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생각> 기고

by 유정호

젊은 시절 <좋은 생각>은 나에게 특별한 책이었다.

늘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했고,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친숙하고 따스한 이야기였다.

그러면서도 글을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도록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돈이 없던 시절이어서 쉽게 접하기도 어려워서 1년 구독으로 읽는 지인을 보면 매우 부러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제는 추억이라 생각했던 <좋은 생각>에서 12월 원고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 순간 "내가 <좋은 생각>에 원고를 기고한다고. 이게 사실이야.."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이 벅차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제 집에 들어오니 <좋은 생각>이 도착해있었다.

다른 출판사나 잡지처럼 책만 있을 줄 알았는데,

박스를 여는 순간 책자 2개와 수건 2개, 그리고 에코가방까지 너무도 이쁜 선물이 담겨있었다.

역시 <좋은 생각>은 따뜻함을 담은 책이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장수하는 비결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동시에 앞으로도 <좋은 생각>이 오래도록 발간되기를 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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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부 사랑법


최근 이혼을 주제로 하는 예능 방송을 아내와 한동안 즐겨봤다. 방송에 나오는 부부를 보며 ‘저러면 어떻게 살아. 나 같으면 못 살아.’라고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20년 넘게 잘 살아온 것에 감사함을 서로 표현했다. 사실 아내와 연애하고 결혼해서 지금에 오기까지 평탄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갈등 속에 위기를 겪어왔다. 입에서 ‘이럴 거면 이혼해.’라는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줄 알면서도 거침없이 나온 적도 있다. 솔직히 그 당시 나는 어른들에게 자주 들어왔던 ‘옛날에는 말이야. 어디 여자가 말이야.’ 말이 입속에서 맴돌기도 했다. 역사책을 쓰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그 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면서도 말이다.


과거 조선시대는 부부간에 남녀 차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부부간의 폭행이나 살인이 일어났을 때 가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처벌의 수위가 달랐다. 중국 대명률을 참고하여 적용된 법률에 따르면 아내가 남편을 때리면 특수상해죄를 저지른 범죄자와 같은 수준의 장 100대를 맞아야 했다. 만약 매 맞은 남편이 죽으면 교형에 처해졌고, 남편을 살해했다면 사지가 찢겨져 죽는 능지처참에 처해졌다. 반면 남편은 아내의 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한 구타를 하더라고 일반 상해 사건보다 2등급 낮은 처벌이 내려졌다. 남편이 교형에 처해지는 것도 아내를 죽였을 경우만 해당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남편의 폭행이 사회적으로 묵인되는 상황에서 매 맞은 여자가 관아에 고발하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여자들이 부당한 처사를 받으며 살아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간 아내도 많다. 특히 유교를 제대로 공부하여 이해한 사람이라면 아내를 특별하게 아꼈다. 예를 들어 사람의 도리를 알려주는 오륜중의 하나인 부부유별은 남녀가 서로 할 수 있는 것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수절도 배우자와의 행복했던 순간을 후회하지 말 것이며, 만약 아이가 있다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지고 양육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이며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이황의 아내 사랑법을 살펴보자. 퇴계 이황은 첫 번째 부인이 죽자, 남은 두 아이를 위해 지적장애가 있는 권씨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고 섬겼다. 하루는 이황의 두루마기를 다림질하다 태워버린 권씨가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붉은 천으로 구멍을 기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수군덕거리자 이황은 ‘붉은색은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른다네. 아내가 좋은 일이 생기라고 일부러 붉은색으로 기워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라며 아내 권씨를 현명한 부인으로 만들어주었다.


또 한번은 제사상에 있는 배를 몰래 훔쳐먹다가 형수에게 혼나고 있는 아내를 본 이황은 ‘형수님, 조상님께서도 손자며느리의 잘못을 귀엽게 보고 웃어 넘겨주실 겁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잘 타이르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아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는 손수 아내가 먹고 싶어 하던 사과를 깎아 주었다. 아내 권씨가 죽자 전처에서 낳은 두 아들에게 시묘살이를 시켰고, 자신도 권씨 무덤 옆에 양진암을 짓고는 1년 넘게 머무르며 그리워했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경계할지를 배우고 깨닫는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라면 ‘조선시대에는 아내는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살았어. 지금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아야 하는데.’가 아닌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이황 선생도 아내를 저토록 사랑하고 아꼈구나. 부부가 평등하다고 말하기 이전에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먼저구나. 나도 이황처럼 아내를 사랑해야지.’라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 자신부터도 아내만 보면 장난치고 싶다. 아내가 절대 동의하지 않는 <나만의 사랑법>이라고 부르짖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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