층에 재현해놓은 어청도 등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1층에는 항구의 도시답게 어청도 등대를 재현해 놓고 있었습니다. 어청도 등대는 일본이 청일전쟁 이후 중국항로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1912년에 세웠습니다. 일제에 의해 지어졌지만 누가 세웠건 등대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누구에게 만들어졌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오늘날까지 어청도 등대는 먼 바다에 빛을 보내며 수많은 배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100년 이상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의 할 일을 하면서 모든 역사를 지켜봤던 어청도 등대는 현재 문화재로 등재된 것을 스스로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1층은 해양 물류관으로 구성되어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걸쳐 군산이 가진 해안도시라는 역사와 특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사시대는 간략한 설명을 적어놓은 패널과 긁개와 같은 뗀석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는 중국과의 국제교역을 하던 모습을 알리는 설명과 함께 항아리와 토기들을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군사시설인 진이 설치되고, 군산의  대표적인 씨족마을과 문중을 소개하며 군산 오일장이나 토지매매 문서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략한 설명과 최소한의 유물들로 큰 감흥을 일으키기보다는 군산이 예로부터 유서 깊은 도시였음을 알린다 정도로만 느껴졌습니다. 1층에서 제일 볼만한 것은 찾는다면 재현해놓은 조운선입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상선들이 군산을 드나들다 난파되어 가라앉은 해저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3층에서 내려다본 금강하구

조금은 실망스러운 1층이었다면 가장 흡족한 곳은 3층이었습니다. 3층에 올라가면 금강하구를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동전을 넣지 않아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망원경 여러 대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장소에서 망원경에 동전을 넣도록 하여 수익을 창출하는데 반해 관람객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군산하구둑을 보고 있자니 일제강점기 시절 많은 쌀들이 이곳에서 일본으로 실려나갔을지 상상되었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미곡 사진이 떠오르며 씁쓸함이 밀려왔습니다.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많은 쌀들이 이곳에 모여 제값도 받지 못한 채 일본에 헐값으로 팔려나가면서 많은 선조들은 배를 곯아야 했습니다.


현재 군산하구는 일제강점기 시절보다 활기를 띠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절대적인 평가를 해본다면 1900년대 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겠지만, 상대적인 평가를 해본다면 오히려  퇴보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광복 이후 영남권의 발전에 비해 호남권은 매우 더디게 발전했습니다. 지금도 전라도 지역의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이전하면서 지역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곳도 부산같이 많은 배들이 드나들면서 부산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군산시내를 재현한 3층

전망대에서 금강하구를 바라본 후 들어선 근대 생활관은 유물들이 유리벽에 가로막혀있는 정적인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3층 근대 생활관은 모든 사람들이 직접 들어가 만져볼 수 있고 아이들이 체험하며 놀 수 있는 동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체험을 즐기고, 어른들은 사진을 찍으며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재미있는 박물관이었습니다. 전국에는 60~70년대의 옛 건물을 재현해놓은 박물관은 많이 있지만, 일본가옥들이 많이 있던 100여 년 전의 일제강점기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은 이곳이 처음이어서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3층을 관람하던 중 재물을 보관하는 금고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무거운 쇳덩어리로 만들어져 있어 두 손에 힘을 주고 아무리 밀어도 꿈쩍하지 않는 금고를 보면서 조정래의 '아리랑'이라는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아리랑' 소설에서 일본인 지주들이 한국인들을 착취하고 빼앗은 재물을 금고에 보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독립군들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지주의 집을 급습하지만, 금고를 열지 못해 애를 먹는 대목을 제대로 감정 이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금고를 보고 만져보니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애를 먹었을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직접 보고 체험을 하는 것이 최고의 학습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시민연극단의 재연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연극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갔지만, 운이 좋게도 일제강점기의 모습을 재현하는 연극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보았던 많은 연극들 중에서 단연코 최고라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좋았습니다. 무대와 관객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호흡 하나까지도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같이 호흡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연극을 하시는 분들은 전문적인 연기자들이 아니라 군산에서 일상생활을 하다가 동호회처럼 활동하는 아마추어들입니다. 그렇기에 연기가 조금은 부족할 수는 있지만, 보는 내내 단 한순간도 몰입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연극의 내용은 박물관 건물에 주제를 맞추어 진행되었습니다. 주제를 나누어보면 군산에 모여들어 쌀값을 가지고 투기를 하다 패가망신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젊은이가 강제 징병되면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는 모습이 재현됩니다. 자식들을 빼앗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보다도 소중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는 배를 향해 애타게 울부짖다 쓰러지는 한국인이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일제의 노동력 착취에 항거하다 일제 경찰에게 얻어맞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장면으로 연극을 막을 내립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관람객들은 일제에게 한국인이 얻어맞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울분을 토해내야 했습니다. 끓어오르는 울분은 나누어 받았던 태극기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으로 승화될 수 있었습니다. 저도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관람객  모두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 하나가 되어 만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 한동안 끓어올랐던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3.1 운동 당시 많은 선조들이 만세를 부를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품이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현재의 우리도, 미래의 후손들도 선조들이 그랬듯 같은 상황이라면 똑같이 할 것이라는 확신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2층에 위치한 특별전시관

2층에는 군산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들의 보물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특별전시회였는데 지역 사찰들의 보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군산의 애향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군산이라는 특수성을 부각하여 지역주민들의 애향심을 높일 뿐 아니라 타지의 관람객들에게도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물론 자료풍부하지 않다는 점은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만들어가는 것인 만큼 미래가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군산에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도 있어서 일제강점기 시절 군산 인근의  조선 사찰들이 어떻게 대응하며 버티고 변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기도 했습니다.





군산 출신의 국가유공자증서

2층에는 군산 출신의 국가유공자를 기록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수많은 것을 희생했던 독립운동가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계시지만 우리는 그들을 대부분 알지 못합니다. 알려진 독립운동가보다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너무나 많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군산 출신의 국가유공자분들의 사진과 더불어 그분들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해 놓고 있었습니다. 간혹 제가 아는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처음 들어보는 분들이었습니다.

잊히는 것이 너무 쉬워진 세상이지만 이렇게 기록되고 사람들에게 알려짐으로써 우리는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과 행동을 말입니다. 그리고 것이 씨앗이 되어 또 다른 애국자를 만들어내리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2층 독립영웅관이 너무 좋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보다 더 많은 유공자분들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데 국가유공자증서를 보다 보니 대부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이름만 보였습니다. 그냥 스쳐지날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역사적으로 영남에 비해 호남이 차별받아 온 과정과 결과물로 보아야 할지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지역 불균형의 한 측면이라면 참으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의병들과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지만, 호남지역은 그중에서도 더욱 치열했던 현장이었습니다. 조선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지역이기에 수탈을 더 많이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탈과 억압이 강해질수록 그에 대한 저항이 더 강했던 지역이 호남입니다. 그래서 동학농민운동이 전라도에서 시작되었으며, 일제가 의병을 소탕하는 남한대토벌 작전을 벌인 곳도 전라도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나라를 위해 애쓰셨던 분들이 기억되고 추존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공간을 박물관에 마련하고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게 만든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앞 임병찬 동상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평가한다면 더 많은 유물과 자료가 보충되어야 하는 숙제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산 시민연극단과 연계하여 관람객들이 과거로 돌아가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동떨어진 박물관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운영되는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좋은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향토사학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를 발굴하고 찾아내어 세상에 내놓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특히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방문하신다면 토요일 1시와 2시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관람객과 함께하는 연극이 매일 열리는 것이 아니라 토요일 1,2시에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들과 군산을 여행한다면 꼭 토요일에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분명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좋은 경험과 함께 교육적 효과를 얻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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