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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 Nov 17. 2018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퇴사, 그리고 베트남으로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모든 여행에는 자신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 그 많은 우회로와 막다른 길과 무너뜨린 과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 이 한 가지를 물어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꿈꾸던 일에서 맞이한 슬럼프

"저는 광고를 할 거에요. 기획서를 잘 쓰는 광고기획자가 되고 싶어요! 언젠가 대한민국에 한 획을 그을 광고를 만들거에요!" 그렇다. 나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22살 광고 동아리에 들어가 1년을 보냈고, 23살 동아리 선배 덕분에 인하우스 대행사에서 인턴 경험을 쌓았다. 24살, 인턴으로 있던 팀의 소개로 30명 남짓되는 광고대행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6개월 인턴 후 꿈에 그리던 광고대행사 사원이 됐다. 비록 큰 회사는 아니었으나, 주변의 도움으로 별다른 취준생활 없이 광고라는 엔트리에 들어갔다. 운이 좋았다. 일도 재미있었다.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 그렇게 나는 꿈꾸던 방향대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사원이 되고 6개월 후 즈음부터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꿈꾸어 오던 일을 하고 있으면서, 회사에서도 나름 인정받으며 잘 다니고 있으면서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좀 더 큰 회사에 가면 괜찮아질까? 그래서 좀 더 재미난 브랜드를 한다면 괜찮아질까? 아니면 경쟁PT에서 이겨 새로운 브랜드를 하게 된다면 괜찮아질까? 계속 버티고 경력을 쌓아가면(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했다는 가정하에), 언젠가는 꿈꾸던 브랜드도 하게 되고, 언젠가는 다양한 브랜드를 하는 보다 큰 회사로의 이직 기회가 왔을지도. 그러나 반 년이 지나도록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25살, 경력보다는 경험을 쌓을래요

이직이 쉬운 업계였던 만큼 일단 어떤 회사든 가서 잘 버티다보면 원하는 큰 회사로 갈 수 있다(고 선배들이 말했다). "1년 됐지? 2년만 더 버텨! 3년만 채우면 좋은 자리 많을 거야!" 나 역시 경력을 쌓아 새로운 기회를 잡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러기엔 내가 아직 너무 어렸나보다. 입사 1년차, 인턴까지 합치면 약 2년 남짓의 회사생활. 이 길이 싫진 않지만 언제부턴가 마냥 좋지도 않았다. 이 길이 평생 가도 될 내 길이 맞을지, 그 동안 너무 한 길만 보고 달려온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25살 사회초년생에겐 현재 달려가고 있는 이 길에서의 미래보다는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한 동경과 미련이 많이 남아있었나보다. 그렇게 슬럼프 속에 반 년을 고민하다 퇴사를 결심했다. 처음 생각은 이랬다. 1-2년 다른 거 해보며 방황하다 와도 27살. 신입사원으로 다시 시작해도 될 나이 아닌가? 어라, 괜찮은데?


그래서 퇴사하면 뭐할건데?

명확한 목표는 없었지만 하고 싶은 건 많았다. 1순위는 워킹홀리데이! 여행을 좋아하던 나는 예전부터 해외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사실 3년 경력 쌓고 워홀을 가려던 기존계획을 앞당긴 거라 할 수 있겠다. 2순위는 에어비앤비 혹은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며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따기. 뭐 이 역시 여행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던 나이기에 이 쪽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3순위는 캘리그라피/글쓰기/그림 배우기. 회사다니면서 취미 삼아 캘리를 배우고 있긴 했었지만,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었다. 어쩌면 이는 자유분방한 프리랜서 직업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잘하진 못한다.

뭐가 됐든 무엇 하나 퇴사를 할 만한 그럴듯한 '핑계'가 되어주진 못했다. 학생일 때도 워홀을 반대하던 부모님이 취업한지 얼마나 됐다고 회사 때려치고 워홀 가겠다는 딸에게 얼씨구나 "잘 다녀와라~" 할리 만무했고, 광고 하겠다며 졸졸 쫓아다니던 그저 열정만 있던 친구를 댓가없이 가르쳐주고 광고일을 하게 도와준 분들께는 또 뭐라 말할 것인가. 퇴사하고서 다른 걸 해보며 본격적인 방황의 길을 가려면 보다 그럴듯한 명분이, 아니 ‘핑계’가 필요했다.


얼결에 따라나선 베트남행

농담삼아 같이 베트남에 가서 붕어빵 장사를 하자던 친한언니가 있었다. 실제로 베트남어 공부를 같이 하기도 했다.(사실 공부했다고 하기엔 수능특강 찔끔 들은 게 다이긴 하지만..) 그 언니가 해외취업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베트남에 가게 된 게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듯 하다. 언니를 따라 나도 그 프로그램과 비슷한 K-MOVE 해외취업연수 베트남 과정을 지원했다. K-MOVE란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을 교육시키고 해외취업을 도와주는 국비지원 프로그램이다. 사실 나에게 이 프로그램은 회사를 그만둘 좋은 명분이자, 워홀보다도 더 의미있을 해외생활을 가능케 해 줄 좋은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베트남인가? ‘우리나라 7-80년대를 보듯 급성장하고 있는 베트남 경제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라고 주변엔 그럴듯한 말들로 포장해놨지만, 여전히 내가 베트남에 가서 뭘 하고 싶은지, 뭘 하게 될지 모르겠는 거 보면 사실 난 어디든 상관없었던 것 같다. 그저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것 뿐.


지난 9월부터 시작된 2.5개월의 국내연수가 오늘부로 끝이 나고 이제 3일 뒤면 베트남으로 간다. 그 곳에서 7.5개월간 본격적인 연수가 진행될 예정이다. 회사를 관두고 2.5개월 국내연수를 받았지만 여전히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중이다. 베트남에서도 계속해서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그래도 괜찮다며 회사를 관두겠다는 결심에 불을 지폈던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책의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모든 여행에는 자신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 그 많은 우회로와 막다른 길과 무너뜨린 과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 이 한 가지를 물어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

앞으로 쓰게 될 이 글엔 무엇이 담기게 될 지 나도 모르겠다. 그저 앞으로 남은 연수기간 동안 하게 될 경험, 생각, 깨달음 등을 하나씩 풀어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일관되지 않을 수도, 깨달음이 매번 변할지도 모른다. 그저 방황하는 25살의(곧 26살의) 여행기이자, 자아성찰의 장이라 보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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