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내 뿌리가 흔들리는 일이었습니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겨버렸다

by 록록록

평생 나 자신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잘되고 ‘내’가 나아가는 길이 꽃밭인 것에만 몰두했다. 아기천사가 찾아온 순간마저 나는 나의 안위를 걱정했고 나를 잃은 것 마냥 슬퍼했다.


‘수면교육? 울리면 다 돼~ 애들은 조금만 울리면 다 알아들어. 부모를 위해서 분리수면은 무조건이지.’


쿨한 엄마인 양, 자식을 위해선 절대 희생하지 않는 엄마인 양 꽤나 거들먹거렸다.


하지만 웬걸.


아기가 태어나고 이유 모를 울음엔 발이 보일세라 부리나케 아기에게 뛰어갔다. 누가 아기를 불편하게라도 할까 노심초사 다른 사람 품에 주지도 못했다. 심지어 남편에게 조차도.


호르몬 탓인지 몰라도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면 마치 내 안의 모든 것이 무너지듯 함께 눈물이 났고, 그 울음을 당장 그쳐주지 않으면 나는 마치 잘못된 엄마로 손가락질받느냐 최선을 다해 아기를 달랬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어떤 일이든 닥치기 전까진, 겪어보기 전까진 섣불리 단정을 지어선 안되는 것이었다.


난 11개월이 된 지금도 아기를 3분 이상 울릴 수 없는 엄마이며, 분리수면은 남편과, 아기 옆을 한 시도 떠날 수 없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완모 중에 젖물잠까지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자유부인은 언감생심이다.


좁아터진 슈퍼싱글 침대에서 아기와 함께 잔 지도 어언 6개월이 다됐다. 아기를 위해 잠을 포기하고, 쉬고 싶은 육신도 포기하고 그저 아기를 위해서 24시간이 돌아간다.


예전에 선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보거나 하려 하지 않는다고.


그 당시 나는 그 말의 껍데기만 이해했을 뿐이다. 나 이외의 진정한 희생은 절대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이 따라와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들지만, 그 포기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더 주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 복직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나는 아기가 나 없이 보낼 시간이 너무나 두렵다.


난 나를 엄청 사랑했다.

하지만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겨버렸다.


그가 나를 덮어씌워버렸지만, 내 포용력은 더 커지고, 위대해질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의 아기 천사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