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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ul 16. 2024

차이나타운 의선당과 화교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면 중국식 사원 <의선당>을 만날 수 있다. 1883년 인천이 개항하면서 건너온 중국 상인들이 결성한 ‘선당’에 기원을 둔 <의선당>은 생활이 곤궁하거나 장애인 등을 구제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의선당>은 한국에서 죽은 중국인의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하기 위한 일과 함께 여비가 없어 중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중국인을 도와주었다.


사실 차이나타운에 있는 <의선당>은 화도진 근처에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만 현재의 위치는 1927년 선당의 관리자 또는 인천 화상상회의 관계자가 일본인으로부터 매입한 뒤 화도진에 있는 묘우를 이전에 지금의 건물을 신축한 것이라고 한다. 


출처: 인천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의선당 묘우에는 중국 토착 신령인 호삼태야, 바닷길을 지켜주는 사해용왕, 극락을 위한 관음보살, 재물과 복을 주는 관운장, 바다와 가족의 평안을 관장하는 마조 총 5개를 모시고 있다. 구한말 한국에 진출했지만, 청일전쟁 이후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국인들은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며 심신의 안정을 찾았다. 서로를 만나고 도와주는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하지만, 중일전쟁과 6.25전쟁 그리고 박정희 정부의 화교 탄압으로 한국에 자리 잡은 많은 중국인은 대만으로 넘어가거나,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다. 이곳 <의선당>도 화교의 몰락과 운명을 같이하여 1979년 쿵후 도장으로 활용되다가 1990년대 폐관했다. 현재는 인천시 중구청이 차이나타운을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중국의 지원을 받아 복원되었다. 


이곳 <의선당>은 역사를 알지 못하면 자칫 지나치기 쉽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방문한다면 이곳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많이 알려진 자장면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서 <의선당>을 둘러보면서 과거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봐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도 개항 다른 국가로 돈을 벌기 위해 많은 분이 이민을 떠났다. 그들은 외로움을 비롯한 여러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기 위해 단체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만나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었다. 그렇기에 화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과거 마포에서 화교분이 운영하는 중국집에서 방문한 적이 있다. 그분은 한국인으로 살고 싶어도 법적으로 불가능했던 시절과 한국인의 배타적인 모습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은 한국인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왔기에 자기 고향은 한국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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