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보다는 주변 인물이 더 유명한 것 같아요.
명종은 12살에 즉위하면서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했어요. 자신만의 정치를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어요. 명종 나이 32살에 문정왕후가 죽으면서 기회가 생기지만, 안타깝게도 2년 뒤 후사 없이 죽어요. 그렇다 보니 명종이 주도하여 일어난 사건보다는 주변 인물들로 인하여 만들어진 사건들이 많죠. 문정왕후와 외숙부였던 윤원형이 일으킨 을사사화, 드라마 여인천하로 유명해진 정난정, 조선을 대표하는 여인 황진이, 불교를 중흥한 보우대사, 조선 3대 도적 중 하나인 임꺽정 등 여러 인물이 만들어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그래도 명종 때 일어난 일이만큼 하나씩 알아볼까요.
먼저 을사사화부터 말씀드릴게요. 문정왕후는 인종의 측근 세력인 김안로 때문에 폐위될 위기까지 몰렸죠. 그만큼 인종을 추종하는 대윤의 세력이 막강했어요. 그렇기에 문정왕후는 자기 형제이던 윤원형과 윤원로 형제를 중심으로 관료들을 모아 대윤을 제거하는 일을 모의해요. 우선 명종이 즉위한 지 두 달도 안 되었을 때 대윤의 윤임 일파가 명종을 죽이려 한다고 고발해요.
그러나 윤임을 중심으로 한 대윤 측에서 강하게 반발하면서 오히려 윤원로가 해남으로 유배 가게 돼요. 그럼에도 소윤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윤임이 인종이 위독할 때 중종의 다섯째 아들 봉성군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고, 인종이 죽은 뒤에는 성종의 셋째아들 계성군의 아들 계림군을 왕으로 옹립하려 한다고 역모죄를 뒤집어씌우고는 죽여버려요. 이때를 대윤을 따르던 많은 사림이 희생당했다고 하여 을사사화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반발하지는 않았나요?
불만은 있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는 못했죠. 그럼에도 윤원형이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형인 윤원로를 유배 보낸 뒤 사약으로 내려 죽여버려요. 이후 윤원형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부정·비리를 저질러요. 그렇다 보니 어느 날 양재역에 “여주가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들이 아래에서 권세를 농단하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다.”라는 벽서가 붙어요.
여기서 여주란 문정왕후를 지목하는 것이어서 조정이 발칵 뒤집혔고, 이를 이용해 소윤은 아무 증거도 없이 대윤 측의 사람이 벽서를 붙였다며 그들을 죽이고 유배 보내요. 이것을 정미사화라고 해요.
여인천하라는 드라마에서 강수연이 열연했던 정난정이 떠올라요. 그녀는 누구인가요?
정난정은 양반과 관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신분은 낮아도 뛰어난 미모와 재주로 기생으로 큰 인기를 얻었죠.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의 첩이 된 정난정은 남편을 등에 업고 궁궐에 드나들며 문정왕후의 눈에 들게 됩니다. 이때 대윤의 윤임이 중종의 봉성군을 왕으로 세우려 한다는 거짓 정보를 전하며 을사사화가 일어나는 계기를 만듭니다. 윤원형이 정권을 잡은 뒤에는 윤원형과 부인 김씨를 이혼시켜요.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씨를 며칠 굶기고는 독이 든 밥을 먹여 죽여버려요. 그렇게 윤원형의 정실이 된 정난정은 문정왕후로부터 종1품 정경부인 작위를 받으며 왕실 밖 여인으로서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자리에 올라요.
이후에도 보우대사를 문정왕후에 소개하여 불교를 중흥하는 데 일조하죠. 또한 자기 아들의 벼슬길을 열어주고자 서얼도 벼슬에 나갈 길을 마련해줘요. 그러면서도 윤원형을 속이고 의원 송윤덕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어요. 하지만 모든 악행에는 끝이 있는 법이죠. 문정왕후 사후 정난정은 다시 천민으로 떨어져서 윤원형과 황해도로 유배를 가요. 윤원형의 본처였던 김씨의 어머니가 정난정을 살인죄로 고발한 사실로 처벌받을까 두려워하던 중 의금부도사가 나타났다는 말에 자신을 체포하러 오는 줄 알고 스스로 목을 매어 생을 마감합니다.
반면 조선을 대표하는 여류 문인인 황진이도 있죠?
황진이는 양반과 천민 사이에서 태어난 점이 정난정과 같지만, 삶과 평가는 완전히 다르죠. 황진이는 보통 사대부의 첩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기생이 됩니다. 아름다운 용모와 재능에 많은 남자가 찾아왔지만, 황진이는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았어요. 여성에게 수동적인 삶을 강요하는 것에 정면으로 맞선거죠. 황진이에게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던 벽계수와 황진이와 한 달이면 헤어질 수 있다고 했던 소세양을 망신 주죠. 살아있는 부처라 불리던 지족선사의 마음도 흔들어놓아 파계시키고요. 하지만 황진이도 유혹하지 못한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서경덕이에요. 황진이는 서경덕의 인품과 학식에 감복해 제자가 되기를 청하죠. 이처럼 많은 이야깃거리와 <청산리 벽계수야> 등 작품을 남긴 황진이는 40세를 전후로 생을 마감하고 개경에 묻혀요.
청산리 벽계수 시를 한 번 읊어주시면 어떨까요?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오늘 드라마 주인공들이 많이 나오네요. 임꺽정은 어떤 인물인가요?
훈구파들의 계속되는 부정축재와 비리로 백성들의 삶은 말이 아니었어요. 토지에서 쫓겨나 떠돌아다니는 유민이 되기도 했지만, 도적이 되어 백성을 괴롭히는 일도 많았죠. 이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도적이 백정 출신의 임꺽정이에요. 이들은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를 넘어 왕이 사는 한양까지 와서 재물을 약탈했죠. 의적이라고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강도질은 나쁜 짓이잖아요. 임꺽정이 의적 행사한 것은 빼앗은 재물 일부분을 빈민에게 나누어주어 자신들을 신고하지 않도록 한 거예요. 임꺽정의 활동이 확대되자, 명종은 반적, 즉 역적으로 규정하고 소탕을 명령해요. 하지만, 늘 당하는 쪽은 임꺽정을 잡으려는 관군이었죠. 그렇게 영원히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임꺽정도 참모 서림이 배반하면서 결국 체포되어 처형되죠.
조선이 참으로 멋진 건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점이에요. 조선왕조실록에서 임꺽정을 두고 “그들이 도둑이 된 것은 왕정의 잘못이지 그들의 죄가 아니다.”라고 말하거든요.
또 어떤 인물이 있을까요?
보우대사도 꼭 말씀드리고 가야겠어요. 불교를 이단 취급하는 조선시대 보우대사는 아주 나쁜 사람으로 묘사되죠. 문정왕후와 부적절한 관계까지도 의심할 정도요. 그러나 불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보우대사는 불교의 명맥을 이어준 인물이며, 역사적으로도 임진왜란이라는 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든 인물이에요. 보우대사는 선종과 교종을 부활시키고, 승려의 신분을 공인해주는 도첩제를 부활시켰죠. 또한 연산군 때 폐지되었던 승과제를 부활시켜요. 이때 승과에 급제했던 인물로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맞아 큰 승리를 거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있지요. 특히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에도막부로부터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조선인 3천 명을 데리고 돌아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