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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Oct 13. 2020

선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오이도



경기도 시흥 오이도에는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갯벌을 가진 종합관광 단지로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오이도를 상징하는 빨간 등대를 중심으로 갯벌이 펼쳐져 있다. 갯벌로 들어가는 선착장 좌우 노상에는 횟감을 판매하는 가게가 즐비하게 서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한잔의 탁주에 신선한 횟감을 안주로 시뻘게진 얼굴로 연신 웃으며 옆 사람과 큰 소리로 떠드는 어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비위생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여기에 앉아있는 이들에게는 가장 친숙하고 애정이 가는 장소일 것이다.
 
선착장 너머에는 장화를 신고 아이들과 조개를 채취하는 체험을 즐기는 부모들의 모습이 보인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갯벌을 헤집으며 하나라도 더 캐려는 아이와 그 모습에 기뻐하는 부모가 여기저기 흩어져있지만, 마치 복사해서 붙여넣기라도 한 듯 행복에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갯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중년의 부부가 다 커버린 자식 이야기를 하며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한다. 그 옆으로 젊은 연인 또는 친구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포즈를 취하고,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으며 자신도 모를 추억을 쌓고 있다.
 




반면 갯벌의 반대쪽에는 횟집과 칼국수 가게 등 바닷가를 상징하는 음식점이 가득하다. 좁은 도로에는 주차할 곳을 찾는 차량과 이들을 향해 자신의 가게로 오라고 큰소리치는 점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곳을 조금만 지나가면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카페들이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이들의 눈길과 발길을 잡는다.
 
주말이면 매우 번잡해지는 오이도는 누구라도 전철과 버스 그리고 승용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육지다. 그러나 이름에서부터 자신의 태생이 섬이었음을 알려주는 오이도는 100여 년 전만 해도 배를 타고 4km를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인천의 성산 봉수대와 화성의 해운산 봉수대를 모두 볼 수 있는 지리로 이곳에도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 전략적 요충지였던 오이도는 나라를 잃어버린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섬의 지위를 잃는다. 일제는 이곳에서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바다에 제방을 쌓고 군자염전을 조성했다. 그 결과 오이도는 육지와 맞닿게 된다. 1980년대는 시화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매립되면서 오늘날에는 섬의 흔적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육지가 되었다. 그래도 오이도에 섬 도(島)자가 남아 이곳이 섬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이도는 최근 공업단지라는 이미지를 벗고 많은 이들이 방문할 수 있는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볼거리와 먹거리 등 관광지로써 필요한 것들이 이미 갖추어져 있지만, 꾸준하게 사람의 발길을 끌기 위해서는 다른 곳과 차별성을 둘 수 있는 특별함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 특별함이 멀리 있지 않다. 오이도 곳곳에 오랜 세월 사람과 자연이 살아온 흔적과 역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이도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시작으로 군부대까지 곳곳에 많은 유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서해안에서 가장 큰 패총(조개무지 : 선사인들이 버린 조개껍데기가 쌓여 무덤처럼 되어버린 유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신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까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발굴되었는데, 통일신라 시대 주거지는 오이도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통일신라 시대 주거지에서 발견된 온돌은 우리나라의 주거형식과 온돌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오이도 등대를 등지고 작은 언덕을 넘으면 오이도 선사 유적공원이 나온다.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선사 유적공원은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언덕을 올라가기 전 여기저기 선사시대의 집이 보인다. 선사시대의 집보다 훨씬 큰 규모다. 크게 만든 이유는 단순히 집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작은 박물관이며 체험장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선사시대를 재현하는 인형이 일만 년 전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여러 채의 집들로 이루어진 선사체험 마을 주변으로 동으로 만들어진 여러 인형은 선사시대 식량 구하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사냥한 멧돼지를 나무에 매달고 내려오는 두 개의 인형은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는 즐거움에 행복하면서도 힘들어하는 모습이 재현되어있다. 개울이 흐르는 곳에서는 작살을 들고 물고기를 잡으려는 모습, 농사짓는 모습 등이 여기저기 재현되어있다.
 
이는 선사시대의 경제활동을 모두 재현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부수적인 교육적 효과도 가져온다. 학교에서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공부할 때, 구석기 시대의 사냥과 어로가 신석기시대 농경으로 변한다고 배운다. 그 과정에서 사냥과 어로가 끝나고 농경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농어촌의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의 경우 오해의 정도가 더 크다. 혹시라도 역사를 접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사냥과 어로라는 경제활동에 농경이 추가되었음을 알려줘도 좋을 것이다.
 


이외에도 중앙 공터에는 아낙네들이 불 터 옆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건너편에는 거대한 나무를 옮기는 모습이 충실하게 재현되어있다. 어린이들이 책에서 보던 선사시대의 모습을 실물 크기로 만나볼 수 있다는 매력에 끌려서일까?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많이 보인다. 선사시대를 설명하는 부모,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가 넘어질까 쫓아다니는 부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선사체험 마을 뒤로 올라가는 꼬불꼬불한 길은 짧은 거리지만, 여러 꽃을 보며 천천히 올라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천천히 작은 산에 올라가면 체험 마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강한 바람을 만나게 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소나무들이 연신 우는 소리가 들린다. 지척에 두고도 어쩜 이렇게 날씨가 다른지 놀랍기만 하다.
 


여기서 선사체험 마을을 등에 지고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오이도 해변의 전경과 인천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로 향하는 중간에 있는 작은 패총전시관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패총이 발굴된 지역을 전반적으로 보여준다. 통유리로 된 바닥은 발굴 당시의 집터를 보여주며, 한쪽에는 패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조개껍데기가 시간이 흘러 인류의 삶을 보여주는 훌륭한 유적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패총전시관을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전망대가 있는데 오이도 해변에서 보지 못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멀리 보이는 발전된 인천과 시흥의 모습과 오이도의 갯벌을 보면서 인간이 만들어놓은 오랜 역사를 한눈에 모두 담았다는 착각에 빠진다. 다시 가까이로 눈을 돌리면 전망대 아래에 대포가 보인다. 분단의 아픔이 이곳에도 머물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추위를 느끼게 하는 바람을 피해 전망대 아래 위치한 카페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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