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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Sep 02. 2017

신라가 영원히 존속되길 바랬던 감은사와 문무대왕릉

경상북도 경주시

               

감은사지 석탑


경주 시내에서 외곽으로 빠져 동해안으로 가다 보면 감은사지 3층 석탑을 만나게 됩니다. 감은사지에는 두 개의 석탑만 존재하지만 볼거리와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풍경과 인물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은사지 석탑


감은사는 '은혜에 감사하는 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던 문무왕이 삼한통일이라는 큰 대업을 이룬 것에 대하여 부처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지은 사찰입니다. 신라가 외침을 받지 않으며 평화로운 나라로 영원히 존속하기를 희망했던 마음이 담긴 곳이기도 합니다.





감은사지 터 고목


문무왕은 백제를 멸망시키며 삼국통일의 토대를 쌓은 김춘추(무열왕)의 아들로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우리 민족을 중국에 흡수하려던 당나라에 맞서 싸운 왕입니다. 당나라 세력을 내쫓고 오랫동안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던 우리 민족을 하나로 통합시키며 한민족의 토대를 만들어 낸 분이기도 합니다.





감은사지 터


문무왕은 감은사가 완공되기 1년 전에 돌아가면서 감은사의 완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감은사는 신문왕 때에 완공이 되지만 문무왕의 염원이 담긴 사찰로 여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문무왕은 죽기 직전 유언을 남기기를 '바다의 용이 되어 신라를 침범하는 왜를 막겠다'라고 하며 일반적인 능과 다른 수중릉으로 조성했습니다. 문무왕의 능을 두고 사람들은 대왕암이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감은사는 용이 된 문무왕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을 따라 감은사에 들어올 수 있도록 지표면과 금당 바닥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놓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은사지 석탑


문무왕은 죽기 직전 신문왕에게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주면서 나라의 위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피리를 불라고 합니다. 피리를 불면 용이 된 문무왕이 어디든 달려와 도와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오죠. 이런 전설을 들으면서 말도 안 되는 허구, 거짓말이야 라고 하면 안 되죠. 그만큼 통일을 이룬 신라인들의 자부심과 신라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음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문무대왕릉


감은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문무대왕릉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곳에 직접 가볼 수는 없기에 능의 실제 모습이 굉장히 궁금합니다. 신라는 통일 전후로 불교국가로 변모되면서 왕릉의 형태도 많이 바뀌게 됩니다. 문무대왕릉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왕을 화장한 후에 이곳으로 옮겨 능을 조성했습니다.




문무대왕릉


왕의 유해를 화장하여 옮겼음을 면 수중릉을 어떻게 조성했는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문무대왕릉보다는 감은사지 3층 석탑이 너무 좋았습니다. 주변에 마을도 없이 산에 폭 안겨있는 감은사와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노라면 1400년 전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인이 되어 시간 속 여행을 게 됩니다.


문무왕은 이곳 감은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신라에 대한 어떠한 걱정과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을까? 신문왕은 아버지의 꿈과 희망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왕국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구상을 했을까?


역사는 이처럼 상상을 통해 재구성하는 즐거움을 주기에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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