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컨퍼런스 파이널이 종료되었다.
이번에 신설된 양 컨퍼런스 파이널의 MVP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테픈 커리, 보스턴 셀틱스의 제이슨 테이텀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 나의 눈에 들어온 선수들은 이들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그 주인공들은 ‘올드스쿨’ 플레이어, 골든스테이트의 케본 루니와 마이애미 히트의 지미 버틀러다.
전통적인 농구는 골 밑을 지배하는 강력한 센터의 존재가 승패를 좌우했다.
60년대를 지배했던 전설 빌 러셀과 윌트 체임벌린, 70~80년대 20년간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던 카림 압둘 자바, 80~90년대 만능센터 하킴 올라주원, 자칭 역대 가장 압도적이었던 존재 샤킬 오닐 등. 농구는 센터 놀음이라는 말이 허울뿐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런 전통적인 농구에서 센터의 역할은 높이와 힘을 이용한 골 밑 득점과 리바운드, 블락 등 박스 안을 어떻게 지배하는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1984년 NBA에는 ‘농구 그 자체’가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그분', 마이클 조던이다. 그는 뛰어난 신체능력과 다양한 기술을 통해 빽빽한 센터 숲 속을 헤집어 놓기 시작하였다. 센터에 비해 빠른 몸놀림과 동 포지션에 비해 우월한 신체능력, 그리고 엄청난 기술과 슈팅력을 통해 3점 라인 안 쪽 공간을 폭격하는 ‘미드레인지 게임’을 통해 공격을 풀어나갔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집념과 체력, 수비 집중력을 기반으로 한 압도적인 수비력까지 갖춘 그는 90년대를 그의 시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구의 흐름은 달라졌다. 끊임없는 움직임과 공간 창출(스페이싱)을 통한 3점 슛, 기동력을 기반으로 빠른 속공 전환 플레이(트랜지션 게임)를 통해 득점을 창출하는 스몰 라인업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수비가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는 미드레인지 공간이 아닌, 더 높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는 3점 슛 기회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또한 센터의 역할도 변화하였다. 전통적인 역할인 골 밑 득점과 리바운드를 위한 치열한 몸싸움은 기본이고 외곽으로 기회를 열어주는 아웃렛 패스, 슈터들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스크린플레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직접 외곽에서 해결할 수 있는 3점 능력 등이 좋은 센터의 기준이 된 것이다.
케본 루니는 스테픈 커리, 클레이 탐슨, 드레이먼드 그린 등과 같은 올스타 팀 동료들 사이에서 엄청난 네임밸류를 지닌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시리즈 동안 보여준 모습은 ‘올드스쿨’한 센터의 모습 그 자체였다. 컨퍼런스 파이널 기간 동안 평균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리바운드를 사수하였으며, 골 밑 수비와 팀의 궂은일을 도맡았다. 뿐만 아니라 2차전에는 21 득점으로 그의 커리어 하이 득점도 기록하였다. 그가 좋은 모습을 보이자 스티브 커 감독은 그의 출전시간을 대폭 늘렸다. 정규시즌 평균 21.1분 출전에 그쳤던 그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평균 29.2분을 출전하였다. 그의 ‘올드스쿨’함은 골든스테이트가 컨퍼런스 파이널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
https://youtu.be/BMo1VHp0p2o
지미 버틀러는 주요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져있는 마이애미 히트를 말 그대로 멱살 잡고 7차전까지 끌고 갔다. 그는 요즘 선수답지 않게 3점 슛 능력이나 화려한 드리블 스킬을 보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분’에게서 풍겨오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높은 정확도의 2점 슛과 묵직하고 단단한 신체조건을 활용한 돌파 득점을 기반으로 한 미드레인지 게임을 풀어나갔고,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을 바탕으로 고비마다 중요한 수비를 해냈다. 시리즈를 치르는 중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려 4경기를 40분 이상 출전하였다. 지미 버틀러의 ‘올드스쿨’한 모습을 통해, 비록 그는 이번 시리즈의 패자(敗者)였지만 많은 농구팬들의 가슴에는 패자(覇者)의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시켰다.
최근 직장인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내가 혹시 ‘꼰대’로 분류되지는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맘을 졸인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간혹 ‘올드스쿨’함의 강점이 희석되지는 않을까 우려도 된다. 직장인에게 ‘올드스쿨’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올드스쿨’함은 첫째 지독한 성실성, 둘째 금강불괴 같은 내구성, 셋째 미친놈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도전적 마인드다.
과거 직장인에게 성실함은 기본이었다. 그렇기에 취업 시장에서 성실함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을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지독한’ 성실함이라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보인다. 예를 들어 수년 동안 어떤 이유가 되었든지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지침이나 정책들을 꾸준하고 묵묵하게 실행해 나가는 것이 ‘지독한 성실성’이다.
또한 이는 강력한 내구성을 바탕으로 한다. 그 힘든 직장생활 중에서도 꾸준히 자기 관리를 통해 건강 상의 문제가 없다. 또한 본인을 향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해도, 막상 본인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이런 내구성이 성실함의 근본이 된다.
마지막으로 도전적인 자세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면, 본인이 그것을 잘하든 못하든 그것을 해내기 위해 도전한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한다. 옆에서 그것을 보면 때로는 무모하기도, 때로는 부러질 것 같다. 하지만 부러져도 계속한다. 그리고 또 헤맨다. 하지만 결국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낸다.
‘올드스쿨’함과 ‘꼰대’는 과거에서 비롯되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확연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바로 타인에 대한 영향력의 방향성이다.
‘올드스쿨’한 장점을 지닌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반면 ‘꼰대’는 후배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꾸준한 자기 관리와 성실성, 그리고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도전적인 태도를 싫어할 후배는 아무도 없다. 비록 그 장점이 근래의 2030 세대들이 높게 평가하는 요소가 아닐지라도, (개인적으로 MZ세대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풀어보겠다.) 그 가치가 폄하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올드스쿨’함을 강요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 강점들을 강요하며 세대차이라는 정당화하기 쉬운 근거를 들어 그렇지 않은 타인들을 폄훼하거나 무시하는 행동, 상대방이 지닌 강점보다는 부족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지속적이고 강압적으로 피드백을 주는 행위 등이 ‘올드스쿨’이 ‘꼰대’로 치환되는 순간이 된다.
즉, 본인이 지닌 강점을 통해 ‘본인’의 영역에서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이 ‘올드스쿨’이고, ‘타인’의 영역에 다양성이라는 기본적인 보호 장치를 넘어 본인의 강점을 주입하고자 하는 욕심을 내는 것이 ‘꼰대’다.
나는 직장생활 속에서 ‘올드스쿨’함을 지닌 선배들을 많이 보았다. 처음에는 ‘꼰대’와 ‘올드스쿨’함을 구별하지 못하고, 한 무더기로 묶어서 ‘낡은 것’, ‘바뀌어야 할 것’, ‘참신하지 못한 것’으로 폄하하였다. 젊은 ‘꼰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나태하고 열정이 없는 내가 가지지 못하였지만 회사의 성과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위계와 경직성이 배제되어 있는 순수한 ‘올드스쿨’함이 가진 위대함을 체감하게 되었다.
메인 사진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joeglo/49644985841
영상 출처 : NBA 공식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