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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Sep 18. 2017

양난 이후 안보를 위해 지어진 홍지문과 탕춘대성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지문과 오간수대문


조선시대 양난이라 함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이야기하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공통점은 도성을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양난 이후 조선은 도성을 방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을 것이고 그 대책으로  만들어진 것 중의 하나가 홍지문과 탕춘대성입니다.





관리가 잘 되지 못하는 탕춘대성


지금의 우리들은 탕춘대성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탕춘대성은 인왕산에서 북한산에 이르는 약 4km에 달하는 성벽을 말합니다. 숙종 때 6년간에 걸쳐 축조되었으니 조선이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서북 방향을 방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탕춘대성은 현재 여기저기 끊기고 무너져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곳이 많아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합니다.





홍지문을 정면으로 바라본 모습


1921년 대홍수로 홍지문과 오간수대문이 훼손되었다가 1977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숙종이 쓴 홍지문 현판은 오늘날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복원하는 과정 속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많은 문화재를 복원했다는 점에서 높은 의의를 갖습니다. 하지만, 당시 문화재에 대한 낮은 인식과 복원 기술로 인해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콘크리트로 외형만 닮게 만들었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아쉬움이 남네요.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재 복원 능력은 세계에서 TOP 수준인 만큼 재복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산에 걸쳐있는 탕춘대성 성곽


옥천암을 돌아 뒷산으로 올라가면 탕춘대성의 성곽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서울성곽길에 비해 버려진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일부가 남아있으니 언제가는 다시 복원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으로 다행이다 싶습니다.





성곽길을 내려오며 마주한 의자


탕춘대성에 산길이 있지만 많은 분들이 이용하지는 않는 듯했습니다.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도 여기저기 훼손되어 있거나 사라진 듯한 흔적을 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곳도 관리가 잘 되어 다른 곳처럼 많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성곽길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마주한 화분들


서울의 많은 곳이 아파트와 고층 건물들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탕춘대성 아래의 마을은 70~80년대의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옛 것에 대한 반가운 마음도 잠시일 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편리함에 익숙해져 버린 저에게 이런 모습들이 불편함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을 아래로 내려오다 마주한 화분을 바라보며 제가 섣부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잘못을 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저도 옥상에 화분을 모와 놓고 상추와 고추 등 여러 채소를 키우며 받았던 행복을 주변에 자랑하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내가 가지고 있는 좁은 식견과 잣대로 세상을 잘못 바라보는 우를 범하고 있던 제 자신을 성찰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마을을 내려왔습니다.





홍지문과 오간수대문의 뒷모습

마을을 내려와 다시 마주하게 된 홍지문과 오간수대문은 세월의 흐름 속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또다시 느끼게 합니다. 홍지문은 더 이상 도성을 지키지 못하고 오간수대문은 물의 흐름을 통제하지 못한 채, 도로 한 편에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서울을 드나들던 많은 사람들의 꿈과 넋두리를 들으며 지켜보았을 홍지문은 이제는 제 역할을 다한 채 눈을 감고 묵묵히 서있는 것 같습니다.





석파정 입구


옛 모습을 전하고 있는 홍지문과 오간수대문을 뒤로하고 석파정으로 향했습니다.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당이었던 곳으로 현재는 음식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석파정 근처에 있는 옥천암에 흥선대원군의 부대부인이 자주 와서 불공을 드렸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흥선대원군의 별당인 석파정과 옥천암이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부대부인이 이곳에 자주 머물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네요.






위에서 바라본 석파정


이 석파정도 조선이 멸망하고 세간에 잊혔다가 1958년 서예가였던 손재형이란 분이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별당의 위치를 옮겨졌습니다. 그 이후 시간은 여전히 지나가면서 현재는 개인의 저택에서 많은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흥선대원군 별당 석파정


중국풍으로 지은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이 가족들과 때로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었을 겁니다. 흥선대원군이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변화되지 않은 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석파정 음식점 내부


상명대학교에 가면 옥천암과 석파정 그리고 홍지문 등 조선 후기의 역사적인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가끔은 우리 주변에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쉽게 갈 수 있고,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를 다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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