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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Sep 26. 2017

이제는 무슬림이다. - 남이섬

강원도 춘천시

                

남이섬 입장권 매표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장소 중의 하나가 남이섬입니다. 겨울연가로 더욱 유명해지던 2002년에 방문하고 15년 만에 왔으니 정말로 오랜만에 오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남이섬에 대한 기억이 제대로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남이섬의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합니다.





비자발급 안내문


여기서는 남이섬이라 부르지 않고 나미나라 공화국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입국절차를 받아야 하는데 해외여행(?)이라 그런지 저에게는 비용이 너무 비쌉니다. 더욱이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고 가족 간의 여행이라 더욱 부담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대한민국이여 안녕~


그래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명소인 남이섬을 아이들에게 지금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으니 배를 타고 남이섬으로 출발~~ 아니  나미나라 공화국으로 출발~


아듀~ 대한민국..





 나미나라 공화국 선착장


남이섬에는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배를 기다리며 사진 찍는 분들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다 보니 남이섬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미나라 공화국의 길 이정표


특히 이곳에서는 무슬림을 위한 편의시설이 많이 설치되어 있으며 실제로도 많은 무슬림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안내판에 보이는 이슬람 기도실을 통해서 무슬림을 끌어안으려는 남이섬을 통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을 하려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중국 관광객이 감소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무슬림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중국시장에 비해 인구나 경제력으로 뒤처지지 않는 큰 손인데 우리들의 종교적 색채에 대한 편견으로 무슬림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까지 우리나라 관광지의 대부분에 무슬림을 위한 배려가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남이섬은 무슬림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어 놓았다는 점은 매우 현명한 선택과 투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적 색채를 보여주는 남이섬


무슬림의 인구수가 중국과 비슷한 13억이며 경제적으로도 산유국들이 많아 중국인만큼 여행에서 큰 씀씀이를 보입니다. 남이섬은 언제부터 무슬림의 가치를 보고 그들을 위한 배려를 했을까요? 그 시기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남이섬이 무슬림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이 우리나라의 문화관광에 중요한 모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만 설치해놓아도 우리를 방문하는 무슬림들이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겨울에 방문해도 볼거리가 풍부한 남이섬


남이섬은 원래 섬이 아니었으나 1944년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모래섬입니다. 민병도라는 분이 이 섬을 매입하여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사람들에게 입소문으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장소로 소문이 나자 70~80년대에는 강변가요제가 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장소가 됩니다. 해외에까지 남이섬을 널리 알리게 된 것은 2000년대 방영된 겨울연가였습니다. 그 후 누구에게나 친숙한 명소이자 대표적인 명소로 우리에게 다가와있습니다. 





타조가 있는 깡타의 집


그러나 민병도 씨가 대표적인 친일파 민영휘의 손자이기에 논란이 많습니다. 친일파 민영휘는 일제로부터 자작 지위와 함께 5만 엔을 받았기에 훗날 민병도 씨가 남이섬을 매입할 수 있는 자금의 배경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도 잘 노는 남이섬의 타조 


친일재산조사위가 민영휘의 다른 땅은 귀속 결정을 내렸지만 남이섬은 제외되었습니다. 2000년 민영휘의 증손자인 민웅기 씨가 회사 명의를 ‘주식회사 남이섬’으로 변경하여 현재는 전명준 씨가 대표로 있는 법인이기 때문에 귀속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습니다.





어디든 눈이 즐거운 남이섬


그러나 주식회사 남이섬의 대주주가 민영휘의 후손으로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친일재산을 그대로 유지하기 편법으로 비추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대가 친일파라고 해서 후손들까지 친일파로 매도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후손들이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을 당연시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재활용품으로 만든 개미 병정


친일파 후손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안다면 사회에 사죄를 하고 환원을 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일 것입니다. 타의적이고 강제적인 집행보다는 자발적인 반성과 사회로의 환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못된 것을 사죄하고 용서하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빨리 정착되어 영구히 안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이섬 종신직원


남이섬의 대주주인 민씨 후손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는 몰라도 현재의 남이섬은 미래를 위한 노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이섬에서 일하는 분들의 정년보장은 80세이며, 80세 이후에는 종신직원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항상 불안정한 고용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부러운 정책입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부러운 노사관계의 모습이며 나도 훗날 저런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낙엽으로 영단어를 만드는 남이섬 직원분


남이섬의 직원 채용 및 정년보장으로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낙엽을 모아서 글자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진중해서 할아버지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계 속의 남이섬을 엿볼 수 있는 눈사람과 연인들


남이섬의 역사나 채용 등 사회적인 문제를 떠나서 남이섬을 방문한 연인들에게 즐겁고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곳입니다. 저도 나이가 제법 들었는지 젊은 청춘들이 알콩달콩 사랑을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은 늘 즐겁기만 합니다.





언제나 볼 수 있는 남이섬의 사계절


남이섬은 세부적으로 아기자기하게 많은 것을 숨겨놓은 섬이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남이섬을 둘러보고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할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섬을 세심하게 둘러보면 많은 노력과 아이디어들이 모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이섬 수제원


이렇게 남이섬이 잘 관리될 수 있는 것에는 전문경영인 강우현의 역할이 큽니다. TV에도 많이 노출되었고 남이섬을 주제로 책을 편찬하기도 한 스타 CEO 중 한 명입니다. 지금은 제주도에 탐나라공화국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그 능력이 부럽기만 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마음껏 할 수 있는 능력이 말입니다. 





전통을 살린 산책길


아이디어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나이가 젊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실천 조건을 갖춘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됩니다. 늘 안 되는 이유만을 먼저 생각하며 꿈을 접어둔 과거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니 내심 부러우면서도 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도 나는 꿈을 아직 꾸고 있기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이장군 묘


남이섬이 조선 초 억울하게 죽은 남이장군의 무덤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을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섬에서 남이장군의 묘를 방문하는 사람은 보기 힘듭니다. 이곳에 있는 묘가 가묘인걸 알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가묘이기에 방문을 안 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다른 볼거리와 재미를 찾아가기에 정작 남이장군의 가묘에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일 겁니다.





해학이 넘치는 조각상


남이장군은 역적으로 죽음을 당했기에 시신이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했습니다. 역적으로 죽은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도 역적으로 몰려서 고초를 겪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쉽게 수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몰래 남이장군의 시신을 수습하다 보니 남이장군의 묘는 오늘날 두 곳에 있습니다.


강원도 남이섬 외에 경기도 화성시에도 남이장군의 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남이장군의 후손들은 남이섬이 아니라 화성에서 제를 올리고 있지만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고, 남이섬만이 남이장군의 묘로 기억되고 있으니

참으로 세상은 재미있습니다.





다양한 조형물로 꾸며진 남이섬


남이장군은 세조와는 6 촌간으로 매우 가까운 친인척이며 조선 초 명문가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또한 능력이 출중해서 17세에 무과 급제를 하고 세조에게 반란을 일으켰던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면서 그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명소를 옮겨놓은 남이섬(도담상봉)


세조는 한명회와 신숙주의 도움으로 왕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명회와 신숙주는 세조의 걸림돌로 변해갑니다. 결국 세조는 한명회와 신숙주를 견제하기 위해 능력 있고 왕실과 가까운 남이 장군을 적극적으로 중용하게 됩니다. 세조의 뒷받침과 남이장군의 능력이 만나 27살에 오늘날 국방부 장관이라 불릴 수 있는 병조판서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한명회와 신숙주의 눈에 거슬리게 되었고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자 곧바로 억울한 누명을 씌어 남이장군을 죽이게 됩니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남이장군의 삶은 우리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합니다.






남이섬의 수변로


남이 장군은 조선을 보다 강국으로 만들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했던 뜻을 펴지도 못한 채, 자신의 웅대한 포부를 담은 시를 가지고 역적으로 몰아 죽임을 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싶습니다. 결국 남이장군도 자신의 죽음으로만 끝이 날 수 있음을 알고 삶을 포기하지만,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챙기는 주변 사람들은 미웠는가 봅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한명회와 신숙주보다 자신의 안위만을 도모했던 영의정 강순을 끌어들여 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다시 되돌아가기 위한 남이섬의 선착장


남이섬을 둘러보며 아이들에게 남이장군의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는데 정작 아이들은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서운하기는 하지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그 나이에는 역사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국내의 여러 곳을 많이 보고 돌아다니다 보면 추억으로 남아 어린 시절을 회상하거나, 훗날 자신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가족과의 여행을 자주 하려고 합니다.


훗날 언제쯤이면 아이들과 남이장군 이야기를 하며 다시 이곳을 방문할지 궁금합니다. 그때에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남이섬을 둘러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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