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저 덤벨을 당근 했을 뿐인데

남은 내 자유의지마저 팔아버린 것 같아

by 록록록

어느덧 아기가 11개월에 접어들었다. 기는 건 일도 아니고 걸을 준비를 분주히 하는 요즘이다. 이젠 1m 남짓되는 서랍장 위 덤벨을 정리해 둔 곳에 손이 닿는다. 4kg짜리 덤벨도 굴리며 힘을 뽐내는데 저러다 발등에 찍힐까 노심초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미루고 미루던 당근 앱에 올리기로 결심했다.


이 덤벨의 역사를 구태여 말하자면 그가 내게 온 때는 바야흐로 2020년 홈트에 빠지기 시작했을 때다. 코로나가 창궐한 시점으로 운동센터에 가기도 찝찝했던 터라 덤벨세트를 큰맘 먹고 구입을 했다. 사실 3개월이라도 했으면 오래 했다 싶을 텐데 그렇게 시작한 홈트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니, 그는 햇수로만 6년 지기 내 운동 메이트인 것이다. 이 녀석과 함께 난 헬창을 선언하였으며 그 녀석의 도움으로 불린 나의 근육은 내 든든한 자존감의 밑바탕이다. 그러니 그는 그저 그냥 덤벨이 아닌 지금의 나를 만든 뼈대다 이거다.


심지어 나는 아기를 낳는 당일에도 12kg 케틀벨 스윙으로 자연분만의 의지를 견고히 다졌다. (결과적으로 자연분만은 실패했지만 이 얘기는 다음에 풀겠다.) 서랍 한구석 쌓여있는 덤벨들을 지난 10개월간 쳐다보며 저 녀석들을 치워야 된다고 생각했으나, 당근 앱에 글을 올리는 데는 단 3분이면 충분했다.


- 아기가 생겨 홈트를 못해서 내놓습니다
- 쿨거래시 네고해드림


담백하나 하지만 믿을만한 사람이란 인상을 주기 위한 절제된 말투로 써 내려갔고 글을 올린 지 이틀 만에 연락이 왔다. 그렇게 내 덤벨은 이름 모를 홈트 뉴비에게 팔려갔다.

잘 가 내 피땀눈물들아

덤벨 하나하나를 복도에 내놓는데 마음에 먹구름이 낀 것 마냥 기분이 묵직했다. 서랍 위는 비워졌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가벼워지지가 않았다. 출산 후에 기존 운동방이었던 곳을 아기방으로 꾸며 운동할 공간도 없었을뿐더러 거실에서 하자니 아기가 옆에서 계속 칭얼거려 집중도 되질 않았다. 그래서 아파트 지하의 헬스장에 다닌 게 8개월이 다되어가고 그간 덤벨은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녀석을 당근 한다는 건 그냥 쓰지 않는 물건 이왕이면 돈 받고 보내자는 거였는데 막상 보내려니 마음이 쉽사리 떨어지지가 않았다.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마음은 바로 애써 외면했던더 이상 홈트할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뼈아픈 사실이었던 것이다. 내 자유의지를 지켜내기 위해 남편이 출근하기 전 30분 짬 내서 운동하러 가고, 커피 마실 여유를 내고, 아기가 잠깐 잠든 시간에 영상 편집이던 글을 쓰던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생산적인 일을 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켜온 내 자유의 시간들인데 마치 그 전부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달까. 정말 슬펐다. 이것은 과연 진정한 이별이었다.


덤벨을 팔았다고 말하니 남편도 동생도 놀란다. ‘진짜 팔았냐?’며 되묻는다. 못 버리던 네가 아기한텐 결국 지는구나라고 얘기한다. 사실이다.


나를 만들고 지탱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진다.


일도 운동도 자유도. 그런데 이상하지? 이 조그맣고 말도 못 하는 따뜻하고 말랑한 인간이 나를 바꾼다. 그것도 나를 통돌이 세탁기에 넣은 것 마냥 휘몰아치게 바꾼다. 그래. 엄마의 자유는 이제 진짜 안녕이다. 새로운 내 사랑이여 얼마든지 나를 짓밟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