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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Oct 24. 2017

용황을 모신 용궁사

인천광역시


용궁사로 들어가는 길


인천 영종도하면 인천 국제공항이나 을왕리 해수욕장을 제일 먼저 연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종도를 방문하는 분들은 공항을 이용하거나 근처의 해수욕장을 들리기는 해도 영종도에 있는 사찰을 방문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사실 사찰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영종도에도 창건된 지 오래되어 많은 전설과 이야기들이 내려오는 사찰이 있습니다. 영종도 백운산 아래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용궁사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용궁사로 들어가는 길목은 자연의 풍광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걷기에 매우 좋습니다.






옴마니 반메홈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10여 분을 걸어 올라가면 용궁사 입구에 산스크리트어로  '옴마니 반메홈'이라 적힌 비석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비석이었습니다. 비에 새겨진 비문조차도 한자가 아닌 것 같아서 그 뜻을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용궁사에 같이 갔던 박학다식한 친구가 '옴마니 반메홈'이라고 말은 해주었지만, 질투심이 마음속에 일어나 친구의 말을 믿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검색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결과 '옴마니 반메홈'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고 합니다. 과거 '태조 왕건'이란 드라마에서 궁예가 자주 외치던 옴마니 반메홈이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옴마니 반메홈~~~





산신이 아닌 용황을 모셔놓은 용황각


용궁사는 작은 사찰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특색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용황을 모셔놓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산신을 모셔놓고 있는 반면 용궁사는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용황을 모시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바다 용들이 용황을 모시고 있는 탱화는 처음 보았습니다.





1,300년 된 느티나무


용황각보다 더 유명한 것이 두 그루의 느티나무입니다. 두 그루의 느티나무를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불리는데 높이가 20m에 둘레가 5.63m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입니다. 이곳의 느티나무 수령이 1,300년으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이니 정말 놀랍기만 합니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느티나무는 750년이 되어야 노년기에 해당되는데, 용궁사의 두 나무는 부부로 장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니 더욱 대단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느티나무 아래 두 동자


느티나무에 두 명의 동자가 앉아있습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학을 아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궁사 앞에 있는 느티나무 부부가 두 동자를 품에 안고 보살피는 모습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누가 동자와 참이슬을 가져다 놓았을까? 재미있는 광경 속에 숨은 의미를 찾으려고 사뭇 진지해지려는 저의 모습에 어이도 없어 웃음이 납니다.






느티나무와 범종각


용궁사는 문무왕 10년인 670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삼국시대 한강 하류지역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주인이 여러 번 바뀐 곳으로 신라가 삼국 통일한 이후에도 감정의 앙금들이 많이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원효대사는 통일 후 어수선한 민심을 통합하기 위해 이곳에 용궁사를 세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원효대사가 사찰을 세울 때에는 백운산 밑에 위치하고 있었어 백운사라 부르다가 흥선대원군 때 용궁사로 이름을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용궁사 범종각


흥선대원군은 이곳에 10년 동안 머물면서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이 사찰을 중수하면서 사찰의 이름을 용궁사로 바꾸고 10년 동안이나 머물렀던 이유는 용궁사에 내려오는 전설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사찰 용궁사


용궁사에는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종도에 살던 어느 어부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물에는 물고기가 없고 옥부처만 있었습니다. 어부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옥부처를 귀하게 생각하여 시장에 팔지 않고 용궁사에 시주하였습니다. 그 이후 용궁사 앞에 소나 말을 타고 지나가면 길바닥에 발이 붙어 옴짝 달짝하지 못하게 되면서 용궁사는 영험한 사찰로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이런 전설이 내려오는 백운사를 용궁사로 이름을 바꿔 용황에게 자신이 적을 내보이고 소원을 이루게 달라고 한 것이 아닐까요.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충청남도 예산으로 아버지의 묘를 이장했던 사실과 함께 볼 때 흥선대원군의 집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조성된 미륵불


용궁사가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찰임을 알 수 있는 것이 11m에 달하는 미륵불입니다. 오늘날에 세워진 불상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크지 않겠지만 훗날에는 의미를 가진 불상으로 변모어 있을수도 있지않을까요.






용궁사 관음전


그러나 용궁사에는 가슴 아픈 일도 있습니다. 관음전에 모셔져 있던 옥불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도난당했기 때문입니다. 용궁사를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했던 소중한 옥불이 도난당하여 다른 불상으로 대체되어 있는 현실은 일제에게 빼앗긴 수많은 유물을 연상시켜 마음을 무겁게합니다.





처마 밑 풍경


무거운 마음으로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처마 밑 풍경이 보입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풍경이 은은한 소리를 흘려보내며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풍경소리와 녹음을 통해 불교에서 말하는 업과 인과응보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문화재들이 언제가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용궁사 전경


용궁사는 작은 규모의 사찰이지만 아름다운 전경과 전설 그리고 역사 모두를 품고 있습니다. 영종도에 백운산 둘레길을 걸어도 좋을 겁니다. 둘레길을 걷다 지칠 무렵 용궁사에 방문하여 얼굴 위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용황님께 같이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면 재미있고 뜻깊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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