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편지에서 항상 버릇처럼 말하기를 일가친척 중에 한 사람도 긍휼히 여겨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개탄하였다. (중략) 모두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말투니 큰 변통이다. 전에 내가 벼슬하고 있을 때에는 조금 근심할 일이나 질병의 고통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돌봐주게 마련이어서 날마다 어떠시냐는 안부를 전해오고, 안아서 부지해주는 사람도 있고, 약을 먹여주고 양식까지 대어주는 사람도 있어서 이런 일에 익숙해진 너희들이라 항상 은혜를 베풀어줄 사람이 바라고 있으니 가난하고 천한 사람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이나 받으면서 살라는 법은 애초 없었다. 더구나 우리 일가친척은 서울과 시골에 뿔뿔이 흩어져 은정을 입을 수도 없었다. 지금 와서 공박하지 않는 것만도 두터운 은혜일 텐데 어떻게 돌봐주고 도와주는 일까지 바라겠느냐?
오늘날 이처럼 집안 패잔하긴 했지만 다른 일가들에 비하면 오히려 부자라 할 수도 있겠다. 다믄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줄 힘이 없을 뿐이다. 그렇게 극심하게 가난하지도 않고 또 남을 돌볼 힘은 없으니, 바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처지가 아니겠느냐?
모든 일이란 안방 아낙네들로부터 일어나니 유심히 살펴서 조치하고 마음속으로 남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저절로 마음이 평안하고 기분이 화평스러워져 하늘을 원망한다거나 사람을 원망하는 그런 병통은 사라질 것이다.
여러 날 밥을 끓이지 못하고 있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되라도 펴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워 쓰러져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누어주어 따듯하게 해주고.(중략) 근심걱정에 싸여 있는 집에 가서는 얼굴빛을 달리하고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하는 것인데 잘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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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죽고 귀양을 가게 되면서 가계가 곤궁해진 삶에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권력을 가졌을 때는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다음에는 뿔뿔이 흩어지는 세상 모습에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위로와 충고를 하는 내용이죠.
다른 사람에게 “세상이 다 그런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자신이 그런 상황에 막닥뜨린다면 많은 사람은 무너지고 맙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약용은 남들보다 자신의 형편이 나은 상황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원망보다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지라고요
여러분은 저와 달리 어떻게 해석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