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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May 12. 2021

자연을 움직이는 힘<위정자<민심



세종실록에서 담양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이영간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영간은 11세기 중반 관리를 지냈던 인물이지만, 어디서 태어나고 죽었는지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단지 예부상서, 한림학사, 상서우복야를 역임했다고 간략하게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실록에 이영간의 이름이 여러 번 나온다. 이 외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추성지>에도 이영간의 기이한 행동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이영간에 관련된 기이한 사건의 첫 번째는 소년암과 관련된 설화다. 이영간이 어린 시절 담양에 있는 연동사에서 공부를 할 때 우연히 만난 아이와 장기를 두었다. 그러나 바위에 가만히 앉아 자신을 쳐다보는 호랑이로 인해 이영간은 장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반면 아이는 호랑이를 의식하지 않고 장기에 몰두해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이영간은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장기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연동사로 급히 내려갔다. 그리고 승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호랑이가 있던 자리로 안내했다. 그러나 아이와 호랑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오로지 장기판과 호랑이의 발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이때부터 장마와 같이 큰 비가 내려도 호랑이 발자국이 새겨진 바위에는 이끼가 생기지 않았다.
 


두 번째는 이영간이 청의동자에게서 비술서를 얻는 설화다. 연동사에서 담가놓은 술이 계속 사라지자, 여러 승려가 이영간을 의심하고 종아리를 때렸다. 공부는 하지 않고 술을 훔쳐 먹었다는 죄를 뒤집어쓴 이영간은 너무도 억울했다.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승려가 미웠지만, 무엇보다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 잘잘못을 따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 이영간은 술 항아리를 보관해놓은 창고를 매일 지켜보았다. 술을 먹은 실제 범인을 잡겠다는 신념 아래 여러 날을 자지도 않고 부릅뜬 눈으로 창고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늙은 살쾡이가 창고로 들어가더니 술이 담긴 항아리 뚜껑을 열고 술을 마시는 거였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는 사실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화가 너무 났다. 한갓 미물이 인간을 농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물건에 탐을 냈다는 사실에 분노한 이영간은 늙은 살쾡이를 사로잡아 죽이려 하였다.

죽을 위기에 처한 살쾡이는 이영간에게 살려달라고 연신 빌었다. 자신을 살려 만주면 신기한 술법이 담겨있는 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모든 영물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신통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던 이영간이 반신반의하며 주춤하자, 어디선가 청의동자가 나타나 책 한 권을 던져주었다. 이영간이 책을 펼치자 그동안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신기한 술법이 가득 적혀있었다. 책에 들어있는 내용이 사실인지 알 순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영간은 살쾡이를 풀어주었다.


책에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영간이 책을 통해 기이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음을 추측하게 만드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영간이 고려 문종을 보필하여 북한 개성시에 있는 박연폭포를 방문했을 때, 거센 비바람이 불어왔다. 문종이 놀라 어찌할 줄 모르자, 이영간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칙서를 못에 던졌다. 얼마 후 비바람이 멈추고 못에서 용이 나타나자 많은 이들이 매우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혼돈에 빠진 군중 사이를 뚫고 나온 이영간은 용을 똑바로 쳐다보고 혼을 내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용의 잘못을 지적하던 이영간이 용의 등을 손바닥으로 치자, 용은 사라지고 못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성종실록에서도 이영간이 용을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황해도 연백(옛 이름 연안) 지역에 둘레가 8km에 달하는 와룡지라는 큰 연못이 있었다. 예로부터 인근 지역의 사람들은 와룡지에서 물을 길어다 농사를 지었는데, 겨울에 연못이 꽝꽝 얼면 생기는 금으로 내년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 얼음의 금이 가로면 풍년이고 세로면 홍수가 난다고 믿었다. 그러나 금이 생기지 않으면 흉년이 들 거라며 근심했다.
 
고려 문종이 와룡지를 흥왕사에 주어 논으로 개간하게 하였는데, 그해에 큰 가뭄이 들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영간은 문종에게 와룡지에 제방을 쌓아야 가뭄이 해소된다고 주청을 올렸다. 이영간의 비범함을 너무도 잘 알던 문종이 의견을 따라 와룡지에 제방을 쌓으라고 말하자, 못에서 흑룡이 나타나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흑룡이 사라진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서 그해 가뭄이 해소되고 풍년이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이영간과 관련된 설화를 살피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로 소년암과 관련된 설화에 보면 호랑이가 나온다. 호랑이는 지금은 우리나라 산천에서 볼 수 없는 동물이지만, 과거에는 정말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조선 태종 2년(1402년) 경상도에만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수백 명에 달할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원도에서는 “아들 4형제는 낳아야 하나를 차지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랑이는 우리네와 늘 함께하는 동물이었다.

그만큼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 신격화되어 받들어지거나,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호랑이를 산신·산군·산군자 등으로 부르며 추앙했다. 삼한시대의 동예에서는 제천행사 무천에서 호랑이를 신으로 모셔 제사를 지냈다. 현재도 많은 무속인이 호랑이를 산신으로 인식하고 제사를 올리고 있다. 특히 호랑이가 역사를 새로 기록하게 할 인물을 선택하고 능력을 키워준다고 믿었다. 한 예로 포대기에 싸여 있는 어린 견훤을 호랑이가 매일 찾아와 젖을 먹였고, 그로 인해 엄청난 괴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견훤 설화는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소년암과 관련된 설화는 호랑이로 변한 산신이 이영간의 재주와 담력을 테스트했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후에도 이영간은 술을 훔쳐먹었다는 누명을 벗기 위해 살쾡이를 잡는 장면에서 오기와 끈기가 남다름을 보여준다. 고려 시대 추앙받던 승려와의 비교를 통해 이영간의 특별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오랜 시간 이영간의 능력을 검증한 신은 특별한 술법이 담긴 책을 주었고, 이영간은 이 책을 통해 용도 다룰 수 있는 특별한 인간이 된다.
 


하지만, 이영간은 특별한 재주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고려의 백성을 책임지는 문종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용을 혼내주었고, 가뭄으로 힘들어하는 백성을 위해 흑룡을 불러내 비를 내리게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마지막에 흑룡을 불러낸 장면은 신과 자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위정자임을 알려준다. 문종에게 와룡지를 되돌려야 한다고 건의를 올린 자체부터 아무리 자연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인물일지라도 왕의 허락 없이는 어느 무엇도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용의 등을 때리며 훈계하는 이영간도 문종 앞에서는 고개를 조아리며 허락을 구해야 하는 신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영간의 생살여탈권은 왕 즉 위정자에게 달린 것이었다. 이는 비단 고려 시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자연재해와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에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바로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위정자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위정자는 하늘을 빌려 자신의 권위를 드러냈지만, 지금은 민심이 위정자를 끌어내린다. 그럼에도 믿을 수 없는 초월적인 능력을 갖춘 자가 세상을 바꿔주기를 민심은 원한다. 자신의 희생과 노력 없이 누군가의 능력과 베풂이 혜택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영간의 설화에서 “자연을 움직이는 힘<위정자<민심”이라는 공식을 보여준다. 비를 내리는 용을 다스리는 이영간은 왕에게 충성했고, 왕은 가뭄에 힘들어하는 백성의 이반이 무서워 와룡지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놨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민심이 커진 지금 우리는 능력 있는 사람이 세상을 바꿔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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