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나에게 있어 아마도 잊지 못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13년 동안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교의 방침과 나의 교육관이 맞지 않았음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만두지 못했다. 내 성격이 호불호가 뚜렷하고 다혈질이라 교장 및 부장들과 많이 부딪히면서 학교에서는 이단아 또는 문제교사로 윗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 그 인식에 부합해주듯 때로는 화도 냈고, 때로는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냈다. 아마도 이 패턴을 1년마다 반복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학교에서 얻는 가장 큰 즐거움은 나를 인정하고 좋아해 주는 학생들이었고, 그들로 인해 오랜 기간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나를 교사로 남게 했다.
하지만 낯을 가리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했고, 정체된 삶 속에서 자존감은 계속 낮아졌다. 그러던 중 대학 은사님이 블로그에 올리는 나의 글을 보고 책으로 엮었도 괜찮겠다는 글을 보고, 혹시 하는 마음에 무료로 책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브런치를 알게 되고 작가 신청을 했다. 큰 기대감을 갖지 않았기에 블로그 주소만 붙여다 놓았는데 7년간의 기록이 인정되었는지 작가 승인이 떨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성취감은 매우 달콤했다.
그 후 책을 만들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수십 편을 올리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글이 늘어날수록 글의 방향이 계속 흔들렸지만, 책을 출간한 분들의 에세이를 모델로 삼아 부지런히 썼다. 이 과정에서 국어 교사로 있는 친구가 많은 코치와 조언을 해주었다. 2월 책으로 묶을 정도의 내용이 되었을 때 동기 교사에게 보여주니 출판사에 보내보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자가 출간만을 생각하던 나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이자, 자존감이 또 한 번 올라가는 일이었다. 수십 곳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결과 대형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였지만 결론은 불발이었다. 그래도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보자는 생각에 원래 계획했던 데로 브런치를 통해 책을 출간했다. 원고 디자인부터 책 표지까지 내가 만들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출간 이후로 표지만 세 번을 바꾸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내 이름으로 나온 책이 온라인으로 판매가 된다는 사실이 매우 신기해서 인터넷에 들어가 책에 대한 반응을 하루에도 여러 번 확인했다. 한 번 글을 쓰고 나니 욕심이 계속 생겼다. 글 쓸 곳을 찾다 보니 다음 카페에서 공무원 수험서 집필진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도 기대 없이 원서를 제출했는데 허락이 떨어졌다. 하지만 출판사의 요구에 맞추어 글을 쓰는 것은 자가 출판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한국사 공무원 수험서를 집필한 끝에 나의 이름이 집필진으로 들어간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앱을 만드는 기업에서 브런치에 있는 나의 글을 보고 사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나의 선택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OK였다. 마지막으로 브런치 매거진 신청을 했다. 물론 이것도 기대 없이 말이다. 그런데 연재 허락이 떨어졌고 10주 동안 매주 토요일에 글을 올렸다. 글이 올릴 때마다 DAUM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조회건수가 1만을 넘는 경우가 종종 생겼고, 출판사 두 곳에서 출간제의가 들어왔다. 다행히 출간 의도가 같지 않아서 한국사와 관련된 책과 역사로 떠나는 여행을 2019년에 발간하기로 했다.
무엇을 해도 좋은 결과가 얻지 못하던 나로서는 2018년은 최고의 해였다. 자존감이 충전된 나는 13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비정규직으로 나섰다. 경제적인 부분과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걱정되지만 아내와 주변 사람들의 격려로 두려움을 이겨냈다. 이 선택이 훗날 어떻게 평가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매우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았고, 버릴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게 되면서 인간관계가 정리되었다.
무엇보다도 2018년도에 얻은 가장 큰 소득은 희망이다. 2019년도에도 무엇이든 해보려고 한다. 실패가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성공도 함께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 순간순간 얻는 즐거움의 소중함을 느끼며 2019년도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