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에서
어느 정도 글을 적다가 책을 볼까 싶었는데 잠이 와서 그냥 잤다. 너무 피곤했다. 일어나보니 비행시간은 30분 정도를 남기고 있었다. 미리 핸드폰 유심을 갈아 놓는다. 아직 신호가 잡히진 않았다. 이날은 비행기 안에서 불만 제기가 많았던 날이다. 화장실 갈 땐 어떤 아줌마가 승무원에게 뭐라 하고 있었고, 어떤 아저씨가 계속 얘기하길래 돌아보니 승무원에게 불만을 말하고 있었다. 파란색 옷을 입은 에어부산 승무원들이 진땀을 빼며 고객 대응을 하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 정말 고생이 많다 느꼈다. 그녀들의 일상은 비행을 떠나고 호텔에 머무르면서 현지를 즐기고 쇼핑도 좀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게 일상이 되면 별 감흥이 없을 것 같다. 나라면 자신들이 가는 곳의 여행기를 하나씩 블로그나 글로 써서 뭔가를 만들어 낼 것 같다. 그녀들이 부럽다. 그녀들처럼 일상이 여행이라면, 어디로든 떠날 수만 있다면 좋겠다. 이 세상이 아닌 곳이라면 어디로든.
비행기는 곧 착륙했다. 도착 예상시간이었던 6시 5분보다 20분 정도 늦게 착륙했고, 나는 짐도 머리 위에 바로 있었고 자리도 앞이라 비교적 빠르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오면 카트라이더가 시작된다. 부스터를 쓰면서 사람들을 하나씩 따라 잡는다. 검역대를 통과하고, 늘 그러하듯이 신고할 게 없는 세관을 지나쳐서 오른쪽 버스 타는 곳으로 향한다.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본다. 평소 집으로 한 방에 가는 버스인 307번 버스 오는 시간이 20분 넘게 남아서 경전철을 타려는 찰나에 307번 버스가 눈앞에 보인다. 정류장에 살짝 섰다가 출발하려고 하는데 냅다 뛰어서 기사 아저씨에게 눈도장을 찍고 버스를 탔다. 슈퍼 세이브였다. 버스 안엔 아무도 없었고 나는 평소 그러하듯이 가방 왼쪽에 넣어둔 카드 지갑을 꺼내서 버스에 찍었다. 307번 버스는 코스를 조금 돌아가지만, 평소 출근처럼 지하철을 타고 가면 환승을 하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버스를 탔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은 몽롱하다. 아무리 경치를 감상하려 해도 잠이 온다. 뱅뱅 돌아가다가 버스가 강서구청쯤 갔을 때 이후론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만덕 터널을 지나서 미남역이 나오고 있었다. 주위엔 사람들이 채워져 있었다. 아무래도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인 7시 정도라 그런지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한 번 더 졸았고, 버스는 우리 동네 앞을 지나고 있었다. 버스 안은 조금 추웠다. 홍콩과 한국의 날씨는 차이가 엄청 크다. 회사 마라톤 대회 때 받은 빨간색 얇은 바람막이를 들고 가길 잘했다. 여행에선 아침 먹을 때 입고, 공항 대기할 때부터 입었다. 하얀 바지와 빨간색 바람막이가 만들어내는 오묘하면서도 안 어울리는 듯한 조화는 사진으론 남아 있지 않아 접할 길이 없음에 슬프다. 바람막이가 아니었으면 감기 걸릴 뻔 했다. 따뜻한 홍콩 날씨와 대조적인 한국의 날씨, 다시 일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 도착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고, 여행이 어땠는지는 묻지 않으셨다. 나는 제니 쿠키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옷만 정리하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고 일어나니 오후였다. 일어나서 최종적으로 짐정리를 했다.
그리고 디카로 찍은 사진을 PC에 저장했다. 저장하고 나니 구글포토로 자동 업로드된다. 완료되고 사진을 확인해보니 카메라 날짜 설정이 잘못 돼서 하루씩 밀려 있었다. 핸드폰 사진과 카메라 사진이 섞여 있었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씩 구글포토에서 날짜를 수정했다. 시차가 있으니 그것도 고려해서 홍콩 시간대로 설정하다가 어차피 시간은 맞으니 날짜만 +1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홍콩 시각대로 해놓은 사진들은 다시 대한민국 표준시로 바꿨다. 약 1시간의 사진정리가 끝나고 이젠 친구에게 사진 공유를 위해 앨범을 생성했다. 앨범당 500장까지 공유가 돼서 앨범을 3개로 나눴다. 총 찍은 사진이 800장 정도 된다. 일본 갔을 때 찍은 2000장보단 훨씬 줄어서 다행이다. 사진도 너무 많으면 쓰레기가 된다.
사진 정리를 하고 나선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을 보고 영화를 한편볼까 하다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홍콩 여행 준비 포스팅을 하고 메모를 좀 끄적이다 다시 리디북스 페이퍼 구경을 했다. 일상으로 돌아오니 모든 게 다 그저 그렇고 기분도 별로다. 여행자 모드가 해제되는 건 금방이다. 카드로 긁은 호텔 요금을 원화로 확인하고 친구에게 송금 요청을 했다. 란콰이펑이란 이름으로 입금됐다.
왜 연락이 안 되니? 어디 아프니?
란콰이펑에서 만난 그녀는 연락이 안 된다고 했고 나는 '공사가 다망한가보다' 라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제니 쿠키를 나눠먹고 JTBC 뉴스를 보다가 잠들었다. 나의 홍콩-마카오 여행은 K로 시작되는 엄청난 비리의 온상이 담긴 재단에 대한 보도를 반 수면 상태에서 들으며 끝났다.
이후로 탄핵 촛불 시위가 점차 가속화되고,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주도하면서 적폐를 청산하고 있다. 나는 아직 원래 다니던 회사에 다니고 있고, 글을 꾸준히 쓰는 듯 마는 듯 하면서 작가와 1인 기업을 꿈꾸고 있다. 책은 여전히 독서모임을 다니면서 같이 또 따로 읽고 있고, 같이 간 친구는 여전히 서울에 살고 이젠 명절 때 한 번씩 보고, 내가 서울 교육을 갈 때 한 번씩 본다. 그리고 나는 본가에서 나왔고 자취를 시작했다. 내 주위의 풍경은 그대로인 듯하면서도 많이 변했다.
사진 이상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던 여행에 대한 단상을 1년 동안 묵혀놨다가 마무리했다. 올해 꼭 책을 출판하고자 했던 나의 개인 목표에 대한 조그만 예의라고 해야겠다. 글을 다시 읽고 현재의 내용을 추가하면서 행복했다. 당시의 순간으로 나는 돌아갈 수 있었고, 내가 변한 부분과 그대로인 부분을 느끼며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홍콩 여행기인 동시에 내 삶의 변화를 알 수 있었던 글이다. 지금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도 나는 떠나고 싶다. 일상에서, 생활에서, 지금 여기에서...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