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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un 04. 2024

박지원의 북학의서(北學議序)

학문하는 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의 남모르는 사람을 붙잡고서라도 물어봄이 옳다. 부리는 종이라도 나보다 한 글자라도 많이 알고 있으면 우선 그들에게 배울 것이다. 자신이 남보다 못함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이는 평생토록 고루하고 재주 없는 곳에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옛날 순임금은 농사짓고, 질그릇 굽고, 물고기 잡는 일에서부터 임금 노릇 하기에 이르기까지 남이 잘하는 것을 본받지 않는 것이 없었다. 공자는 " 내가 젊은 시절 미천하였기에 막일을 잘하는 편이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 일이란 것 역시 농사짓고 질그릇 굽고, 물고기 잡는 일 따위였을 것이다.      


비록 순임금과 공자같이 거룩하고 재주 많은 분도 스스로 무성을 만들고 고안하는 데 있어, 일에 맞닥뜨려서 기구를 만들자면 시간도 부족하고 지혜도 막히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순임금과 공자가 성인이 된 까닭도 남에게 잘 묻고 찰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선비들은 세상의 구석진 한 모퉁이 땅에서 편협한 기질을 타고나 발로 중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눈으로는 중국의 인사들을 보지 못한 채 생로병사 할 때까지 이 나라, 이 강토를 벗어난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마치 학의 다리가 길고 까마귀 날개가 검은 것이 제 잘난 멋으로 여기듯 각각 타고난 천품이려니 하여 지키고 앉았고, 우물 안의 개구리와 밭둑의 두더지가 제 사는 곳에만 갇혀 있듯, 자기 사는 곳이 제일 인양 믿고 앉았다.      


예절은 차라리 소박한 편이 낫다고 말하고 비루한 꼴을 도리어 검소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이른바 사·농·공·상의 사민이란 것도 겨우 명목만 남았고, 이용후생 하는 도구는 하루가 다르게 곤궁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배우고 질문할 줄 모르는 탓이다. 만약 배우고 물으려 할진대 중국을 버려두고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그들은 말한다. 지금 중국을 다스리는 사람은 되놈이라고, 그들 되놈에게 배우기를 부끄럽게 여길 뿐 아니라, 중국에서 전해오는 문화도 싸잡아서 더럽고 야만적인 것으로 업신여긴다.     


저들 중국 사람이 체두변발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오랑캐 복장을 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터 감고 있는 땅이야 하·은·주 이래고, 한·송·명나라를 거쳐 온 중국 땅이 아니겠는가. 만약 법이 좋고 제도가 훌륭하다면 정말 오랑캐의 것이라도 기준으로 참고 따라야 할 터인데, 하물며 그 광대한 규모, 정미한 심성학, 깊고 심오한 예약, 찬란한 문장에 아직도 삼대 이래 한·당·송·명의 고유한 옛 제도가 남았음에야?      


우리나라는 저 중국(청나라)과 비교한다면 정말 한 치도 나을 것이 없으련만, 유독 한 움큼 상투 트는 것을 가지고 자신들이 천하에 제일인 체하면서, 오늘의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라고 말한다. 중국의 산천은 누린내가 난다고 책망하고, 그 인민은 개나 양이라고 욕하며 그들의 언어는 되놈의 말이라고 업신여길 뿐 아니라, 중국 고유의 좋은 법과 아름다운 제도마저 아울러 배척한다. 그렇다면 장차 어느 나라를 본받아 나아갈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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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중국 북경을 다녀와서 조선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며 변화를 강조하였습니다. 과거 만주족 위에 군림하였던 조선의 모습만 기억하고, 현재 만주족이 세운 청의 발전된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조선을 말입니다.      


박지원이 본 조선의 모습은 비단 그 시대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도 그러하니까요. 우리는 식민지와 전쟁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난하고 무지했던 모습은 부정하면서, 현재의 부강해진 모습만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변 국가들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모습은 애써 부정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흐름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배워 선진국이 된 것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중국과 베트남 등이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술을 훔쳐 가 성장했다는 것에 불쾌함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우리의 것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 있을까요? 이제 중국은 우리의 기술을 넘어서는 분야가 많습니다. 베트남은 우리보다 젊습니다. 더는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 될 대상입니다. 

    

이제 우리도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과거 우리가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기술을 배워 성장했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가 보여주듯 다시 어려운 시기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요.      


중국과 미국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지 협력하여 배우려는 자세를 연암 박지원 선생은 지금의 우리에게 알려주는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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