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기를 두고 집을 나설 때

by 록록록

1월을 기점으로 아기가 21개월에 접어들었다. 점점 더 인지 능력이 발달하고, 엄마가 있고 없고의 차이점이 점점 더 명확해진다. 2주간의 긴 휴가를 끝내고 다시 오른 출근길에 아기가 달라졌다. 2주 전만 해도 웃는 얼굴로 배웅해주던 녀석이 울고 불고 비명을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난리가 났다. 누가봐도 불안감이 극도에 다른 것 같았다.


아빠 품에는 안기기도 싫은지 온 몸을 비틀고, 엄마한테 갈거라고 팔을 있는 힘껏 뻗는 아기의 모습에 출근하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길을 나설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비타민 사탕 먹자는 말에 울음은 금방 그쳤다는 후문)


나는 막내 동생과 7살 차이가 난다. 동생이 3살 쯤인가. 내가 친구들과 놀겠다고 집을 나서려는데 동생이 울고 불고 난리가 났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 엄마가 얼른 나가라고 재촉했다. 울고 있는 동생을 안아 올려야 하는지,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가야할지 나는 그 순간에도 결정하지 못했다. 엄마의 재촉에 할 수 없이(?) 친구들에게 발을 돌렸지만.


그 날이 생각난건 왜일까. 아마 내가 나가고서 동생도 엄마의 회유에 금방 울음을 그쳤겠지. 아기니깐.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는 훌쩍 커버린 20대 후반의 내 동생이 아기같이 느껴진다. 심지어 나는 가끔 내 동생과 아이의 이름이 헷갈리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내가 제 2의 엄마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지 어떤 면으로는 내게 아들같기도 하다.


본론으로 돌아가 우는 아기를 두고 집을 나설 때면 정말 슬프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마주할 때면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에 답을 찾으려 안달복달이다. 그 답을 찾아 이 아이의 울음을 거부하고 일터에 나선 나를 정당화 해야 하니까.


하지만 여전히 답은 없다. 이유를 달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나는 일을 해야하고, 아기는 잠깐 엄마와 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는 잘 자랄 것이다고 믿어야 한다. 엄마의 보육이 최고라는 모든 논문의 외침 속에서도 나는 그를 외면하고 내 길을 갈 것이다. 그냥 그럴 것이다.


계속해서 이유를 찾으니 일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만 수면 위로 떠오른다. 묵묵히 내 길을 가는 것. 다른 엄마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 설명할 수도 없고 회유하고 싶지도 않다. 우는 아기를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면 해결될 것이 있을까. 그저 나는 퇴근 후 주어진 아이와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일하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