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아서 할게요. 좀 닥쳐주실래요.
나는 11개월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완모맘이다. 출산 전 정유미 선생님의 삐뽀삐뽀119 채널을 통해 모유수유의 장점을 알게됐고, 산모의 빠른 회복과 엄마와 아기의 유대감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해 수유 방식을 '모유'로 선택했다.
출산 2일 후 젖이 돌기 시작하는지 왼쪽 팔과 등이 저릿해오며 젖몸살이 시작됐다. 24시간 이내에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 모유수유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말에 수술한지 하루만에 몸을 일으켜 신생아실에 딸린 수유실로 향했다. 수유콜을 달라고 신생아실에 전화를 했더니, 간호사가 퉁명하게 대꾸한다.
'산모님 제왕절개 하지 않으셨어요? 움직이기 불편하신데 수유가 가능하시겠어요?'
아마 그 간호사는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산모가 괜히 신생아실에 와서 수유하다 사고라도 날까 걱정한거라 생각되지만, 나는 어떻게든 모유수유를 성공하고싶은 마음만이 굴뚝같았다. 겨우 몸을 이끌어 수유실에 도착했다.
꼬박 하루하고 몇 시간이 더 지나서야 분만 후 처음으로 내 아기를 안았다. 아기는 배가 고픈지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링겔 스탠드를 가지고 겨우 자리에 앉아 수유쿠션을 배에 올리고 아기를 올렸다. 영상으로만 배운 수유자세는 어설프기 그지 없었고, 내 몸은 뚝딱거렸다. 링겔 줄에 뒤엉켜 갈피를 잡기 어려웠지만 겨우 아기의 입에 젖을 물렸다.
살고자 본능적으로 젖을 빠는 아기의 힘은 대단했다. 아직 젖이 잘 나오지 않아 결국 아기에게는 분유를 보충했다. 병실로 돌아온 나는 이 생경한 경험에 눈물이 났다. 아기는 그저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겠지만, 난 아기의 젖빠는 행동이 '엄마, 얼른 제게 젖을 주세요. 배고파요.' 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조리원에서 갖은 노력 끝에 직수에 성공했고, 그렇게 나의 모유수유는 성공 가도를 향해갔다. 모유는 분유보다 소화 시간이 빨라 신생아 시기에는 수유 텀이 2시간 안쪽이다. 젖 먹이고 트림시키고 눕히면 30분에서 1시간이 훌쩍 가있다. 그럼 30분도 채 눈 붙일 새도 없이 다시 배고픈 아기를 먹여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굉장히 힘들긴하다. 오죽했으면 모유수유하는 모습으로 가위를 눌렸을까. 제일 힘들었던 이 시기에 하도 기가 빨려 출산 전보다 몸무게가 더 줄어들었다.
초췌해진 내 몰골과 2시간 수유 텀에 경악한 지인들은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보는 사람마다 '요즘 분유도 잘 나오니 모유는 이제 그만 먹여도된다. 시간 지나면 물 젖된다. 엄마가 힘들다.' 등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지만, 내겐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 말들만 늘어놓았다.
수유 만으로도 난 지쳐있는데, 기운 빠지는 말들만 들으니 마치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사서 고생하는 바보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단유를 해야하나 라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빠가 내게 말했다.
'요즘은 분유주는 사람이 더 많은데, 힘들지만 모유를 주는 우리 딸이 대단하다.' 라고.
이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내 선택에 대한 응원과 지지였단걸 아빠의 말을 듣고서 깨달았다. 모유수유의 힘든 점을 감내하기로 결정한 것인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지인들에 진절머리가 났던 것이다.
3개월 정도의 힘든 시간이 지나자 정말 신기하게도 힘들었던 시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유 자세가 자리잡고 아기가 크니 젖을 먹이기가 훨씬 더 수월해졌다.
우리 둘만의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젖을 먹는 아기의 소리, 젖을 먹으며 나를 쳐다보는 아기의 눈빛, 차분해지는 심장박동, 안정감을 찾은듯한 표정, 나를 만지는 아기의 손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순간.
걱정해주는 사람들께 고로 나는 복직을 해서도 단유를 할 생각이 없다. 세계보건기구의 모유수유 권장사항도 36개월이며 아기가 스스로 젖과 안녕할 때까지 나는 기다려주고 싶다. 나 없으면 못사는 이 생명체도 언젠가는 나를 떠나간다는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아기와 나 우리 둘만의 시간을 느긋하게, 온전히 더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