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약 4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등장한 이후 생태계는 큰 변화를 겪었다. 생태계의 변화도 컸지만, 인류 스스로도 많은 변화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인간의 첫 변화는 두 발로 서서 걷는 것이었다.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다른 동물과 차별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진화를 거듭하던 인류의 한 종이었던 호모 사피엔스(현생 인류)는 아프리카를 넘어서 유럽‧아시아 등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였다. 이들 중에는 이동을 멈추고 정착한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는 무리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몸에 신체적 변화가 나타나면서 백인(코카소이드 Caucasoid)‧흑인(니그로이드 Negroid)‧황인(몽골로이드 Mongoloid)으로 분화되었다.
인종마다 달라진 외모와 피부색은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자연 환경에 맞추어 변화된 것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흑인들의 피부색이 어두운 것은 다른 두 인종보다 색소량이 많기 때문이고, 황인이 작은 눈과 짧은 팔‧다리를 가진 것은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나타난 특징이다. 그러나 유럽에 사는 백인들은 신항로 개척 이후 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자신들이 황인종과 흑인종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첨단 과학이 발달한 지금까지도 백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인종차별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터무니없는 여러 주장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고학에서도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주장이 오랫동안 나왔고, 한동안 진실로 여겨지기도 했다. 바로 미국의 고고학자였던 모비우스(Hallam L. Movius, Jr)는 주먹도끼가 백인이 우월하다는 증거라며 인종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모비우스는 1940년대 동아시아지역에서는 주먹도끼가 발굴되지 않고, 찍개가 주로 사용되는 석기문화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찍개
찍개는 단단한 차돌 같은 자갈돌의 한쪽을 깨뜨려 날카로운 날을 만들고, 맞은편은 손으로 쥐기 편하도록 만든 뗀석기다. 찍개는 사냥과 단단한 열매를 깨뜨리는데 주로 사용되는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먹도끼보다 제작 방법이 단순하고, 사용하는 용도도 제한적이었다. 반면 주먹도끼는 앞뒤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대칭을 이루는 주먹도끼를 제작하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추상적인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작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비누로 토끼와 같은 동물을 조각한 친구들은 알 것이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동물을 비누 조각을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주먹도끼
또한 주먹도끼는 활용도가 찍개에 비해 높았다. 주먹도끼를 어떻게 쥐느냐에 따라서 단단한 열매를 부수는데 사용하는 망치, 질긴 가족에 구멍을 내는 송곳,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주먹도끼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교사들은 오늘날 맥가이버 칼이나 스마트 폰에 해당한다고 표현한다. 이런 우수한 주먹도끼가 동아시아에서 발견되지 않으면서 모비우스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지역에 사는 인종이 아시아인보다 우수하다고 하였다. 동아시아지역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되지 않으니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렉 보웬
그런데 주먹도끼가 1978년 우리나라 연천에서 발견된 것이다. 고고학을 전공했던 미국 병사 그렉 보웬(Greg L. Bowen)이 한탄강 유원지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수업시간에 봤던 15cm정도의 주먹도끼를 발견한 것이다. 고고학 수업시간에 주먹도끼는 동아시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했던 그렉 보웬은 의아한 마음으로 프랑스에 있던 보르드(Francois Bordes) 교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보르드 교수는 보웬에게 서울대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던 김원룡 교수를 소개했고, 1979년부터 연천에서 구석기 유물을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30년 동안의 발굴로 약 8,500여점의 구석기 시대 유물이 연천에서 출토되었다.
이후 주먹도끼가 동아시아에서도 발굴된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구석기 시대에 대한 연구와 발굴이 다른 국가에서도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 이로써 백인이 우월하다는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모비우스의 학설이 사라지게 되었다. 여기에 연천의 주먹도끼의 발견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효과도 주었다. 그리고 연천 지역은 전곡선사박물관이 개장하고, 연천 구석기 축제가 열면서 많은 사람이 방문을 유도하고 있다. 그 결과 연천의 지역경제가 발전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