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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an 16. 2024

신라의 위기

진흥왕이 한강 하류 지역을 비롯하여 함경도까지 영토를 크게 늘려요. 이런 모습에 신라의 많은 사람이 발전을 기대했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만 갔어요. 백제 성왕의 아들 위덕왕은 복수를 위해 진흥왕이 죽은 이듬해인 577년 경상도 상주와 구미를 공격해요. 또한 신라를 고립시키기 위해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에 고구려 침략을 돕겠다 제의하고, 일본에는 많은 백제인을 보내 쇼토쿠 태자를 도와주는 등 외교 관계에도 큰 노력을 펼쳐요. 위덕왕의 신라에 대한 복수는 후대 왕들인 무왕과 의자왕에게 이어져요. 이것은 개인의 원한 문제를 넘어 나라의 존립에 관련된 문제였으니까요. 특히 의자왕은 642년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신라의 수도 경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요충지 대야성을 함락시켜요. 그로 인해 신라는 언제든지 백제의 공격으로 수도가 함락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돼요.


고구려의 신라에 대한 공격도 매섭게 이어졌어요. 고구려는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의 여러 차례 침략을 이겨내요. 이 과정에서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안시성 전투의 승리가 있지요. 고구려를 공격한 대가로 수나라가 멸망했지만, 고구려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어요. 많은 백성과 병력을 잃었고, 국토는 황폐해졌어요. 그런 가운데 수나라가 멸망하고 새로 들어선 당나라의 위협에도 대처해야 했어요. 그로 인해 고구려는 온전히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할 여력을 갖지 못했어요.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고구려 지배계층의 분열이었어요. 당나라의 위협에 맞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부당한 요구를 감내할지를 말이에요. 이 과정에서 당나라에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해요. 


당나라 태종은 연개소문의 정변을 문제 삼으며 고구려를 침략해요. 수나라도 뚫지 못한 요동성을 함락하며 기세등등했던 당 태종이었지만, 안시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돌아가 버려요. 이후 고구려와 당나라는 불안하기는 해도, 평화로운 관계가 지속돼요. 연개소문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신라를 공격해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에요. 첫째는 당나라의 침략이 다시 발생했을 때, 전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신라가 고구려를 쳐들어오지 못하게 할 목적이에요. 두 번째는 국력 회복을 위해 인적자원과 평야 지대가 많은 한반도 중부를 차지하기 위해서였어요. 


이런 상황에서 신라는 왕위를 둘러싸고 지배계층의 분열이 일어났어요. 당시 신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동륜 후손인 진평왕 계열과 박씨를 비롯한 기존 지배계층, 김유신 등 가야 출신 세력이었어요. 문제는 진평왕이 세 딸만 낳았다는 데 있어요. 권력을 다른 세력에 빼앗길 수 없던 진평왕은 큰딸에게 왕위를 물려줘요. 그렇게 즉위한 선덕여왕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 됩니다. 하지만, 선덕여왕 즉위 후 신라는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돼요. 백제와 고구려가 계속 신라를 공격하는 가운데, 왕위를 물려줄 아들을 낳지 못해요. 결국 주인 없어진 왕위를 두고 여러 집단이 갈등하던 중 비담이 반란이 일으켜요. 이 과정에서 선덕여왕은 죽어요. 대신 비담 등 반란 세력을 제압한 김춘추와 김유신이 신라의 주축 세력이 됩니다.                     



김춘추는 왕이 되기 전부터 신라를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어요. 삼국 중에서 가장 국력이 강했던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직접 고구려를 방문해요. 김춘추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정권 안정을 위해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김춘추의 제안은 단칼에 거절당해요. 오히려 김춘추는 고구려에 감금되었다가, 간신히 풀려나게 돼요. 


김춘추는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신라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당나라를 선택하게 돼요. 당나라가 지금은 고구려와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 내다본 거죠. 당나라가 독자적인 힘으로 고구려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한 만큼 분명 신라의 제의를 뿌리치지 못할 것이라 믿었어요. 김춘추는 배를 타고 직접 당나라 수도에 가서 당 태종과 밀약을 맺어요.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고 나면, 대동강을 경계로 영토를 나눠 갖기로 말이죠. 


이 부분을 두고 후대 많은 사람이 화를 내요. 외세를 끌어들여서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켜 광활한 영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요. 그런데, 역사는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어요.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는 서로가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말과 풍습이 비슷할 뿐 서로가 엄연히 다른 민족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어요. 신라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나 고구려나 백제 모두 타국에 불과해요. 무엇보다 살아남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겠죠. 김춘추가 왕으로 즉위한 이후에도 고구려·백제·말갈의 연합공격으로 33개 성을 빼앗기고, 강릉마저도 빼앗길 정도로 신라는 위기에 처해 있었거든요. 물론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당시 삼국이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으로 단합하여, 거대한 힘을 갖게 되는 중국에 맞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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