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빅토리아 피크에 도착해서 계속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5~6층 정도 올라갔을까? 아니 더 올라갔다. 갑자기 줄이 길어진다. 보니깐 스카이테라스에 가려면 표를 사야 한다. 홍콩 만능 카드인 옥토퍼스 카드로 결제를 할 수 있었다. 40홍딸 정도가 카드 리더기에서 깎였다. 친구와 나의 홍딸은 3홍딸이 남았다. 아슬아슬한 홍딸을 옥토퍼스 카드에 담은 채 스카이테라스에 진입했다. 옥상으로 진입하는 순간 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내 눈으로 쏟아졌다.
스카이 테라스는 홍콩에 놀러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엄청 붐볐다. 모두 야경에 심취해서 사진을 찍는 데 열심이었다. 나도 질세라 바로 카메라를 꺼내서 홍콩의 야경을 찍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본 야경 이후론 처음으로 제대로 감상하는 타국의 야경이었다. 입구 쪽에서 오른쪽에는 전문 사진사가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고, 우리는 우리의 셀카봉으로 풍경 사진을 찍기도 하고 셀카를 찍기도 했다.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서 야경이 보이는 가장 모서리 자리로 향했다. 그 자리로 가는 사람들의 경쟁률이 매우 치열했다. 그러나 겨우 도달했을 때 느낀 바는 별 것 없었다. 저기서 찍으나 여기서 찍으나 홍콩의 밤 풍경은 비슷했다. 그냥 느낌상 가장 가까운 곳이라 사람들이 거기 많이 몰려있었다. 그런데도 사람은 물리적 거리가 이쁜 야경을 자신의 카메라 안에 담아줄 거라 생각해서 모서리로 향한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모서리로 향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사진을 찍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올라왔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서 올라온 게 아닌가? 그래서 잠시 카메라를 내려 두고 홍콩 도심의 건물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슬펐다. 건물에 불이 켜져 있다는 건 아직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저녁 8시가 훨씬 지난 시점에서 그들은 여전히 사무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 많은 건물의 유리가 조명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건 슬픈 아름다움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그 불빛이 뿜어내는 전체적인 분위기에 취해서 야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하나씩 뜯어보면 야그너들의 눈물이 배어있는 슬픔의 빛이다.
나는 요즘 야근을 많이 한다. 이 여행을 갔을 때만 해도 야근을 자주 하진 않았다. 요즘은 매일 정규 근무 시간을 넘겨서 회사 버스가 나가는 시점인 8시까지 근무를 하고 있다. 회사가 나에게 맡겨주는 무자비한 의무감은 내가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것이었으나, 회사 분위기상,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 되고 있다. 왜 회사 생활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일까. 우리 회사는 사람들이 야경을 보러 올라갔을 때 보이는 건물이 아니지만, 하늘에서 볼 때 하나의 불빛을 담당하고 있다. 김해 공항에서 떠오르는 비행기들이 수많은 불빛 중의 하나인 우리 회사를 보고 이쁘다 할지 모르겠다. 야경은 아름다우나 야근은 슬프다. 홍콩 야그너들의 눈물이 만들어 낸 야경이 눈에 선하다.
그럼에도 야경은 이뻤다. 부산에서나 서울에서나 대만에서나 일본에서나 모든 야경은 이쁘다. 어둠 속에 빛나는 아기자기한 빛의 향연은 사람을 매혹시킨다. 다양한 빛깔이 뿜어져 나오며 사람의 눈을 현혹시킨다. 부분을 자세하게 뜯어보지 않는 한 전체로서의 야경은 고색창연하게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는 문구가 생각나는데 나는 '야경은 그렇지 아니하옵니다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게 사진을 찍다가 친구랑 찢어진 시간이 있었다. 그러다 좌측 구석에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 가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청년이 건물 관리하는 직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는걸 지켜봤다. 그런데 직원이 거부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사진을 부탁했을까? 그도 처음엔 사진을 찍어줬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반복된 부탁은 일이 돼 버린다. 그 청년이 조금 뻘쭘해보였다. 그 청년은 (나도 청년인 편이지만)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에게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라고 한다. 나는 측은지심의 기운을 감추며 '당연하죠'하면서 사진기를 들었다. 아이폰6 플러스 정도 되겠다. 가로로 찍을까? 세로로 찍을까? 물어보고 싶었는데 가로의 영어 단어 말고는 생각나는 단어가 없어서 바디 랭기지로 해결했다. 숙련된 사진사답게 오른쪽에 자신을 위치시킬지 왼쪽으로 위치시킬지도 물어봤다. 만족스러운 퀄리티의 사진을 찍어줬고 나는 다시 친구를 찾아 나섰다.
나는 친구를 찾아 헤맸고 카톡으로 연락해서 사진사 앞에서 만났다. 한적한 곳에 가서 우리끼리 사진을 좀 더 찍다가 내려왔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머리는 파마한 것 같이 뽀글해졌다. 홍콩 상단부에서 맞는 바람은 매섭진 않았지만 내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기엔 충분했다. 빌딩에서 내려오는 길에 허접한 트릭아트 전시회도 있었는데 결국은 마지막에 돈 받고 사진찍어주는 걸 위한 미끼 행사였다. 그래서 우린 과감하게 역주행 해서 행사장을 나왔다. 이젠 내려가는 길이 문제다. 내려가는 길도 올라올 때 만큼이나 피크트램을 오랜시간 동안 오매불망 기다려야 했다. 그 기다림은 녹록치 않다는 걸 블로그 후기를 통해서 많이 보고 듣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센트럴까지 걸어서 약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구글 지도는 얘기해줬다.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걸어내려가고 있었고 우리도 이에 질세라 속보로 내려갔다.
무릎에 별로 좋지 않을 하산이었고 마음은 급했다. 배가 고팠고 발이 아팠다. 여행이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는 이제 소진되고 여행이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거의 다 내려와서 택시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기로 했다. 홍콩 스테이션이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MTR)이었다. 우리는 기본 요금을 택시에 지불하고 홍콩의 만능카드 옥토퍼스를 꺼내고 당당하게 MTR을 탔다.
친구가 침사추이는 주황색 라인이란다. 나는 친구를 믿었고 주황색 라인을 타러 갔다. 엄청나게 긴 길을 걸었고 지하철을 탔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두 정거장만 가면 될 역인데 불안한 마음에 '침사추이?' 하고 물어보니 환승을 해야 한다고 어떤 남자가 알려줬다. 우리가 봤던 노선은 두 정거장만 가면 되는 거였는데... 그러나 이미 우리는 지하철을 탔고 센트럴 MTR에 도착했다. 남자가 알려준 대로 환승을 할까 싶었지만 안전하게 다시 돌아가자고 내가 제안했고 친구는 동의했다.
그래서 우린 타고 왔던 열차의 반대방향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홍콩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엄청나게 길었던 지하철 이동 경로를 따라 원점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빨간색 라인으로 갈아탔다. 라인 색깔이 조금 실제와 다를 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빨간색 라인을 탈 때도 침사추이 역이 제대로 적혀 있는지 확인했다. 아메바를 철썩같이 믿은 내 잘못이었노라. 허허 웃어 넘겼다.
타국에서 이동할 땐 확실한게 아니면 무조건 물어보는게 정답이다. 일상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사태 수습이 정말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버스를 잘못 타고 이상한 곳에 가서 다시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겪어본 사람은 다 알 것인데 여행에서는 두 세배 힘들다.
그래서 빨간색 라인을 타고 가면서도 어떤 여성분에게 '침사추이?'라고 물어봤다. 거기로 간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편안히 자리에서 기다릴 수 있었다. 두 정거장을 가는데 한 정거장을 남기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차했다. 불안했다. 그러나 기다렸다. 한 정거장 더 가니 침사추이 역이 나왔다. 아까 가르쳐준 여자분이 아직 서 있었다. 여기라고 나에게 눈짓으로 말해줬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내렸다. 홍콩의 친절함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순간이었고, 무사히 침사추이 역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배가 고팠으나 다시 오늘의 메인 메뉴인 란콰이펑으로 가기 위해 세팅을 해야 했으므로 일단은 참았다. 그러다가 아침에 사놓은 에그 타르트가 있는 게 기억나서 바로 먹었다. 4개가 남았는데 2개씩 나눠 먹었다. 배가 차서 지금까지 배고프다고 하던 나의 불평은 멈췄다. 나는 배고프면 예민해지고 제 때 먹을게 안들어가면 주위 사람과 티격태격한다. 에그 타르트는 우리 여행의 평화를 찾아줬다. 그리고 간단하게 씻고 나서 란콰이펑으로 향했다. 헤매면서 몸으로 익힌 노선이므로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나의 배고픔과 기분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니 경주에 놀러 갔던 기억이 난다. 여자친구와 경주월드에 놀러갔을 것이다. 이것저것 보고 나서 여자친구가 유채꽃이 있는 곳에 가보자는 말을 들었고, 나는 가기 싫다고 했는데 끝까지 보고 싶다고 해서 유채꽃을 보러 갔다. 유채꽃 축제의 현장은 유채꽃의 시체산으로 변해 있었다. 모두 깎인 상태로 눕혀져 있었다. 나는 화를 냈고, 우리의 여행은 거기서 묵언 수행으로 바뀌었다. 배가 고팠고 발이 아팠고 짜증이 났다. 그 이후엔 화해를 했지만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이유는 당시에 내가 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가 아니었을까? 좋은 순간을 같이 하고 싶었던 사람에게 그런 반응을 보였던 과거의 나, 지금은 조금은 인간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