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워크랑은 다른, 독서실 비슷한 그 곳의 삶에 대하여
공유 오피스 들어간 사연
회사를 때려치고 싶었다. 이건 입사 이후부터 바뀌지 않는 나의 생각이지만 더 때려치고 싶었다.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 와중에 자신의 친구가 회사 때려치울려고 공유 오피스에 들어가서 1년 준비하고 퇴사했다는 얘길 들었다. 이전부터 공유 오피스에 관심이 많던 나는 하나씩 정보를 찾아보게 됐다. 사람이 나누는 말 한마디가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지점이다.
위워크 안 간 이유
위워크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투어 신청까지 했다. 회사 조퇴하고 공유 오피스 투어를 했다. 마음에 들었으나 한달 이용료가 너무 비쌌다. (지정 사무실 하나를 얻으려면 40만원 후반대) 그리고 라운지는 생각보다 빈약했다. 메인 라운지만 그럴싸 했고 나머지 층은 초라하다고 할 정도였다. 라운지 좌석은 20만원 후반대였지만 결정적으로 냉난방이 9 to 6까지만 지원한다고 했다. 나 같이 카페 대신 쓰려는 사람이 아닌 실제 회사의 입주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랬다. 그래서 나는 집근처 다른 공유 오피스에 가게 됐다.
이전에 두어번 가본 적이 있었던 곳이다. 오피스라고 하기엔 분위기나 모든 것이 독서실형이다. 대부분의 이용객이 공시생이다. 나중에 보니 나이 드신 분들은 대부분 공인 중개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이건 내가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차피 나이 들고 부동산에 관심 가질거면 어릴 때 알아놓자 싶었다. 다시 오피스 얘기로 돌아와서 한달 12만원에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같은 가격에 서랍이 달려 있는 완전 독서실형 책상도 있었으나 카페형 테이블을 골랐다. 디지털 노마드를 지향하기 때문에 서랍이 필요 없었다.
공유 오피스에 대하여
그렇게 들어오게 된 공유 오피스는 만족도가 그럭저럭 높았다. 매일 제공되는 두유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제조해 먹을 수 있는 커피 머신도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스낵이 제공되어 입이 심심하거나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갈 공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 좋았다. 항상 카페에 갈까 하다가 딱히 할 것도 없고 돈도 아까워서 집에 가서 시간을 유튜브나 넷플릭스에 탕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갈 곳이 있다는 게 좋았다.
여기 있는 분들이 보기에 나는 아마 한량일 것이다. 책 읽다가 스마트폰으로 뭔가 두들기다가 메모하다가 자다가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저녁에는 나타나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고, 주말엔 나타나서 시간을 쭉 보낼 때도 있다. 여기선 새롭게 사람을 알아갈 기회도 없고 예전 수능을 준비하던 시절의 내 추억을 되새길 트리거만 종종 접하고 있다. 한량의 이미지로 살아가는 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다른 건 서고에 책이 많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괜찮은 책이 많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픽처>를 읽었고,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책, 그리고 지금은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혁명>을 읽고 있다. 경제, 경영 그리고 심리학과 인문학에 대한 책이 많이 꽂혀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탐독하고 있다. 내 책이 아니기 때문에 에버노트에 기록하면서 보고 있는데 읽을 책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나만의 도서관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뚜렷한 목표는 없지만, 뭔가는 하는 공간
여기에 들어온 이후 메모를 하면서, 그리고 멍때리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봤다. 고민을 하다보면 길이 보인다고 했던가? 이전부터 눈에 밟히던 구매대행업을 시작하게 됐다. 회사 다니면서 지속 가능한 사업이었고, 결국엔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는 수단으로 판단됐다. 해보다가 아니면 그만두면 된다. 결국 삶은 해보면서 자신에 맞는 걸 찾아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걸 그렇게 찾아왔다. 이게 아니면 절대 안된다는 식으로 각 잡고 할 필요가 없다. 조금씩 천천히 하다보면 자신에게 맞는 걸 찾게 되고, 맞는 게 결국 남게 된다. 네이버에 스마트스토어를 열고 사업자 등록하고, 통신판매업 신고까지 완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식 콘텐츠 사업자보다 구매대행 사업자를 먼저 내게 됐다. 이번에 읽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보면서 결국 답은 사업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공유 오피스 루틴
아지트라 불리는 공유 오피스에서 밤 10반에서 11시 정도 되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포스팅을 한다. 이전엔 집에서 12시에서 1시에 시작했던 일인데 해야 할 일은 여기서 다 하고 집에 가서 바로 쉬도록 하는 게 나의 목표가 됐다. 덕분에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밥 먹고 다시 아지트에 출근하고 다시 퇴근하는 2번 출근하고 퇴근하는 삶을 공유 오피스에 들어오면서 맞이하게 됐다.
이 오피스는 지정 좌석은 11시 30분까지 사용할 수 있고, 24시간 쓸 수 있는 라운지가 따로 있다. 그래서 혹시나 밤을 새거나 늦게까지 작업해야할 때 라운지에서 작업 가능하다. 내 지정석과 거의 비슷한 자리다. 나는 딱 한번 거기서 늦게까지 독서를 했다. <팩트풀니스> 모임 참석을 위해 거의 반을 하루만에 다 읽었다. 집에서 읽었다면 아마 졸다가 바로 침대로 기어 들어가서 다 못 읽었을텐데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집과 분리된 공간이 있어서 좋다.
To Continue or To Stop
지금 한달 결제하고 연장 여부를 결정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4개월 이상 결제하면 10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고민 중이다. 오랜 시간 끊어 놓으면 왠지 또 오기 싫을 것 같은 이상한 심보 때문이다. 나라는 인간을 나 자신이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조금 비싸더라도 한달만 끊을까 싶기도 하다. 향후 4개월 동안 나에게 큰 변화가 있진 않겠지만, 언제든 삶에 변화는 오게 마련이다. 새로운 대안이 나타나지 않으면 계속할 것 같은데 확언은 금물이다.
일요일 오후 3시쯤 와서 5시간 정도 있었는데 이젠 살짝 지겹다. 일요일 할 일인 글을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집에 가서 쉬고 싶어서 지금 머무르는 공간에 대해서 글을 적고 있다. 왔다갔다 하면서 들르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도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나의 아지트에 대한 글을 마친다. 나는 과연 언제 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