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요새
숙소에 올라와서 아마 다시 잤을 거다. 그러다가 기아 요새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오늘의 스케줄 중 가장 중요한 수영장은 끝났으니 이제 도시 투어를 시작해야 할 때다. 기아 요새는 전쟁할 때 요새로 쓰던 공간의 흔적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난 뭔지는 모르고 친구가 가보자길래 '경의 뜻대로 하시오'라고 했다.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산에 있었고 우리는 산책로에 접어들었다.
기아 요새로 가는 길을 한국에 있는 산책로와 비슷했다. 여러 명의 초원이들을 봤고, 그들은 웃통을 까고 달리고 있었다. 커플 초원이도 봤다. 남녀끼리 운동을 같이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물을 안 챙겨가서 조금 힘들었다. 걷는 게 조금은 힘들었지만, 발이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쭉 올라가다보니 과거에 있었던 요새의 흔적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어딘가에 도착했는데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놀이터가 있었고 많은 아이가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이번 여행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의 공간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만큼 시끄럽고 활동적이고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존재가 있을까? 나도 그런 존재였을 텐데 지금의 나는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길들인 것인지 아니면 나라는 인간 자체가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소년의 어린시절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를 다룬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돌아다니다가 우리가 찾던 요새 본부는 케이블카 쪽이 아니란 걸 알고 지도를 보고 요새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했다. 우리의 전공인 헤매기를 해도 이젠 그냥 웃어넘긴다. 바로 앞에 두고 헤매기가 우리의 특기인 걸 이번에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가는 건 교양과목이다. 전공을 잘해야 롱런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IT 수준이 정말 높고, GPS의 정확도가 엄청나다는 걸 깨달았다. 많은 시간을 헤매고 난 이후, 드디어 우리가 찾던 요새가 나왔다.
요새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마카오의 태풍 알림 시스템을 소개해놓은 곳이 나왔다. 모양에 따라 태풍의 진행단계와 심각성을 공유하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이전에 쓰던 봉화와 비슷했다. 서로 간에 어떤 문명 교환이 있어서 이런 시스템이 생긴 건 아닐 텐데, 어쩌면 인류 발전의 방향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기아 요새에 우린 도착했고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다. 여행을 와서 사진을 찍는 것인지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오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여기 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진은 거들 뿐이다. 여행의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쓰는 도구이다.
기아 요새는 두 개의 건물이 메인이었다. 하나는 성당이었고 하나는 요새를 닮았다. 성당 앞엔 대포가 놓여있었고, 이곳이 요새였음을 보여주는 단서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한쪽엔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비슷한 곳이 있었다. 땡볕이었지만 거기서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다. 이태백 자세로 사진을 찍으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거기서 사진을 10분 정도 찍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봤다. 종교는 없지만, 성당에 들어가 본 기억은 손가락 안에 꼽는다. 전주에 있는 큰 성당이 기억나고 나머진 별 기억이 없다. 안에 들어가니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었고 상아색으로 칠해진 벽 안은 아늑하면서 성스러운 느낌이었다. 한쪽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안고 있는 상이 있었고 양쪽으론 은은하게 새겨진 벽화가 보였다. 흰색의 공간은 이뻤다. 아기자기하면서도 공간은 웅장해 보였다. 시원해서 땀을 식히고자 조금 버티다가 나왔다.
점심시간
그리고 이젠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아까 초원이들이 많이 뛰어다니던 곳으로 내려가서 우리가 올라왔던 곳을 찾았다. 완전 낮이라 엄청 더웠다. 밥을 먹으려고 음식점을 검색하기 위해 호텔 로비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해 검색했다. 에스까다를 가냐 오문카페를 가냐 하다가 오문카페를 가기로 했다. 세나도 광장으로 다시 진입했고 다른 음식점이 하나 보이길래 그냥 거기 들어가서 먹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어떤 순간엔 즉흥적으로 지르는 재미가 있지 않은가. 가격으로 치면 한국 김밥천국 느낌이었다. 분위기는 고급스러웠으나 음식 가격이 엄청 저렴했다.
이것저것 시켰다. 볶음밥도 시키고 브로콜리도 시키고 과일 샐러드도 시키고 우롱차도 시켰다. 다 주문하고 나니 에스까다 메뉴 1개 정도의 가격이 나왔다. 맛은 뭐 그냥저냥 먹을만했고 우리는 다음에 뭐할지 정했다. 엘라 하우스에서 받은 책자를 보다가 콜로안 빌리지를 가보자고 했다. 친구는 딱히 당기는 것 같진 않았으나 가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