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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Sep 20. 2022

신화 속 반인반수

인간은 스스로 약한 존재임을 너무도 잘 알아서 늘 인간보다 뛰어난 동물의 능력을 동경해 왔다. 이런 마음이 토테미즘이라는 원시종교를 만들어냈다. 특정 동물을 자신의 선조로 여기거나, 특정 인물에게 동물의 특출난 힘과 능력이 있다고 믿으며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동물이 인간으로 변한다거나, 동물과의 교배를 통해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된 반인반수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반인반수가 늘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반인반수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졌다. 중국에서는 반인반수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가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산해경》을 보면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가진 촉룡이 나온다. 촉룡은 몸의 길이가 1,000리(약 40km)에 이를 정도로 매우 컸는데, 거대한 몸집보다 더 특이한 것은 촉룡의 눈과 호흡이었다. 촉룡이 눈을 뜨면 안광이 세상을 널리 비추면서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밤이 되었다. 또한 차가운 숨을 내쉬면 세상은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이 되고, 들이마시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 여름이 된다고 여겼다.      


중국 왕조의 시작이라고 알려진 삼황오제 전설에도 반인반수가 등장한다. 전욱과 전쟁을 벌였던 신농씨 염제의 후손인 공공(共工)은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공공은 전욱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하늘을 떠받치던 부주산을 들이받으며 끓어오르는 화를 삭였다. 이 과정에서 부주산이 무너지면서 하늘이 기울어졌다. 그 결과 중국의 하늘은 서북쪽으로 기울고, 동남쪽 땅이 낮아지게 되었다고 고대 중국인들은 믿었다.     


공공의 신하였던 상류(相柳)도 뱀의 몸통에 9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상류의 9개 머리는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며 이 세상 모든 것을 먹어치웠는데, 그가 지나간 자리는 독물이 흘러넘쳐 곡식이 자라지 못했다. 이에 하나라를 세운 우(禹)는 모든 생물을 먹어치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류를 제거하였다. 이때 죽어가는 상류가 흘린 피가 적신 땅은 아무것도 자라지 못했고, 사람도 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유럽에서도 반인반수가 많이 등장한다. 중국에서 반인반수는 건국의 주체가 되거나 자연현상의 변화를 이해시켜주는 주연 역할을 주로 했지만, 서양에서는 영웅을 돋보이게 해주는 조연 역할을 많이 했다. 서양에서는 반인반수의 출생을 신과 인간의 성적 결합이나 인간의 잘못된 성적 욕망에서 빚어진 잘못된 결과물로 보았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미노타우로스가 나온다. 소로 변한 포세이돈이 크레타 왕국의 왕비 파시파에와 사랑을 나누면서 세상에 태어난 미노타우로스는 인간의 몸에 거대한 수소의 머리를 한 반인반수였다. 미노타우로스의 흉측한 모습에 크레타 왕 미노스는 미궁 라비린토스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아테네가 바친 14명의 소년과 소녀를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주었다. 매년 소년과 소녀가 희생되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어린 소년과 소녀를 크레타 왕국에 바쳐야 했던 아테네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왕자 테세우스를 크레타 왕국에 보냈다. 테세우스는 직접 제물이 되어 미궁 안으로 들어가 사람을 잡아먹는 미노타우로스를 맨주먹으로 때려죽였다. 누구도 물리칠 수 없었던 강력한 힘을 가진 미노타우로스를 가볍게 해치운 테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 된다.     


중세 시대 사탄의 모델이 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 신 헤르메스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수였다. 판의 얼굴은 염소의 뿔과 귀 그리고 수염이 있었고, 다리는 염소의 발굽과 함께 털이 가득했다. 반인반수의 모습을 가진 판은 성격이 매우 변덕스럽고 화를 잘 냈다. 특히 판은 낮잠을 매우 좋아하는데, 만약 판의 낮잠을 깨우게 되면 크게 화를 내며 잠을 깨운 사람에게 공포를 불어넣어 공황 상태에 빠뜨려버렸다. 그래서 중세 시대 유럽 사람들은 판의 통제할 수 없는 성욕과 욕망에서 사탄의 모습을 찾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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