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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산적생산자 Aug 04. 2019

회사를 쓰다 : 7년차 회사원 일상

흔하지 않을 수도 있는 흔한 회사원의 일상




굿모닝


6시다. S사의 기본 알람음이 울린다. 기본 알람이 울리는 걸 보면 나도 아재가 되어가는 걸까? 언젠가부터 기본 알람을 쓰기 시작했고, 지하철에서 울리는 다른 이들의 알람에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잦아졌다. 침대에서 기어나가 '다시 울림'을 선택한다. 침대에 스마트폰을 놔둔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끄고 자다가 지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나와 10년 째 잘 쓰고 있는 P사의 전기 면도기를 켜서 면도를 한다. 대충 세수를 하고 스킨과 선크림을 바르고 옷을 챙겨 입고 나간다.





출근길 (독서 혹은 포스팅)


출근길은 지하철을 이용한다. 내가 사는 지하철역 다음에 대부분의 사람이 내린다. 그래서 고정적으로 자리에 앉아갈 수 있다. 출퇴근 시간엔 독서를 하는 편이다. 5년 전부터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따로 시간을 내서 책을 읽진 않고 출퇴근 시간을 이용한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만으로 1년에 50권 전후의 책을 읽는다고 보면 된다. 그냥 잘 수도 있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책을 읽다가 잘 때도 많긴 하다.


성장판 독서 모임 책 따라 읽기 Jam





유연 근무제


현재 회사에서 유연 근무제를 하고 있다. 이걸 선도적으로 할리 없는 회사인데 알고 보니 이 제도를 시행하면 국가에서 보조금을 받는다고 한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옳다구나 싶어서 신청했다. 신청란에 기재한 사유는 흔한 육아도 업무상 이유도 아닌 '자기계발'이었다. 따로 적을 게 없었고 나는 그 이후로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고 있다. 본래 출근 시간인 8시 반보다 1시간 일찍 가서 1시간 일찍 퇴근한다. 교사의 퇴근 시간이 4시 반이라고 하는데 그걸 체험해보고 있다.


아침에 도착하면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유연 근무제를 쓰지 않고서도 내가 도착한지 10~20분 뒤면 도착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다. 나의 의문은 '이 사람들은 왜 유연근무제를 신청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그렇게 일찍 오는 게 당연한 건 아닌데 말이다. 외국에서 이렇게 일찍 오거나 야근하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그러지 말라고 한다는데... 내가 이상한건지 그들이 이상한건지 모르겠다.






업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업무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유연 근무제 덕분에 1시간 정도 다른 이들이 터치하지 않는 업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부르지 않는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옆에서 뒤에서 혹은 전화로 많이 부르는 경우가 많다. 업무가 뚝 끊긴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이메일을 정리한다든지 그룹웨어의 전자결재를 처리한다든지 전날 메모를 보면서 미결 업무를 챙긴다. 일은 끝이 없다. 사원 시절엔 일에 끝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점점 회사를 알아갈수록 일에 끝이 없다.


업무 분장

회사라는 조직의 분장에 대해서 요즘 생각을 많이 한다. 어떻게 보면 회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는 건데, 부서를 나눠 놓으니깐 니일이네 내일이네 하면서 싸우게 된다. 그렇게 일을 처리하다보니 일이 왔다갔다 하면서 늘어진다. 각 부서에서 전문적인 부분을 챙기면서 향후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방지하는 게 회사가 부서를 나눈 목적인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안타깝다. 나의 태도에도 부서 이기주의가 많이 스며들어 있긴 하다. 목소리 큰 사람이나 뻔뻔한 사람이 토스를 잘한다.


합리를 가장한 비합리

보고를 위한 보고가 반복되고, 회의를 하고 나면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채 다들 소리치고 나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보고에 진절머리 한다. 우리 팀장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 '보고서 쓰자'이다. 모든 일에 대한 보고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향후 문제될 수 있는 소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책임지지 않기 위한 문서 작업을 만드는 것이 관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분명 서류로 남겨 놓는 일은 향후 도움이 된다. 그런데 분석하고 보고하는 과정을 보면 일이 원래의 방향과 다른 쪽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7년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경영진이라고 항상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것 저것 쑤셔보다가 결국 초안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다.






프로젝트


회사의 전략적 프로젝트에 TF 구성원으로 들어가 있다. 기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조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간사를 맡게 됐고, 프로젝트는 진행되다보니 원래 나의 업무가 됐다. 본부장 보고 들어갔는데 너 이 아이템 담당자 아니냐고 하는 말에 '저는 TF 구성원인데요?'라고 할까 하다가 말았다. 하다 보니 이 업무가 원래 나의 업무가 되었고 사라질 것 같지 않다. 매출이 커져서 따로 발령 받아서 독자적 업무를 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조달 업무를 하다보니 만들어서 팔든, 갖고 와서 팔든 이익이 많이 남는 게 유리하다는 걸 알게 됐다. 고정비, 변동비 다 신경써가면서 제조하는 것보다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 우리의 로고를 넣어서 갖고 오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조달 원가와 판관비, 그리고 최종 이익률을 계산하는 작업을 수없이 진행하면서 회사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서 있다는 (시키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것에 뽕이 생기기도 했다.


평소 좋아하는 해외 출장을 갈 기회가 많아서 좋았고, 가서 나의 회사 내 공식적으로 유일한 능력인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사장, 본부장을 데리고 떠났던 수행 출장은 나에게 큰 경험이 됐고, 이후 떠났던 엑스포 출장은 모든 것을 내가 통역하고 진행할 수 있다는 하나의 자신감을 얻게 했다. 그 이후로 나의 핵심 역량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한번 해볼 수 있게 됐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내 운명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아직 프로젝트는 초입에 불과한 것 같다만.





퇴근


4시 반이다. 퇴근하자. 처음엔 4시 반에 바로 퇴근했는데 요즘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눈치를 받고 있다. 그래서 유연근무 설문에 나온 유연근무제 운영에 해가 되는 것에 상사가 눈치를 준다고 적었다. 4시부터 일을 계속 시키는 걸 보면 몰라서 그러는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럴거면 유연근무제와 함께 정해진 집중근무제도 제대로 시켰으면 좋겠고, 되도록 업무 오더는 오전에 줬으면 한다.


유연 근무제를 하기 전에도 보통 6시 전후엔 집에 갔다. 누군가 나의 글을 보면 아주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출근은 지키면서 퇴근은 지키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그게 남들이 다 남아서 야근하니깐 남아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무능함을 엉덩이로 증명하려는 것인가? 제발 눈치 보지 말고 집에 가자. 할일을 제 시간에 처리하고 제대로 했다면 빨리 간다고 자를 회사는 없다.





필라테스


퇴근 후 운동을 하러 간다. 몸이 조금씩 고장나고 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필라테스 피티를 받고 있다. 회당 나가는 비용이 생각보다 세지만 40-50대 되서 골골 거리느니 지금 몸을 만드는 게 좋겠다 싶어서 신청했다. 수강생이 힘들어하는 걸 즐거워하면서 수강생의 육체적, 정신적 증진을 돕는 필라테스 선생님과 함께 하고 있다. 나중엔 혼자서도 잘하는 게 목표다.


필라테스 피티를 받아도 내 몸은 싸인 곡선처럼 왔다갔다 한다. 다만 이전보다 진폭이 줄었다. 병원에 매일 가서 물리 치료를 받아야했던 작년을 생각해보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운동을 하면서 내 몸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다는 것이다.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걸 새삼 느낀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작용을 할텐데 그걸 메꾸느라 운동하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함께 운동해요





아지트


회사 이후의 업무 공간이 필요했다. 집에 있을 땐 유튜브를 보거나 딴짓을 많이 하게 된다. 코워킹 스페이스를 알아보다가 독서실 콘셉에 가까운 무늬만 코워킹 스페이스인 곳에 들어갔다. 돈을 일정 금액 내고 거의 24시간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카페처럼 생긴 곳에 자리를 잡았고, 거기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적거나 메모를 하고 있다. 회사 이후의 삶에서 뭔가를 만들어보려는 직장인의 발버둥이라고 보시면 되겠다.


아지트는 밥 먹고 2-3시간 정도 보내는 경우가 많고 주말엔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도착해서 하는 일이 정해져 있진 않다.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1인 기업을 오래전부터 꿈꾸고 있기 때문에 브랜딩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어떤 책이나 강의를 만들어낼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에 적어 놓은 메모를 살펴보면서 과거에 원했던 것들을 통해 미래를 꿈꾸는 걸 연습해보고 있다.


좌 : 아지트 모습 / 우 : 리디북스 페이퍼 리모콘 세팅


중간 중간 지루하면 자리에서 벗어사 스낵 코너에 가서 과자를 몇개씩 먹는다. 차를 먹기도 하는 편이다. 여긴 코워킹 스페이스이긴한데 공시생이나 공인중개사 준비하는 분이 많아 보인다. 그 사람들이 나를 보면 도대체 뭐하는 인간인데 저렇게 매일 올지 싶을 것이다.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아지트에 들어갔고,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거기서 보내고 있다.





블로그


아지트 퇴근 시간은 11시 반으로 정해놨다. 나는 일상 블로그를 매일 올리기 때문에 퇴근 30분 전에 포스팅 작성을 시작한다. 하루 일어났던 일을 돌아보면서 일상을 돌아본다. 회사에서 화났던 일도 적고, 재밌었던 일도 적는다. 이렇게 하루를 돌아보는 일을 작년 말까지 하다가 그만뒀는데 금단 증상이 심해서 5개월 정도 쉬다가 다시 시작했다. 나의 일상이나 생각을 남기고 돌아보는 것에 집착이 심하다. 그래서 그에 대한 책을 썼을 정도다.


http://yes24.com/Product/Goods/68868271


굳이 누가 보지 않더라도 하루를 이렇게 남기는 이유는 내 일상을 적어 놓고 보면 재밌기 때문이다. 정말 재미 없는 하루라도 똑같은 하루가 없다. 그래서 하루를 잘 살아보려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누르지 않을 카메라 셔터를 더 누르게 된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한 기록의 차원에서 좋은 일이다. '쓰여진 아픔은 아픔이 아니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힘들고 고되지만 기록됐을 때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나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도 이렇게 살아구나 하면서 위안을 받을 다른 이들에게 말이다.




https://blog.naver.com/owndesire






유튜브

한 때 유튜브를 열심히 했던 적이 있다. 지금 동력을 잃어서 쉬고 있는데 구독자 480명이다. 블로그보다 100배 어려운 게 유튜브 같다.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싶은 욕심 같은 게 있다. 영상 언어를 배우면서 배운 건 말도 할 수록 늘어난다는 것이다. 어버버 하는 경우가 많은 눌변인데 유튜브를 통해 달변으로 다시 나아가고 싶다. 기록에 대한 다양한 툴과 메모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유튜브이고 올해 안에 1,000명 구독자 모으는 게 목표인데 이제라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http://www.mdgr.kr






취침


집에 와선 바로 씻고 자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컴퓨터를 켜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필라테스 하지 않은 날은 운동하고 자면 좋을 것 같은데 사람이 게으르다. 명상을 하려고 시도하다가 불 다 켜고 잠든 적도 있다. 하루의 끝은 조용하고 조신하게 끝내는 게 좋은 듯 하다. 수면 시간이 부족해 12시엔 자려고 노력한다. 잠은 엄청 잘 잔다. 그리고 6시 기본 알람이 울린다.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엣지 오브 투마로우 같지만 나는 매일 다르게 조금씩 발전할 것이다.




마치며...


이 글을 쓴 이유는 나의 7년차 회사 생활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연말엔 다른 결산할 게 많기 때문에 (독서, 영화, 사건 등) 중간에 이렇게 돌아보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고 재밌다. 나중에 8년차 버전을 적을 수도 있고 현재를 정리하는 일은 나에게 의미가 있다. 적으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해오고 있는지 앞으론 어떻게 해야할지 어느 정도 방향이 보인다. 여러분도 한번 자신의 일상을 정리해보는 건 어떨지 제안하며 불혹을 앞두고 있는 7년차 회사원의 일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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