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즈 인 홍콩 마카오 - #16. 세나도 광장 나들이

by 생산적생산자

세나도 광장

호텔 근처에 세나도 광장이 있어서 걸어가기로 했다. 카운터를 지나쳐 문을 나서려니 문을 벨보이가 잡아준다.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보길래 세나도 광장이라고 했고 걸어가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길을 건너서 왼쪽으로 쭉 가면 맥도날드가 나오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세나도 광장이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길을 걸었고 걸을수록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제대로 왔구나 싶었다.


마카오는 발 닿는 대로 다니다 보면 관광이 된다는 말을 친구가 봤다고 한다. 그 말에 의심을 가지면서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게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길을 잃었을 때도 육체적으론 힘들었지만 그렇게 예전처럼 짜증이 확 나진 않았다. 길을 잃을 때 진정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말이 기억났다. 우리 인생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헤매는데 여행이라고 다르겠는가. 너무 헤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도 여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처음 가는 곳인데 헤매는 과정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다들 갈 곳을 잘 찾아서 같은 광경을 보고 있을 때 나는 헤매면서 다른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건 기분이 좋은 일이다. 나만이 겪은 여행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고생 거리를 얘기할 소재도 생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요즘 조금은 와닿는데 고생을 굳이 사고 싶진 않다. 오는 고생은 기꺼이 힘들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정도로 된다는 게 나의 선이다.


세나도 거리는 유럽풍 건물들 아래에 많은 상점이 있었다. 쇼핑 거리로 만들어놓은 느낌이었다. 사람은 정말 많았고 한국인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홍콩에서 한 단계 더 들어온 거라 그런지 현지인들과 홍콩이나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은 거로 보인다.


우리는 실제 세나도 광장이 시작되는 위치에서 들어간 게 아니라 역방향으로 들어갔다. 각종 상점 사이로 수많은 사람이 걸어 다녔다. 우리는 사진을 조금씩 찍으면서 분수가 있는 큰 광장으로 들어갔다. '맹고(망고의 영어식 발음이다)'를 항상 외치는 친구가 좌판에 파는 망고가 5홍딸이라면서 사 먹자길래 2개 사 먹었다. 잘라 달라고 했는데 먹기 좋게 잘라주는 건 아니었다. 분수 옆으로 둘러싸인 둥그런 계단에 앉아서 망고를 먹었다. 밋밋하면서도 달달한 느낌의 과일은 먹을 만 했다. 손에 묻은 망고는 찝찝했고 우리는 물티슈가 없었다.


옆에 앉은 여자애 두 명이 곱창 비슷하게 생긴 음식을 먹고 있길래 어디서 파냐고 물어봤다. 길을 가르쳐주는데 쭉 가서 왼쪽에 있단다. 맛있냐고 물어보니깐 먹어보면 알 거란다. 그래서 우리는 그걸 먹기로 했고 왼쪽으로 쭉 걸어갔다. 가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더 가면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다시 돌아왔다.


이젠 세나도 광장을 순서대로 관람하기로 했다. 이쁜 건물이 있으면 사진 찍고 하면서 걸어가는데 골목 사이에 분식점 비슷한 게 있었다. 뭔가 싶어서 가보니 맛있어 보이는 쭈빠빠오(만두의 일종), 두유를 먹었다. 처음엔 쭈빠빠오를 시켰는데 이것저것 더 시켜 먹었다. 쭈빠빠오는 만두 사이에 고기를 끼워서 만든 샌드위치 느낌의 음식이다. 조금 짜기도 했지만, 나의 입맛에 맞았다. 두유가 정말 맛있었다. 따로 포장 같은 건 없고 포카리 스웨트 크기의 작은 페트병에 꽉 담아서 파는데 한국 두유랑은 다르게 설탕이 덜 들어가 담백한데도 약간의 달달함은 느껴졌다. 만두는 별로였다.


그리고 지나가다가 육포를 구경했는데 점원이 아주 즐거운 발걸음으로 촐싹거리며 뛰쳐나와서 우리를 맞이한다. 육포가 각각의 종류별로 늘어서 있었고 시식해 보라고 한다. 처음엔 비싼 걸 맛보여주던데 나는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 낮은 단가의 육포도 한번 달라고 했고 우린 그걸 주문했다. 육포는 한국에서 먹었던 맛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엄청 부드러웠다. 그리고 가격 차이가 엄청 난다. 우리나라 돈으로 사면 4~5만 원 어치는 사야 할 정도의 양이 9,000(69HKD)원 정도였다. 제니 쿠키 이후로 만족스러운 홍콩 쇼핑이었다.




성 바울 성당

그러고 우리는 다시 길을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으로 엄청나게 이쁜 건물이 보인다. 바로 성 바울 성당이었다. 성당은 부서지고 앞부분만 남아있는 성당의 부분이 유명하다. 세나도 광장 가면 꼭 봐야 할 명소란다. 그냥 보기에도 명소처럼 이뻤고 사람들이 엄청 몰려 있었다. 마카오는 작은 도시라서 그냥 정처 없이 돌아다니면 명소가 나온다. 미리 블로그로 공부를 조금 해보면 다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 바울 성당은 웅장하면서 빛으로 가득했다. 5~6명의 성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각각의 칸을 차지하고 있었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파악되는 기둥들이 뻗어 있었다. 얼굴만 남은 하얀색 건물은 여러 각도에서 조명을 이쁘게 받으며 빛나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진을 찍고 있었고, 맥주를 마시는 무리도 있었다. 아까 산 육포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씩 사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올라가는 게 귀찮았고 편의점도 나오지 않아서 그 계획은 즉시 접었다.


성 바울 성당은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연인과 함께 온다면 그 기억은 평생 갈 것 같다. 같이 사진을 찍고 사랑을 속삭이며 우리 집은 어떻게 꾸밀까, 아기는 어떻게 키울까 등의 달달한 미래를 약속하며 같이 추억하는 시공간을 하나 더 만들어갈 수 있을 법한 공간이다. 사진 찍기에만 바쁜 우리의 여행은 반성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다가 반성한다. 찍어서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풍경과 현상에 몰입되서 물아일체의 경지를 느끼는 게 진정한 여행이라고 말이다.


실제 여행 2일 차일 뿐인데 우리는 많이 지쳤다. 오전에 너무 시달려서 그런지 스케줄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휴식을 많이 가졌다. 걸어 다니면 발과 다리가 아프고 땀도 난다. 한국 날씨는 바람막이를 꼭 입고 다녀야 할 날씨인데 여기 날씨는 습하고 온난했다. 나는 더운 날씨를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라 괜찮았는데 친구는 육수를 끊임없이 흘리며 힘들어했다.


나는 흐르는 친구의 육수를 보면서 평소에 쌓아 놓은 탐욕이 흐른다고 한다. 모든 것에 대한 탐욕이 몸 안에 쌓인다. 돈, 음식에 대한 탐욕이 몸 안에 쌓이고 걸을 때면 그것들이 흘러내린다. 탐욕의 금융권이라고 한다. 친구들이 하나 같이 배가 나오기 시작하고 몸이 아주 불었다. 나는 회사에서 일해도 살이 잘 찌지 않는다. 결혼하면 찐다고 하는데, 지금 내 상황은 누군가를 만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누군가를 책임지기 전에 자신부터 책임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직 고민하는 시기이다.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하지만 그 방향만이라도 개인이 설정할 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친구들은 금융권에서 일하면서 탐욕에 찌들었고 돈의 힘과 무서움을 동시에 보고 있다. 탐욕적이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뜻밖의 훠궈

그러던 와중에 오른쪽으로 좁은 골목이 보였고 많은 사람이 앉아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뭔가 싶어서 보니 훠궈집들이었다. 대만에서 회사 동기랑 훠궈를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분식처럼 파는 게 신기했다. 먹어볼 생각이 별로 없었으나 친구가 관심을 보이길래 먹어보자고 했다. 둘러보다가 친절해보이고 깔끔한 훠궈 집 앞에 섰다.


토핑을 많이 고르진 않았다. 치즈 볼, 버섯, 양상추, 랍스타 볼, 오징어 정도로 골랐다. 토핑 하나에 5~8 마카오 달러 정도였고 전혀 부담이 없었다. 너무 많이 시켜도 별로 일 것 같았다. 그리고 앉을 자리가 안쪽에 있어서 우리는 벽을 보고 일렬로 된 테이블에 앉았다.


앉으니 옆에서 칭따오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우리도 시켜 먹자고 했다. 더위를 날려버릴 맥주는 언제 어디서든 옳다. 우리가 원하는 송중기 목 넘김만큼의 차가움은 없었으나 적당히 시원했다. 옆 테이블은 인도인지 포르투갈 사람인지 모를 애들이 훠궈를 먹고 있었다. 가족으로 보였고 코카콜라를 주문하고 조용하게 훠궈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의 훠궈가 나왔고 우리는 긴 이쑤시개로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생각한 비주얼이 아니라 당황했으나 국물이 적어서 그런 거였다.


먹어보니 맛있었다. 대만에서 먹었던 훠궈의 그 맛과 비슷했다. 진한 국물 사이에 들어가 있는 야채와 각종 토핑을 하나씩 건져 먹는 재미가 있었다. 막 맛있는 맛은 아니었으나 토핑과 어우러진 국물의 맛과 맥주 맛으로 맛있게 먹었다. 치즈가 안에 들어있는 볼이 상당히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돌아다닐 덴 없다고 판단했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를 하나씩 사서 들어왔다.


나는 여행지에선 항상 맥주를 달고 사는 편이다. 각 나라의 맥주를 먹는 게 여행의 낙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세계 맥주를 즐길 수 있다고 하지만 현지의 분위기와 함께 하는 맥주는 언제나 옳다. 여행지에서의 저녁엔 항상 취해 있는 편이다. 아니 낮에도 취해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그렇게 마시면 그 날 저녁도 걱정되고 다음 날이 힘들 걱정을 하는데, 여행지에서는 에너지가 넘친다. 우리는 일상에서는 권태로움에 취해 있고, 여행지에서는 술에 취해 있다. 항상 취해있어라. 취함은 언제든 옳으니. 술에 취해 있지 않으면 자신에게 취해 있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초원이 운동복

그리고 맥주를 사기 전에 하나 산 아이템이 있었다.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하려면 수영복이 필요했는데 내가 깜빡하고 안 들고 왔다. 홍콩에서부터 있을 만한 가게에 들어가서 찾아봐도 수영복을 파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나이키 매장이 있길래 한번 들어가 봤는데 수영복을 대신할 만한 조깅복을 팔고 있었다. 알바하는 여자애가 아주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다. 스몰을 입어봤는데 너무 쪼여서 라지로 바꿨다. 딱 맞았다. 친구는 초원이 운동복을 샀다. 초원이는 조승우가 나왔던 영화 말아톤에서 주인공 조승우의 이름이다. 백만 불짜리 다리를 가진 초원이가 입는 짧은 운동복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면 우리는 초원이라고 한다. 내 친구는 초원이처럼 달리고 싶어서 초원이 운동복을 샀다.


초원이의 존재는 월드와이드다. 태국에서도 봤고 제주도에서도 봤고 홍콩에서도 있었다. 초원이가 지나가면 희희낙낙 거리면서 백만 불짜리 다리를 외친다. 서른 두 살의 대화치곤 지능 수준이 너무 조금 떨어진 것 같지만 우리는 그렇게 논다. 아무튼, 초원이 운동복을 각자 구매한 후 수영할 날을 상상하며 만족스럽게 호텔로 향했다.


카지노

우리 호텔엔 카지노가 있었다. 이름은 모카클럽이었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거로 보였고 체크인할 때 받은 50달러를 크레딧으로 바꿔서 쓸 수 있었다. 사용법을 잘 몰라서 안내 직원에게 설명을 들어야 했다. 여권을 내고 회원가입을 했다. 그리고 슬롯머신을 하기 시작했다.


베팅액이 낮은 기계에서 최소한의 베팅 금액으로 슬롯머신을 당겼다. 솔직히 어떤식으로 배당이 되고 먹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플레이 버튼을 계속해서 누를 뿐이었다. 종종 나오는 돈 따는 화면 효과가 이뻤다. 금이 많이 나오면 돈을 많이 따는 것이었다. 베팅액이 너무 낮으니 감흥이 없어서 베팅액을 조금씩 늘였다. 100홍딸 (약 14,000원)이 금방 날아갔다. 잃어서 그런지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짧게 카지노를 체험하고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도박에 이렇게 흥미가 없던 내가 요즘은 도박 아닌 도박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비트코인이다. 올해부터 대한민국에 열풍이 불고 있다. 주식도 하지 않고 뛰어든 비트코인은 나에게 엄청난 투자 트레이닝을 해주었다. 초반엔 초심자의 행운으로 멋모르고 100만 원 정도를 벌었다가 지금은 -30%까지 내려왔다. 복구하면 빼리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계속하지 않을까 싶다. 투자가 아닌 투기, 그것을 넘어선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엔 많다. 일상의 권태로움을 물리칠 수 있는 이런 소일거리가 우리에겐 필요해서 우리는 돈을 걸고 일희일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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