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즈 인 홍콩 마카오 - #13. 다시, 란콰이펑

by 생산적생산자

다시 란콰이펑

센트럴 역에 다시 왔고 우리는 란콰이펑으로 향했다. 아까 돌아다니던 길이라 조금은 친숙했다. 조금 들어가니 시끌벅적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레벨즈란 클럽과 매그넘이란 클럽이 나왔다. 둘이 건너편에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아예 차가 못들어오게 길을 막아놓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신세계가 펼쳐졌다.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고 있었고 그 춤의 시작은 좌우로 늘어선 펍이었다. 안은 안대로 바깥은 바깥대로 엄청나게 붐비는 풍경을 보여줬고 웨스턴들이 정말 많았다. 정말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었고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흥에 취해서 춤을 추는 웨스턴들은 정말 신나 보였다. 란콰이펑은 낮과 밤이 다른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동네다. 낮엔 학교에서 공부하고 착실해 보이는 여자가 밤엔 클러버가 되는 그런 느낌이다. 남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겠지. 이곳은 웨스턴들의 파티가 벌어지는 곳이다. 말 그대로 엄청났다. 그렇게 거리를 매운 사람들의 에너지는 정말 폭발적이었고, 흥이 절로 났다.


그 엄청난 분위기를 보고 난 이후로 아까 봐놓은 란콰이펑의 레벨즈라는 클럽에 갔다. 일찍 가니까 무료 입장이라고 한다. 5분이나 1시간 뒤엔 무료입장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하는 약간의 약팔이 전략을 들었으나 무료니까 그냥 들어갔다. 들어갈 때 남자가 코레안 하련서 웃은건 왠지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들어가니깐 아직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약간의 리듬을 즐기다가 예거밤을 하나 마셨는데 너무 불친절했다. 컵의 반도 안 되게 채워주길래 이게 뭔가 싶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 있냐고 물어보니 그렇단다. 그래서 아까 본 세븐일레븐으로 향했다. 거기 주위에 엄청난 인파가 춤을 추면서 놀고 있었고, 세븐일레븐은 가게에서 술 먹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술 사러 온 인파로 꽉 차 있었다. 코로나, 하이네켄을 골라서 거리에서 노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시 봐도 엄청난 광경이었다. 한 남자는 술이 떡이 되어 완전 고개를 숙인 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고 친구는 몸싸움을 했는지 오른쪽 뺨에 상처가 있었다. 토를 했는지 가게에서 물청소를 했고 많은 물이 경사로를 타고 흘러내려갔다. 길 바닥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다가 다시 레벨즈로 들어갔다.




레벨즈

다시 레벨즈로 가보니 안에 사람이 좀 많이 찼고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춤을 추면서 놀았다. 맥주를 마시니 취기가 조금 올라왔고 흥도 올라왔다. 몸을 살짝살짝 흔들면서 주위를 구경했다. 안에서 술을 한 두잔 정도 더 마셨다 엄청 취했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재밌게 놀았다. 어떤 여자애가 내가 마시던 술을 달라길래 얼마 안 남아서 컵째로 줬다. 남자랑 같이 춤추면서 나에게 관심의 신호를 보내는 것일까? 암튼 나는 그렇게 재밌게 놀았다.


중간에 친구가 앉아서 담배 피우는데 피지 말라고 하면서 막 밖으로 끌려나간 사건이 있었다. 매장 밖으로는 아니었고 스테이지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그 과정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렸고 내 친구 거라고 달라니까 본인 확인하고 돌려준다고 한다. 친구가 우스꽝스럽게 이소룡 포즈를 취하며 찍은 사진으로 인정을 했고 직원은 엄지척을 던지며 친구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그런 일이 있었고 한 두시간 정도 그러고 있었을까? 어떤 여자가 내 춤추는 것을 보면서 웃는다.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고 있었던건 아닌데 나를 보고 웃는다. 그러다가 나에게 말을 건다.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본다. 나는 한국 사람처럼 보이냐고 물어봤다. 웃긴 말을 한건 아니었는데 국적 확인의 대사에서 한국말이 튀어나와서 웃겼나보다. 엄청 웃더라.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엄청 이뻤다. 그러면서 같이 온 여자분 한 분과 친구도 같이 놀게 됐고, 얘기를 나누는데 귀가 잘 안 들리시나 보다. 귀에 대고 소리 지르는데 몇 번을 말했다. 자기가 잘 안 들려서 그런지 내 귀에 대고 소리 지르는데 귀가 멍했다. 클럽 음악도 멍한데 그녀의 목소리로 더 멍해졌다.


그녀는 서울 사람이라고 했고 나는 부산 사람이므로 친구랑 엮어주는 게 더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자기들은 자매라고 한다. 언니는 엄청 이뻤고 동생은 내 기준에선 별로였다. 왠지 그걸 보면서 케이트 블란쳇이 나온 인생의 낙차의 크기를 보여주는 영화 <블루 재스민>의 유전자 몰방 이론이 생각났다. 그 둘은 입양된 자매였지만 언니는 이쁘고 잘 나가고 공부 잘하고 동생은 아니었다. 암튼 그런 생각이 났다.


서울 사람이라고 했고 나는 부산이라고 했고, 부산에 한번 놀러오라고 했다. 나이를 물으니 25살이라고 한다. 내 나이를 묻길래 고전적인 대답인 '맞춰보라'를 외쳤고 스물일곱이냐고 물었고 그것보다 많다고 했다. 29살이라고 했고 그것보다 많다고 했다. 서른 셋 하길래 그것보다 많다고 했고 세른셋 하길래 그것보다 적다고 했다. 아저씨라고 했고 나는 보이는 건 그렇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지금 그 여자분이 짐작했던 한 살 많은 서른셋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나에게 30대는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30대 중반으로 흘러가고 있다. 시간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원이라면 나는 이 자원을 잘 쓰고 있는지 항상 궁금하고 의심을 하게 된다. 이 유일한 자원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데 있어 탕진되거나 낭비되고 있진 않은지 말이다. 이렇게 지나간 일을 기록하고 추억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시간의 낭비가 아니냐고 반론할 수 있겠다. 나에겐 이렇게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게 내 인생에서 의미가 있는 일이다. 각자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보내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30대도, 다가올 인생의 끝까지 나는 기록을 하고 싶다.


같이 춤을 좀 추다가 친구에게 넘기고 나는 동생과 놀았다. 동생도 언니의 마음씨를 닮아서 착했다. 언니는 서울 사람이라던데 왜 너는 광주 사냐니깐 원래 광주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광주에 갔던 여행 기억을 말했고 볼 게 없다고 광주에 대한 디스를 했다. 민주공원 갔었다고 하니깐 '올~' 한다. 암튼 사람은 어디든 다녀봐야 대화할 소재가 생기고 소통의 가능성이 조금은 늘어나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신나게 넷이서 놀다가 친구는 러시아 남자가 주는 술을 (보드카로 추정) 원액 그대로 받아먹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집에 가자고 했다. 어차피 자매와 같이 나가서 술을 더 마실 생각은 없었고 나는 조금 더 놀 수 있었지만 팀원의 체력 안배를 위해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친구가 김아중 닮은 서울 사는 그녀에게 정성을 너무 쏟은 데다 술까지 너무 퍼마셔서 급작스럽게 피곤해했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라면을 샀다. 내가 보기엔 홍콩엔 편의점이 세븐일레븐밖에 없다. 첫날 신라면을 샀고 둘째 날에도 신라면을 샀다. 하나는 작은 사이즈로, 오늘은 큰 사이즈로 샀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 부엌에 잠입하여 물을 끓였다. 그 사이 친구는 속이 너무 안 좋아서 토하고 왔고 나는 그 빈 속을 채우기 위해서 라면을 대령했다. 게스트 하우스 테이블에서 먹기엔 냄새가 날릴거 같아서 우리 방 옆에 있는 테이블로 건너와서 라면을 먹었다.


피곤했지만 씻고 자야 개운할 것 같아서 샤워하고 오니 친구는 자고 있었다. 안 씻을 거냐고 물으니 그냥 잔단다. 그래서 놔두고 잤다. 그리고 자기 전에 아이패드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적었다.


(이 부분은 홍콩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터보젯으로 마카오로 넘어가는 중에 음식 트레이에 아이패드를 얹어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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