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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ul 03. 2017

일제 잔재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구룡포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 일본인 거리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는 국내에 남아있는 일본 가옥들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군산은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만큼 일본식 사찰과 가옥들이 남아 지금도 활용되고 있죠. 그러나 광복 이후 일제의 잔재를 없앤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가옥


그러나 포항 구룡포 일본인 거리는 일제의 흔적을 지워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려는 지역민들의 노력을 볼 수 있어서 더욱 감동적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민족적 정기가 흐르는 돌기둥


이곳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계단 좌우로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일본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돌기둥 120개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모든 돌기둥마다 일본인 이름을 시멘트로 메꾼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곳 주민들이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일본인들의 이름을 다 지워버린 것이죠.


그 후 구룡포 공원에 충혼각을 세우는 데 후원한 분들의 이름을 돌기둥에 다시 새기면서 일제가 아무리 우리의 정신을 말살시키고 우리 위에 있으려 해도 그런 행동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를 알려준 구룡포 주민들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지금도 실제로 사용되는 일본가옥


구룡포 일본인 거리는 비교적 옛 가옥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식 가옥을 빈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잘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변경 용도를 알려주는 명패


하지만 옛 일본가옥을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거 이 가옥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과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더라고요.





여명의 눈동자


저는 90년대 초반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여명의 눈동자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지만, 아이들은 여명의 눈동자란 드라마를 모르기에 큰 흥미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90년대 초 채시라가 얼마나 이쁘고 최재성이 멋있었는지를 떠올리며 회상에 젖었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보니  드라마 속 위안부의 문제를 떠올리게 됩니다. 위안부가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에서 처음 거론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세상을 변화시켰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


일본인 거리 위로 구룡포 공원이 있습니다. 구룡포 공원 내에도 민족 자존심을 높인 유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입니다.


포항 구룡포는 일제 치하 이전에는 평화롭고 행복이 가득한 작은 어촌이었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일본 연안에서 밀려난 일본 어민들이 경상도 지역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구룡포는 다른 곳에 비해 수심이 깊어 풍부한 어장을 형성하고 있어 고래, 과메기, 대게 등을 손쉽게 잡을 수 있었던 곳이었기에 많은 일본 어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그중 도가와 야스브로라는 인물이 조선총독부를 통해 구룡포 방파제와 도로 개설을 통해 큰 항구로 만들었습니다.


구룡포에 살던 일본인들이 많은 이익을 취하게 되자 도가와 야스브로에게 감사함의 표현으로 일본인들은 일본 규화목을 가져다 1944년 송덕비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영화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곧 일본은 패망했고 송덕비는 무슨 내용인지도 알아볼 수 없도록 주민들에 의해 훼손되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구룡포를 상징하는 용


과거 이곳에서 누렸던 생활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을 다시 누리고자 하는 일본인이 있다면 단지 그리움은 가슴속에 담아두어야 함을 깨닫지 않을까요?


다시 이곳에서 누리던 권력과 부를 탐한다면 그 말로가 어떠할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구룡포 일본인 거리는 저에게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구룡포 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방파제와 포구를 보며 일제에 의해 한국이 근대화가 이루어졌음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뒤를 돌아 돌기둥과 송덕비를 보라고 권해주고 싶네요.


일제 치하에서의 삶이 어렵고 힘들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싶습니다. 돌기둥과 송덕비에서 뜨거운 것이 느껴지지 않냐고 말입니다.






충혼탑


포항 구룡포 주민들은 이 외에도 전몰군경들을 위해 충혼탑을 설치하여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포항 하면 호미곶과 해병대만을 떠올리던 저에게 애향심과 애국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구룡포 공원은 신선한 충격이며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었습니다.





충혼각


구룡포라는 지명이 신라 진흥왕이 이곳을 지나갈 때 바다에서 10마리의 용이 승천을 했고 그중 한 마리가 바다로 떨어지면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장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구룡포 주민들은 남다른 것인가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좌측에 보이는 건물은 용왕당인데 다른 지역에서는 용왕 부인을 모시는 것과는 달리 남자 신인 사해용왕을 모시고 있다는 점에서 포항이 남성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최근에 만들어진 게 아닌가 봅니다.





과메기 문화관


구룡포 공원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가면 과메기 문화관이 나옵니다.

넓은 잔디 위에 우뚝 솟아있는 과메기 문화관은 볼거리와 체험활동이 많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방문을 하신다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과메기 문화관 내 미술관


과메기 문화관에 있는 미술관에서 천천히 미술작품을 둘러보면서 지역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어려운 주제가 아닌 자연과 어촌의 삶을 그린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포항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구룡포 마을 전경


과메기 문화관에서 바라본 마을과 바다의 모습은 정겹기만 합니다. 문화관 아래에서는 대게를 파는 음식점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에 이런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문화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구룡포가 발전하기 이전 조그만 어촌을 그려보면서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방파제가 만들어지고 일본 어민들에게 어장을 빼앗기고 핍박을 받았을 시절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구룡포 주민들이 현재에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어민 생활을 재현


문화관 안에는 실제 배를 모형으로 물고기 잡이에 나선 어민들의 모습을 재현해놓고 있어 거친 바다 위에서 생존의 끈을 두고 줄다리기하던 어민들의 삶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옛 모습을 재현한 재미있는 인형


또한 구룡포 근처의 삶을 귀여운 인형들로 재현해놓고 있습니다. 그 당시 어렵고 힘든 시절보다는 정과 사랑이 넘치던 시절로 잘 표현해놓고 있습니다.




정감 어린 인형


그 당시 여유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갔던 시절일 수도 있지만 훗날 이분들은 이 시절을 그리워하고 좋은 시절로 회상하지 않을까요?

과거 불편했던 생활은 생각나지 않고 좋았던 기억들만 떠오르는 것은 비단 저만은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진짜 같아서 놀란 선술집


아버지 세대라면 이런 선술집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옛날을 회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된 음식점보다는 조금은 지저분하고 시끄럽지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이런 문화를 겪지 않은 나이인데도 향수로 느껴지는 것이 부모님 세대의 영향인지 아니면 우리의 문화인지 잘 모르겠네요.






물고기를 직접 만질 수 있는 해양체험관


좌측에는 민물고기를 우측에는 바다 물고기를 직접 만져보고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진에는 올리지 않았지만 많은 게임을 할 수 있는 체험장소도 많이 있습니다. 고장 나고 관리가 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최신형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혹시 구룡포에 들르는 분들이 있다면 과메기 문화관을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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