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정지, 다음 곡 재생

일하는 나는 잠시 안녕. 육아하는 나 반가워.

by 록록록

그 날 따라 이상하게 일이 잘됐다. 손에 착착 달라붙는 키보드와 마우스, 매끄럽게 윤활유 바른듯 처리되는 일들. 일 년에 몇 없는 모든게 완벽하게 잘 들어맞는 날. 그 날이 그랬다.


평소 생리가 규칙적인 편인데 가끔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1~3일 정도 변동이 있는 달이 있다. 그 달도 그랬다. 하지만 4개월 전부터 계획 임신을 고려하고 있던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 테스트기를 했다. 놀랍게도 두 줄이 떴다. 완벽했다. 기다리던 아기 천사까지 찾아오다니.


근데 눈물이 났다. 그것은 분명 기쁨의 눈물이 아닌 슬픔의 눈물이었다. 내 좋은 시절 다 갔다고 생각했다. 이제 커리어도 끝이라 생각했다. 무서웠다. 하필 오늘따라 일이 잘 되더라니 박수칠 때 떠나라는 것인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기쁨의 감정은 커녕 걱정만 줄줄이 따라왔다.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이라는 시간을 쉬다 오면 감을 잃지 않을까?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을까? 겨우 쌓아놓은 외국어들 다 까먹어 버리는건 아닐까? 난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아기는 왜 이렇게 일찍 찾아온걸까? 라는 나쁜 생각마저 들었다.


막달까지 난 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바득바득 일하며 출산 3일 전까지 일을 했다. 나는 내 일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잘 하고싶고, 성장하고 싶은데 '일시정지' 됐다는 기분으로 회사를 잠시 떠나왔다.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아마 육아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육아하는 '아줌마'는 가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고, 아이를 키우며 집에만 있는다는 것이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위험한 무지이며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오만한 선입견이었다.


육아의 최전선에 서서 반성한다.
무슨 이런 말도 안되게 어려운 일이 있는지.


아기를 품는 열 달 동안 배가 점점 불러왔지만 내 배 안에 진짜 사람이 있는지에 대한 현실감이 없었다. 근데 낳고보니 정말 사람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자주 배가 고픈지, 왜 혼자 잠에 들지 못하는지 그 작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순간엔 나라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었다.


일하는 나는 아주 큰 선박에 한 파트가 잘 돌아갈 수 있게 윤활유를 붓고 나사를 조이는 역할이었다면, 육아는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들로 모래 성을 쌓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성이 매번 온전하냐? 그게 아니란 말이다. 이 모래성을 바닷물이 부시고, 지나가는 발에 치이고 끝도 없이 모래성을 만들고 부시고를 매일 반복하는 일이었다.


유아차를 끌고 카페에 오는 아줌마들은 시간이 여유로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유일한 자유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집에서 아기를 본다고 가치없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정이 돌아갈 수 있게 자신 한 몸을 바치는 귀한 존재였으며, 작고 소중한 존재가 한 독립 개체로 자라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는 일이었다.


그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컸음을 깨달았다. 엄마의 피, 땀, 눈물로 가득한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내가 자라난 것이다. 내가 걷고, 움직이고, 먹고, 웃고, 울고, 여행하고, 사랑하는 이 모든 일들이 양육자의 손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단 얘기라는 것이다. 물론 일하는 나도.


이제서야 깨닫는다. 육아는 인간의 근본을 만드는 일이다.


왜 내가 출산휴가를 갈 때 동료들이 '위대한 일'을 하러 떠나는 나를 축하해줬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일하는 나는 잠시 일시정지 됐지만, 그 시간 속 육아하는 나는 여전히 흐른다. 이 작은 인간을 한 명의 소중한 어른으로 키우는 이 여정은 끝없이 계속되겠지만 어쩌겠냐. 이 존재를 미친듯이 사랑하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