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好雨時節)을 직역하자면 좋은 때를 알고 내리는 비 라는 의미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알맞은 때를 일컫는 말이다. 인생사 늘 그런 시간만 있다면 좋겠지만 어찌 내 욕심대로 될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다가오지만 막상 그 일이 내 것이 되었을때, 그 상실감은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난 '다음은 없다'라고 늘 곱씹는다. 다음에 오면 사드려야지. 다음에는 짜증을 안 내야지. 다음에는 이렇게 저렇게 해봐야지.
외할아버지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고 반갑지 않은 이별 신호탄에 모든 일정 다 제쳐두고 난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러고 할아버지는 정확히 2주 후 돌아가셨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랬지만 진정으로 마지막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 마주한 할아버지는 관 속에 누운 차디찬 육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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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엔 회사 선배님들과 가볍게 한 잔 했다. '지금이 무한할 것 같지만, 이 순간은 유한하다.' 고 내게 말씀해주신다. 그 말에 백 번, 천 번 공감한다. 지나가고 나서 그것이 기회였던 것임을 깨달은 순간들이 다들 있지 않나?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
난 3개월 전 마케팅에서 해외영업으로 직무를 전환했다. 영업사원 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부정적인 인상부터 떠오른다. 술, 접대, 을... 처음에는 옮기기가 두려웠다. 여성으로써 영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전환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제안을 받는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1번이라도 있다면 그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의 잠재력을 누군가 발견해주고, 그걸 이끌어주려는 사람이 있을까? Why? 내가 먹고 살기도 바쁜데? 난 이 제안이 정말 기회라 생각했다. 영업이 무슨 일을 하건 아니건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나에게 온 기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직무를 전환한지 3개월이 지났고, 내겐 또 다른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고 있다. 역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 까지는 절대로 누군가를 비난해선 안된다라는 것을 또 실감했다. 예전에 디자이너로써 연구소에서 일할땐 영업팀 사람들은 왜 저런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할까 싶었다.
근데 그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고객'을 대표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고객은 그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들은 그럼에도 그 질문에 답변할 수 없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또 세상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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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은 유한하다. 보이지 않는 타이머가 어디선가 째깍거린다.
다음으로 미룰 정당성을 찾지말고 그냥 해보는건 어떨까.
이 기회의 화살이 날라가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