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너 진짜 거기 있었구나.

열 달 간 배에 있던 인간과 조우한 날

by 록록록

출산예정일 9일을 남겨두고 막바지까지 출근을 했다. 마지막 날 깔끔히 일을 마치고 동료들의 따뜻한 포옹과 배웅 속에 휴직의 시작을 알렸다. 지난 8년동안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는 '일'을 '쉰다'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 시간이 생기는건가? 아 드디어 일 지옥에서 벗어나겠구나'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더랬다.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의사선생님께 통보했다. 살면서 병원에서 수술을 한 번도 해 본 적도 없는 쫄보에게 제왕절개 후 후유증에 대한 여러 정보들 때문에 수술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정일을 4일 앞두고 마지막 검진을 갔던 날 오전 이슬이 비쳤고 진통 검사를 진행했더니 규칙적으로 진통이 잡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입원을 하게 되었다.


준비 안 된 갑작스런 입원 통보에 '선생님 저 아직 출산가방도 다 안쌌구요.. 별로 안아파서 나중에 오면 안될까요?' 라고 왠지 비굴한(?) 말을 계속 꺼내게 됐다. 아기를 만나고 싶은데 만나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와 기분 좋진 않은 진통과 함께 나는 입원을 하게 됐다.


진통만 걸리고 기다리면 아기가 순풍하고 나올줄 알았다. 간호사가 갑자기 유도분만 촉진제를 가져오는게 아닌가. 이렇게 인위적인 출산이라니. 막상 닥치게 되니 머리 속이 하얘졌다. 사실 일하느라 출산 가방, 출산 방법에 대한 정확한 지식 습득, 출산 이후에 대한 정보는 거의 챙기지를 못했다. 밀려오는 죄책감과 촉진제로 인한 미칠 것 같은 진통에 내 정신은 아득해져만 갔다.


분만 촉진제를 맞고 몇 시간이 지나도 내 자궁문은 3cm에서 제자리 걸음이었다. 아기는 다 내려왔는데 문이 도저히 열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진통을 20시간 하니 먹은 것도 없는 빈속에 계속 구토가 올라왔다. 손이 달달 떨리고, 더이상 진통할 힘이 없어 나는 엉엉 울며 선생님께 수술해주세요 라고 빌고있었다. 무통 주사도 최대 용량을 다 써버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진통은 나를 수술실로 밀고 있었다.


걸을 힘도 없어 휠체어에 앉아 수술대로 향했다. 마취과 선생님이 날 다시 반겨주었고, 체감상 한 뼘밖에 되지 않는 차가운 수술대에 올라 새우처럼 등을 말아 하반신 마취를 진행했다. 뜨끈한 느낌과 함께 이내 내 하반신은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러고 선생님이 등장하시고 '괜찮을거다' 라는 말과 함께 수술이 시작됐다. 초록색 천 아래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의 손길에 나는 넋을 놓고 있다 갑자기 배가 덜렁 덜렁 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으악 뭐에요?!' 라고 외치는 내게 '좀 불편하실 거에요' 라는 간호사의 차가운 멘트와 함께 우리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으아앙 으아앙' 하고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내 배 속에서 진짜 인간이 나온 것이다.


아기의 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무언가 잡고 있는 끈이 툭 끊기는 느낌과 함께 눈물이 줄줄 나왔다. 이렇게 손쉽게 끝날 출산에 왜 나는 미련히 20시간을 버틴 것인지 허망함, 안도감, 슬픔, 기쁨 온갖 희노애락의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쳤다.


아기를 낳고 우수수 쏟아지는 축하 문자와 여러 과일 선물들 속에서 난 내가 축하받을 생경한 일을 하고 있는건지도 체감하지 못했고 여전히 마무리하지 못한 프로젝트 걱정에 메일함을 들락날락 거리는 일하는 나로 가득했다. 아기는 내 배 아파 낳은 아기지만 신생아 실에서 바라보는 인형 같았으며, 앞으로의 생을 함께할 가족이라는 느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이상했다. 그냥 배가 아파서 수술했고, 배가 나으면 곧장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될 것만 같았다.


결국엔 일하는 나를 깔끔히 내려놓지 못하고 미련이 가득한채로 엄마가 되다보니 현실과의 괴리감이 계속해서 생겨나 일상에 적응이 안됐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엄마라는 역할이 무섭고 무거웠고 싫었다. 일이라면 언제든지 잘 해낼 수 있는데, 이건 도무지 잘 해낼 수 있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잘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두려움은 여전히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난 결국 준비가 덜 된채로 첫 아기를 출산하며 얼렁뚱땅 엄마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