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아침
다음 날 아침도 역시 친구가 깨운다. 인간 알람이다. 배가 고프면 일어난다. 속이 안 좋다고 한다. 우리의 오늘 계획은 마카오로 넘어가는 것 이외엔 없다. 적당히 밥을 먹고 좀 돌아다니다가 페리 터미널에서 표를 사서 마카오로 갈 생각이었다. 일진 정말 안 좋은 하루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됐다.
아침에 엘라 아줌마가 어제처럼 딤섬 집에 데려다줄까 한다. 그런데 우리끼리 갔으면 먹었을 건데 같이 가는 팀이 남자라서 그냥 성림거에 가보기로 했다. 과거 순간에서의 미래는 미래의 특정 시점이 지나봐야 옳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성림거에 가기로 한 결정은 지금 돌아보면 아주 잘못된 결정이었다.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딱 11시에 맞게 나왔다. 샤워를 하려고 챙겨보니 자기 전에 샤워를 이미 했던 터라 속옷은 갈아입지 않고 샤워만 하고 머리를 물에 적셨다. 나와서 세팅을 하고 마카오 컨셉에 맞게 자유로워 보이는 바지와 셔츠를 입었다. 마카오를 생각하면 마카오 박이 생각난다. 도박이 유행하는 도시에서의 의상은 백바지에 휴양지에서 입을 만한 셔츠 아니겠는가? 나도 그 컨셉에 맞춰서 옷을 입고 마카오로 넘어갈 준비를 마쳤다.
작별 인사
그리고 이제 나간다고 인사를 하러 가니 엘라 아줌마가 기념촬영 한번 하고 나가자고 하신다. 방명록에 붙일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글을 좀 남기고 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 다 잡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는데 필름이 없었다. 그래서 카메라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친구와 둘이서도 찍고 아줌마와도 찍고 게스트하우스 헬퍼인 로나와도 찍었다. 어제 계획 알려주신 게 너무 도움이 되서 좋았다고 말씀드렸고, 기분 좋아 하셨다. 블로그 후기 남기면 카페에 알려달라는 부탁도 간곡하게 하셨다. 꼭 후기를 남겨야 할듯싶다. 오늘도 별 계획 없냐는 악의 없는 농담이 사실이라 웃어넘겼다. 마카오 가이드북도 선물로 받고 게스트 하우스를 나왔다.
성림거
성림거를 가기 위해 침사추이 역으로 향했다. 이때부터 우리의 고난은 시작된다. 침사추이 역 출구에서 어디로 가면 바로 나온다는데 그걸 찾기 위해서 침사추이 역과 온갖 지점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하나 싶었다. 그사이 어떤 블로그의 자세한 지점 소개를 보고 우리가 몇 번이나 지나쳤던 그 성림거를 찾았다. 아까 지나치면서 성 뭐라고 적혀 있다고 하면서 지나갔는데 거기였다. 시각적 단서가 제대로 없으면 보고도 지나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성림거, 우리의 진정한 고난은 여기부터 시작된다. 겨우 주문을 했다. 스프라이트를 시켰는데 5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빨대를 한 개 갖다주길래 두 개 달라고 했는데 스프라이트를 하나 더 갖다 준다. 시킨게 아니라고 취소한다고 하닉까 '노 캔슬' 이러면서 불친절의 끝을 보여준다. 한국인의 패기로 더 싸우고 싶었으나 스프라이트를 그냥 두 개 먹기로 했다. 그걸로 싸우고 있으니 옆에서 아주 음식을 맛없게 먹고 있던 한 아주머니가 점원에게 막 뭐라고 한다. 알아들을 순 없으나 느낌상 항의의 목소리로 들렸다.
그리고 앉아있던 여자분이 우리에게 '다이조부데스까?' 라고 한다. 일본어로 물어 본 이유는 친구가 친일파 같이 생겨서 그런 걸로 나중에 추정해봤다. '다이조부데스'라고 말했다. 거기에 그 당시에 봤던 영화 <러브레터>의 '오겡끼데스까~'를 해보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으나 미친놈으로 생각할 것 같아서 참았다. 주위에 앉은 사람들도 생각했던 음식 맛이 아니라서 실망한 눈치였다. 스프라이트 따지도 않은 걸 자기가 들고 왔으니 환불이 안 된다고 하는건 무슨 논리인가. 정말 화가 났던 순간이다. 스프라이트 빨리 주지도 않고 또 오더에도 미스가 있었다.
찾아오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고 분노의 상태로 들어온 우리의 불타는 기운에 기름을 얹는 사건이었다. 정말 화가 났으나 가격도 얼마 하지 않는 거로 기분이 상한 나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고 그냥 먹기로 했다. 우리는 다시 희희낙락 거리면서 스프라이트를 흡입했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리가 시킨 쌀국수는 정말 맛이 형편없었다. 너무 맛이 없었다. 신맛이 너무 강했고 중국 특유의 향이 배어 있었다. 조금 먹다가 말았다. 완탕면은 정말 괜찮았는데 이건 아니었다. 국물은 거의 마시지 않았고 면과 안에 있는 건더기를 조금 건져 먹고 밖으로 나왔다.
완전히 잊고 살고 있었던 이 사건을 글로 접하니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꼭 블로그 포스팅을 남기겠다고 했던 나의 다짐은 게으름으로 사라져 버렸고, 책에서 실명을 거론해도 될지 갈등에 휩싸이고 있다. 여행이라서 좋게좋게 넘어가자고 하는 순간들이 쌓이면 여행을 낭비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하는 스타일이 진짜 맞는 것 같다. 여행 많이 해본 회사 동기와 우연히 대만 일정이 겹쳐서 하루 같이 다녀 본 경험이 있다. 그는 여행 가서도 카페에서 스마트폰 업무를 보고 유명한 관광지를 여기저기 찾아다니지 않는다. 단지 여행지 자체의 분위기를 즐기고 그곳에서 보내는 일상과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감상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러니 여행지에서도 싸울 건 싸우고 화낼 건 화내야 한다. 여행의 일상화, 일상의 여행화를 울부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