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즈 인 홍콩 마카오 - #24. 출국

by 생산적생산자

공항으로

IFC 몰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뭔가 더 할 게 있을까 생각 해봤지만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2층 아래에 있는 에어포트 익스프레스 티켓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에어포트 익스프레스 티켓이 있으면 공항에 가지 않고 도심에서 얼리 체크인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얼리 체크인을 해봤다. 내가 탈 에어부산과 친구가 탈 제주항공 모두 얼리 체크인 가능한 항공사라서 들어가서 얼리 체크인 했다. 수화물은 부칠 게 없었고 나는 앞 쪽 창가 자리에 앉았다. 비행 내내 잘 게 뻔하기 때문에 안쪽 경치가 좋은 자리에 앉기로 했다. 8C로 괜찮은 자리였다. 게이트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비행시간 2시간 정도 전에 알려준다고 했다. 내가 나타나지 않을 때 전화할 번호도 알려달라고 한다. 어차피 현지 유심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유심은 번호가 없고 한국 유심을 꽂아 놓은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연락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국 유심을 꼽고 로밍 걸어놓을 수밖에 없는데 나는 별일 없이 공항에 가 있을 것이기에 한국 번호를 알려줬다.




에어포트 익스프레스

얼리 체크인을 하고 에어포트 익스프레스 홍콩역으로 내려가니 열차가 도착해있었다. 바로 탑승을 했고 기차는 바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사람은 많았다. 1시간 반 걸릴 거리를 30분 안에 가는 기차니 자주 타지 않는 여행객들 입장에선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기차는 세 정거장만 가면 됐다. 구룡(침사추이)역과 Tsing yi라는 역을 지나면 바로 공항이었다. 가는 동안 멍 때리다가 잠이 들었다. 기차는 금방 도착했고 우리는 바로 내려서 출발하는 층으로 향했다.



기념품 구입

도착해서 우리는 남은 돈을 모두 쓰기로 했다. WATSONS와 비슷한 곳에서 기념품을 사기로 했고 거기서도 호랑이 연고 이외엔 별로 눈에 띄는 게 없었다. 그래서 호랑이 연고 대신에 친구가 WATSONS에서 산 파스를 사기로 했다. 6개들이 하나를 사서 3개씩 나누고 나머지 남는 50원은 호랑이 연고와 비슷한 오일을 사는 데 썼다. 용량이 100mL라서 지퍼백을 하나 사야 했다. 백이 있으면 기내 안으로 반입 가능하다고 설명하길래 백을 2불 주고 샀다. 다행히도 수화물 검사에선 걸리지 않았고 무사히 들고 면세 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집필 활동과 육맥

친구의 비행기 시간은 새벽 1시 반, 나의 비행기 시간은 새벽 2시였다. 8시 정도 공항에 도착했기 때문에 우리는 6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시간적으로 봐도 엄청 여유가 있었고 지루할 게 분명한 대기 시간이었다. 터미널 1번으로 가서 외곽 쪽 의자에서 앉아서 기다렸다. 중간중간에 있는 의자들은 등받이가 없어서 불편해 보였다. 우리는 외진 곳에 앉아서 각자의 업무에 집중했다.


나는 역시나 여행의 기억을 글로 쓰면서 여행을 복원했다. 중간중간 적다 보면 순서가 헷갈리기도 하고 쓰다가 이전에 빠뜨린 내용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내용을 추가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헷갈리는 순서나 내용이 있으면 친구에게 간간이 질문하면서 기억의 조각을 복원해나갔다. 여행을 이렇게 글로 적는다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항상 사진을 찍기만 바빴던 나인데, 이렇게 글을 적으니 여행에 대해 받아들이는 깊이가 느껴졌다. 체험을 나만의 온전한 방식으로 복원하고 추억하는 방식이 되리라 믿는다.


노트북은 약간 부담스럽고 아이패드로 작업하니 비행기 선반에서도, 페리 선반에서도, 호텔 침대 위에서도, 카페에서도 어디에서나 작업할 수 있었다. 9.7인치의 기계는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신세계를 보여줬다. 아이패드 프로 9.7 욕심이 난다. 어느 장소에 가서 이렇게 체험을 기록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기록할 만한 일이 있어야 이렇게 기록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일어난 일은 굳이 다시 복기하면서 적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과 새로울 것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여행의 다이나믹함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나는 여전히 아이패드 프로 9.7이 갖고 싶다. 그러나 iOS의 최적화가 정말 잘 돼 있어서 아직도 아이패드 에어가 쓸 만하다. 주로 글을 쓰는 데 이용하기 때문에, 모임 가서 기록할 때도, 강의를 들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드라마를 볼 때도 펴서 사용하는 편이다. 앞으로 5년은 거뜬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 여행기를 다시 퇴고하고 내용을 추가하면서 다시 한번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가면 글을 쓸 의지가 별로 안 생긴다. 내내 혼자 있기 때문에 기억에 남을 만한 내용도 별로 없고, 에너지도 떨어져서 글이 잘 안 적히는 경험을 일본 오사카에 갔을 때 했다. 다시 한번 떠나고 느끼고 기록해야겠다.


나는 계속해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었고 친구는 지루했는지 맥주나 한잔하자고 한다. 마침 세나도 광장에서 처음 산 육포가 아직 남아 있어서 그걸 안주 삼아 먹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안주 걱정이 없었다. 육포만 있으면 다 해결됐다. 계속 먹으면 질리는데 2~3조각 까지는 맥주 안주로서 훌륭했다. 친구가 편의점을 찾아갔고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다가 조금은 질려서 쉬고 있었다.


10분 정도 지나서 반대편 끝의 편의점에서 삿포로 500ml 맥주를 두 캔 공수해왔다. 잔돈으로는 살 수 없어서 카드로 긁었다고 한다. 나는 육포와 공항에서 다 먹은 제니 쿠키 상자로 테이블을 세팅했고 우리는 처음으로 공항 안에서 맥주를 마셨다. 공항에서 맥주 마시면 잡아가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엄연히 자유 지대이고 난동만 부리지 않는다면 문제 될 게 없었다. 기내에서도 맥주를 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육포를 뜯었다. 맥주가 생각보다 많았다.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서일까 맥주가 잘 들어가진 않았다. 매일 맥주를 먹었으니 그 효용이 줄어들었음은 당연하다. 다 먹고 나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출국 심사

이미 체크인도 다 했고 입국심사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들어가면 할 게 없을 거 같아서 걱정됐는데 밖에서도 할 게 없었다. 어차피 앉을 곳만 있으면 아이패드로 글 쓰는 데는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들어가자고 했다. 수화물 검사를 무사히 마치고 출국 심사장으로 갔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수화물 검사까지 5분 정도 만에 다 끝나고 들어서니 면세점이 보였다. 디즈니 면세점이 있었고 거기를 조금 구경했다. 곰돌이 푸와 엘사 말곤 별로 눈에 띄는 게 없었다. 평소에 못 챙겨주는 자녀에게 보상의 일환으로 선물을 사기 위해 바쁜 아빠들이 보였다.


그리고 둘러보다가 별로 볼 게 없다는 걸 깨달았고,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아래층이 진짜 면세점이었다. 익숙한 Duty Free 문구가 있는 매장 안엔 온갖 종류의 담배와 술들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담배 종류가 있는 면세점은 처음 봤다. 친구는 차장님이 이전에 자신에게 담배를 사줘서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했고, 자기 것도 하나 더 샀다. 태국에선 담배 보루 수에 제한이 있어서 내 몫으로 하나 산 경험이 있었는데 홍콩은 그런 제한이 없었다. 보부상 가방은 더 볼록해졌고 우리는 위층에 있는 식당 공간에서 자리를 잡았다. 친구는 쇼핑을 더 한다고 했는데 담배만 피우고 자리에 앉아 있다. 어딜 가든 편안한 자리를 추구하는 그는 의자를 공수해와서 거기에 다리를 올리고 있다.




아이패드 짱

나는 아이패드로 여행의 처음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따라잡았다. 기나긴 프로젝트가 현재 시점으론 끝났다. 앞으로의 3시간은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아이패드론 공항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게 치명적 단점이다. 친구가 스마트폰 핫스팟을 켜줘서 이북을 하나 받아볼 수도 있고,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내가 초반에 구글 포토 동기화를 켜놔서 동영상까지 동기화되는 바람에 유심이 제공하는 1기가 중 400MB 가량을 써버렸다. 지금 10메가 정도 남아 있는데 앞으론 친구에게 빌붙기로 했다. 배터리가 많이 닳는 건 내 샤오미 보조 배터리로 충전해주면 된다.




태풍에 끄떡없는 비행 스케줄

태풍이 온다고 해서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결항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런데 공항에 와보니 별문제가 없었다. 출발이 지연되거나 결항된 항공편은 전혀 없었고 예정대로 출발하고 있었다. 태풍이 선박엔 영향이 커도 비행기엔 별로 영향을 안주는 것 같다. 다행이라 생각했고, 여전히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오는 홍콩에서 비행 시간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출발할 때 지연됐는데 오늘은 제발 그러지 않길 바란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린다. 이전 대만에서 돌아올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책이 있어서 버틸 만 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 어디서나 지루함을 버틸 방법은 글쓰기와 독서가 제일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 독서만큼이나 글쓰기도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에 유익한 행동이라는 걸 깨달았다.


노래를 들으면서 아이패드 프로 9.7을 찾아보다가 친구와 나의 탑승 게이트가 나와서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친구 비행시간이 나보다 30분 정도 빠르다. 친구의 비행기 탑승 게이트인 29번 게이트로 가서 대기했다. 우리가 갈 땐 아무도 없었다. 나는 <여행의 기술>을 꺼내서 읽었다. 처음 출발할 때 읽은 걸 제외하곤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여행 동안 충분히 완독할 수 있을 거란 야무진 꿈은 부서진 상황이었다. 친구는 아예 건너편에서 의자 3개를 차지하고 누워서 자고 있었고, 나도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잠에서 깨고 나니 건너편 자리에 승무원들과 기장으로 보이는 무리가 앉아 있었고 주위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제주항공이라 의상에 감귤 색의 포인트가 살아 있었고 나는 감귤 초콜릿 생각이 났다. 승무원들은 지연된 비행기 준비 시간을 기다리는 듯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사이 친구는 일어났고 나는 책에 집중이 잘 안 되어 덮어두고 친구와 얘기를 나눴다. 제주항공 비행시간은 다시 늦어졌고 홍콩 올 때도 그랬고, 태국 넘어갈 때도 그래서 제주 항공은 프로연착러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친구는 배가 고팠는지 육포를 뜯어 먹기 시작했고, 우리는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시답잖은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딸과 찢어져서 어디론가 가는 듯했고, 딸은 하나하나 상세하게 어디로 가면 된다고 안내해주고 있었다. 여행에서 헤매는 건 기초 과정이라고 이번 여행을 하면서 느꼈다. 헤매더라도 짜증 내지 않고 상황을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나는 하나하나의 동선이 짜인 여행은 이제 거부하려고 한다. 누구든 기꺼이 헤매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쓸 데 없는 개똥 철학이 생겼다.



잠시만 안녕

시간이 조금 더 지났고 친구의 비행기 탑승이 다가왔다. 나흘 동안 지겹도록 붙어 있었는데 막상 헤어지려니 아쉽긴 하다. 이번 여행은 정말 길었다. 3일 정도가 여행의 적정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날은 설렘으로 보내고, 둘째 날은 본격적인 여행으로, 셋째 날은 아쉬움과 깔끔한 마무리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4일 차는 정말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호텔에서 조식 먹고, 페리 터미널로 가서 바로 빠져나오고, 제니 쿠키를 사고,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 있었고, IFC 몰에서 맥북 체험을 하고, 탄탄면과 샤오롱바오를 먹고, 공항에 와서 대기를 6시간 넘게 했다. 막상 이렇게 적어보니 한 게 많아서 이전에 적은 문장이 뻘쭘해 하고 있다. 아무튼, 4일 차는 의지와 여행의 즐거움이 급격히 감소하는 체험을 했다.


친구가 비행기 타러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찰칵'을 한 번 해주고 손을 흔든다. 그는 서울로 나는 부산으로,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비 일상을 함께 한 친구를 보내는 그 마음은 일상적이다. 아쉬움은 언제나 있는 거니까. 그렇게 손을 흔드는 그를 뒤로하고 나는 나의 탑승 게이트인 22번으로 갔다. 가보니 바로 탑승이 시작됐다. 에어 부산은 연착 안 되고 바로 탑승하나 보다. 친구와 거의 동시에 출발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갔다가 바로 줄을 서서 탑승했다. 괜히 뒤에 타니깐 가방 넣을 곳도 없고 이리저리 불편했다.


내 좌석은 8C였다. 비교적 앞자리였다. 창가 좌석으로 달라고 했는데, 거기에 더해 앞쪽 좌석으로 달라고 해서 그걸 우선으로 잡아줬나 보다. 분명히 들어올 때 좌석 배정을 한 거로 기억하는데 그건 없어졌다. 복도 쪽 좌석이었고 내 앞 자리에 아기들이 탔다. 정말 시끄럽다가 곧 조용해진다. 아기들 데리고 여행하는 건 정말 힘들겠단 생각을 했다. 다행히 중이염 때문에 착용하는 기압 감소용 귀마개가 방음 역할도 해줘서 좋았다.


비행기는 10,058m의 고도에서 시속 958km로 비행한다. 기내식으로는 촉촉한 치즈 빵이 나왔다. 약 2시간 정도 더 날아가야 도착한다. 중간에 있는 칸이 화장실인지 모르고 지나쳐서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기 기저귀 갈아 입히는 모양으로 표시돼 있는데 왜 화장실 표지가 없는지 궁금하다. 멍청한 짓을 했으나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다시 좌석에 앉으니 면세품 판매가 진행되고 나는 다시 여행의 시간을 글로 따라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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