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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Sep 07. 2017

시민에 열려있는 서울 현충원

서울특별시 동작구

충성분순대

현충원은 많은 국내외 저명인사들이 방문하면서 언론을 통해 자주 비추어지다 보니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현충원이 어떠한 곳이며 무엇이 있는지를 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어려운 장소이기도 하죠.





현충원 묘역


국립현충원 시작은 6.25 전쟁 때 너무나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면서 육군묘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각 군마다 묘지를 만들 경우 전쟁으로 어려운 재정 속에서 비용이 과다하게 많아진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었습니다. 여러 논의 끝에 1955년 국군묘지관리소를 발족시키고 서울 동작구에 현충원의 위치를 선정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유해를 모셨습니다. 이후 현충원이 국군 및 순국선열과 국가유공자가 안장될 수 있도록 확대 개편되면서 지금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이 안장되고 있습니다.





호국종


현충원의 호국종은 1973년 재향군인회에서 기증한 것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호국종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평소에는 타종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6.25 추념행사 때 6.25 전쟁 참전국 16개국과 의무 지원했던 5개국, 그리고 우리나라를 더한 22번을 타종합니다.






외국인 묘소


외국인 묘소에는 화교인 지앙훼이린과 웨이시팡 두 분과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지앙헤이린과 웨이시팡은 6.25 전쟁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을 수호하였고 이후 사회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스코필드는 캐나다인으로 3.1 운동 당시 파고다공원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우리 민족과 함께 불렀습니다. 이후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자 3.1 운동을 사진으로 남기며 전 세계에 우리의 독립 열망을 널리 알렸습니다. 해방 후에는 서울대 수의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의학을 비롯한 교육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살아생전에는 스코필드보다 석호필이란 한국 이름을 더 좋아했으며 임종 시에도 한국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까지 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한 분이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충원 태극기


현충원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태극기가 있습니다. 단단하고 강인한 대리석으로 만든 태극기를 보며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당당하게 세상의 중심축으로 어려운 국가를 도와주며 홍익인간의 뜻을 펼쳐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충열대


애국지사 묘역에는 일제 강점기로부터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앞장섰던 애국지사 214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많은 애국지사를 다 모실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운 면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들을 기릴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애국지사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애국지사 위패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이면서도 이곳에 있는 애국지사 위패 중 모르는 분들이 많아 너무나 창피하고 송구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애국지사 위패를 보면서 나 스스로 얼마나 부족한지를 느끼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뜻과 행동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분들에 대해서도 더 많은 공부를 통해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현충원 묘역


현충원을 둘러보면서 많은 묘역을 봤습니다. 이곳에 묻혀있는 수많은 애국지사와 순국하신 국군 장병분들 모두를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분들이 계셨기에 현재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음을 잊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 묘


국립현충원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묘소가 있습니다. 최근 돌아가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역에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로 정의가 내려져 있었습니다. 1928년 태어나 2015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많은 일들을 하시며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IMF라는 국가부도라는 위기를 가져오는 잘못을 초래하기는 했어도 오늘날 지방자치, 역사 바로 세우기, 문민정부라는 큰 업적을 세웠음을 잊지는 않아야겠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기 자유로운 정치 풍자가 가능했다는 점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우리는 얼마 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죠.




영현 봉안관


영현 봉안관은 순국선열의 안장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제가 방문했을 때에도 장례를 치르는 유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현충원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을 평소에 하지 못하던 저로서는 큰 놀라움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충원은 멈춰진 공간이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기려지는 진행 중인 곳이었습니다.






현충원 매점


현충원에는 간단한 간식거리와 사발면을 파는 매점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현충원 내에는 차량 주차가 무료이며 주차장 외에도 많은 곳에 주차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가족들과 간단한 도시락을 싸와서 여유와 휴식을 취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충원은 시민들이 쉽게 찾아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문화가 대중화될 때 우리는 순국선열 한 분들의 뜻을 기리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무덤입니다. 1917년 태어나 1979년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많은 업적과 잘못을 만들어내신 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죠. 경제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분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반면 인권탄압과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독재라는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장군 1 묘역


장군 1 묘역에는 6.25 전쟁과 월남전, 그리고 대간첩작전 중 순국했던 군 장성들의 묘가 있습니다. 묘비에는 다양한 글들이 실려있습니다. 고인에 대한 회상부터 그리워하는 내용 등 다양합니다. 묘비에 적혀있는 글귀들을 읽으면서 걸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가족 중 현충원에 안장되는 분이 있다면 묘비에 무엇을 적을 것인가? 그 묘비를 읽으며 후손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상상해봅니다.





장군 1 묘역


장군 묘역은 다른 묘지와는 격이 다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나라가 아닌 서양에 있는 묘지를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장군 묘역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에 올라오면 국립현충원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벚꽃이 한창 피어있을 때에 방문하신다면 이곳은 반드시 들려야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장군 묘역에서 바라본 한강


장군 1 묘역에 서면 현충원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모습도 장관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에는 날이 좋지 않아 멀리까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컸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 다시 한번 장군 묘역에 올라와야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장군 1 묘역을 지나 아래로 내려오다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가 있습니다. 1924년에 태어나 대통령 시절 IMF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어 한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업적을 이루기도 했지요. 그러나 북한이 핵을 만들 수 있게 지원을 했다는 비판을 일부 사람들에게 받기도 합니다.





창빈 안씨의 능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를 참배하고 내려오는 도중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왕릉이 있어서 깜작 놀랬습니다. 현충원 내에 있는 왕릉의 주인공은 선조의 할머니이자 중종의 후궁이었던 창빈 안씨의 능입니다. 능이 크지는 않지만 왕릉의 격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충원이 조성하면서도 창빈 안씨의 능을 이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모습에서 현충원에 대한 저의 평가가 높아졌습니다. 현충원을 조성하기 위해 능을 옮겼다면 웃기는 일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할아버지를 부정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라.' 이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습니다. 현충원에 위치한 능을 의아하게 바라보기보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속성으로 이해하고 보면 좋겠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


현충원에 있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묘역입니다. 초대 대통령답게 다른 대통령 묘보다 가장 규모가 컸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875년에 태어나 1965년 하와이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대통령 시기 교육에 많은 힘을 기울였으며, 미국을 통한 안보보장과 원조를 이끌어내어 경제적 부흥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권탄압과 독재라는 측면에서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과를 범하기도 했죠.





학도의용군 무명용사비


현충원 내에는 6.25 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어린 학도의용군을 위한 장소도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희생되었던 학도병의 이야기들은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죠. 특히 수업시간에 국사교과서에 실려있는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을 때면 많은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학도병이 자의 또는 타의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논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고 반성해야겠지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데 우리 모두가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현충원 내 군인


현충문을 지나가는 도중 헌병의 절도 있는 행진을 보았습니다. 군인들의 행진은 언제 보아도 멋있는 장관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군대 열병식을 자주 불 수 있었습니다. 저와 다른 세대를 살아가는 딸은 군대 열병식을 자주 보지 못했기에 신기하면서도 멋져 보였는지 한동안 눈을 띄지 못하더라고요.





현충문


현충원의 가장 백미는 현충문과 현충탑일 것입니다. 국내외 인사들이 현충원을 방문하여 참배를 올리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현충탑


현충탑은 서울현충원을 상징하는 탑으로 현충원 어디에서나 잘 보입니다. 현충탑 내부에는 위패봉안관과 납골당이 있습니다. 누구나 들어가서 순국선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고마움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니 꼭 들려봐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이곳을 방문한다면 텔레비전에서 보던 곳을 직접 봤다는 것만으로도 큰 교육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충탑 아래 경례하는 할아버지


현충탑 아래에 도착했을 때 앞서 걷던 몸이 불편했던 할아버지가 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상이용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나라를 생각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현충탑 내부


탑 내부에는 들어서자 커다란 조각상이 보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난을 상징하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하여 서로 의지하고 부축하며 나아가려는 우리 민족을 형상화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의 땅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며 의지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갈등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상생을 이곳에서는 꼭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충탑 지하의 납골당


순국선열들의 납골과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모습을 통해 숙연해지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누구나 다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외국인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모습을 볼 때 놀랍고 부러웠으며 반성도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장소들이 우리 곳곳에 많이 있지만, 정작 그곳에서 한국인을 찾기 어려운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장소에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것을 볼 때마다 감사하면서도 고개가 숙여집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들이 알려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순국선열 이름과 추모 꽃


순국선열 한 분들의 유품이나 추모하는 물품을 보면서 현충원은 과거의 순국선열을 모셔놓은 곳이 아니라 지금과 앞으로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모든 한국인들을 위한 성역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현충원이 특별한 날에만 가는 곳이 아닌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소여야 합니다. 현충원을 편안하게 방문하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멋진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충원은 시민 누구나 찾아올 수 있도록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 않습니다. 현충원 곳곳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니 편안하게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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