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몽골의 침략당시 강화도는 고려의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1232년 강화도 천도 이후 최우는 2천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왕궁을 건립했죠.
규모는 작으나 궁궐과 관아의 명칭을 개경과 같게 하고 뒷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부르게 했습니다.
39년간 몽골에 항쟁했지만, 결국 고려는 항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훗날 원종으로 불리는 고려 태자는 몽골의 후계자를 두고 경쟁하던 쿠빌라이 칸을 찾아가 지지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고려는 독립국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고려의 풍습을 인정한다는 약속을 받아내게 됩니다.
이것은 고려의 뛰어난 외교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후 고려는 원의 부마국으로 요동까지 관할하는 권한을 갖는 심양왕의 지위를 갖게 됩니다.
조선시대에도 강화도는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만주족의 침략 때 강화도로 옮겨가 항전을 할 수 있도록 행궁이 들어서게됩니다.
또한 외규장각을 두어 조선의 기록물을 보관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몇 개의 건축물만 있지만, 천년동안 강화도는 최후의 보루이며 최전선이던 지역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