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즈 인 홍콩 마카오 - #9. 전군, 출정하라

by 생산적생산자

옥토퍼스 카드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서 에그 타르트를 먹는다. 정말 녹는 맛이었다. 엄마손 파이의 부드러운 버전에 안쪽엔 달달한 계란이 들어있는 형태였다. 마치 백두산 천지를 머금은 듯한 자태를 뽐내는 과자였고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중요한 끼니 해결 수단이 되는 에그 타르트, 8개 사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옥토퍼스 카드를 사기 위해서 침사추이 역으로 가려고 했다. 일찍 일어난 친구가 공부해놔서 편하게 찾아갈 수 있었다. 이상하게 이번 여행에선 구글 지도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홍콩의 마천루들 사이에서 GPS가 신호를 잘 받지 못하는가 싶었다. 침사추이 지역은 마천루가 많지도 않았는데 GPS는 잘 터지지 않았다. 10분 정도 걸으니 침사추이 역이 나타났다.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서 안내 센터를 찾았다. 거기서 홍콩의 만능 카드인 옥토퍼스 카드를 팔고 있었다.


옥토퍼스 카드를 샀다. 홍콩에선 만능으로 사용 할 수 있다. 만능 카드의 추억에 젖어 마카오에서도 꺼내서 쓸 뻔 했다. 홍콩에선 옥토퍼스 카드 하나면 다 된다. 많이 충전해놔도 괜찮다. 나중에 공항에서 남은 금액을 환불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옥토퍼스 카드를 2개 사서 우리는 엘라 아줌마가 알려준대로 973번 버스를 타고 스탠리 마켓으로 향했다.


홍콩 버스 시스템

홍콩 버스는 특이한 게 손을 흔들어야 선다. 택시랑 비슷한데, 손을 안 들고 있으면 그냥 지나 가버린다. 합리적인 버스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탈 사람이 없으면 서지 않고 바로 달릴 수 있으니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우리는 2층 버스의 제일 앞에 자리했다. 옆엔 미국인 한 커플이 있었는데 친구가 여자친구가 매우 이쁘다고 했고, 나는 내릴 때 얼굴을 봤는데 아니었다. 동태 시력을 가진 친구를 데리고 다니면 동체 시력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침사추이 내부를 심하게 훑고 나서 다리를 건너 셩완 지역을 통과했다. 명품 거리도 통과하고 내 기억으론 센트럴 지역도 통과했다. 시티투어 버스랑 같은 노선을 가졌다고 한다. 홍콩의 곳곳을 누비면서 아래 섬의 끝쪽에 위치한 스탠리 마켓이라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약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햇볕이 뜨거웠고 오랜 시간 의자와 접촉한 내 엉덩이는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넓게 펴려진 바다를 보니 자유가 떠오른다. 인간은 어디든 묶일 수 밖에 없는 존재라 그런 것일까? 우리는 떠남을 갈망하면서도 현실과 주변에 묶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마음을 잡아 끄는 장면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사진으로도 좋지만 글로 남겨놓는 일은 수고스럽지만 가치있는 일이다. 옆에서 자는 친구는 7시부터 침사추이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았나보다. 꾸벅꾸벅 거리면서 자는 그의 고통스런 얼굴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여행의 모든 순간이 즐겁고 설레는 건 아니다. 버겁고 귀찮을 때도 있고, 일상만큼이나 지리멸렬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여행에 우리가 적용하는 프레임은 다르다. 일상은 매일 겪는 일이니까, 아쉬움이 없고 중요하지도 않게 느낀다. 여행은 매일 겪을 수 없기에 우리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 다시 볼 수 없는 장소라고 느끼기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대부분 남는다. 일상에 여행의 프레임을 씌운다면 우리 생활은 행복할 것이다. 이 순간이 마지막 순간이고 다시 대면할 수 없다는 걸 인식한다면 일상의 삶도 견딜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물론 안된다는 건 경험적으로도, 그냥 생각해봐도 안다. 그냥 해본 말이다. 일상은 여행이 아니니까.


홍콩은 건물 대부분에 모두 에어컨이 달려 있다. 에어컨의 필터에서 떨어지는 물이 비 같이 내린다. 거리를 지나다닐 때도 비가 오나 싶어서 보면 머리 위로 에어컨 실외기가 보인다. 엄청나게 많은 실외기는 징그럽게 보이기까지 하다. 전력난은 없을까? 누진세는 있을까? 하는 우리나라 뉴스에서 많이 나왔던 누진세와 관련된 이슈 사항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스탠리 마켓

잠자는 옆자리의 왕자가 잠에서 깼을 무렵, 우리의 973번 버스는 스탠리 마켓에 도착했다. 머리가 띵하다. 숙취 때문일까. 회사에서라면 편두통이 폭발했을 건데 여행은 두통을 악화시키지 않고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평소에 하는 정신적 중노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스탠리 마켓은 해변을 끼고 있는 종합 쇼핑몰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파악했다. 사람들이 쇼핑을 많이 하진 않는 듯 보인다. 여러 음식점이 늘어서 있고 해변의 정취와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여유로움을 지닌 공간이 가지는 특징은 도심에서 떨어져 있을 것, 여유로운 음악이 흘러나올 것,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을 것 정도이다.


나는 버스를 타면서 뭔가를 읽으면 두통이 온다. 원체 멀미를 안 하는 스타일인데 요즘은 버스 탈 때 조금씩 머리가 띵함을 느낀다. 그게 멀미의 증상이란걸 32살 먹고 나서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엔 버스 탈 땐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지 않는다. 지하철은 괜찮은데 버스는 힘들다. 버스 창가로 비추던 그날의 따뜻한 햇빛이 떠오르고 띵했던 나의 머리의 감각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두통은 다른 곳에서 겪었지만 같은 놈일 것이다. 이 또한 무스비.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우리의 우아한 여행의 첫날 점심에 딱 어울리는 글로벌 패스트 푸드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세트를 시켜먹었다. 맥도날드 앞엔 서양인들이 많았고, 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인은 많이 보이진 않았으나 적당히 보였다. 모녀가 같이 놀러 온 그룹이 많이 보였고, 나는 언제쯤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엔 없는 맥도날드 세트를 시켰고 우리는 한국에서와 비슷하게 맛있게 흡입했다. 빅맥 지수가 얼마인지 체크해보지 않았고 한국 햄버거가 더 맛있다는 말을 했던 거로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여행지를 기억할 수 있는 수단은 사진만이 남는다. 사진은 우리의 기억을 왜곡시킨다. 마치 여행의 모든 순간이 재밌었고 즐거웠던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는 인간의 기억에 카메라 앱의 필터(러블리하게 만들어주는)와 같은 장면의 커튼으로 작용하고 지난하고 어물쩍했던 산문적인 여행의 기억을 아름답고 각운까지 딱딱 들어맞는 유려한 운문으로 만든다.


이게 사실인지 싶어서 여행 당시에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모두 행복해 보이고 지리멸렬해 보이는 사진은 하나도 없었다. 당시에 느꼈던 짜증이나 여행지에서 느낀 권태로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사진은 우리의 추억이란 것을 아주 아름답고 이쁘게 기억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나보다. 그 순간에 있었던 다큐멘터리적인 순간과 일상적 순간들은 걷어내고 네모난 프레임 안에 담긴 당시의 여행자적 마음을 불러온다. 지금 일상과 비교할 때 여행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고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떠나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에서 찍은 사진은 모두 좋아보일 수밖에 없나보다.


피곤하고 빠듯한 일정에 힘들어하고, 졸면서 힘들게 보낸 기억도 행복해 보이는 자신의 사진, 멋진 풍경 사진이란 커튼으로 운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떠나는 이유는 인간의 탈출 DNA가 유전자에 아로새겨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언제나 조금은 불만스럽고 우울한 상태로 살아가는데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근원적 욕구로서의 탈출 말이다. 그래서 보들레르는 떠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DNA의 욕구에 충실한 하나의 개체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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