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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Aug 06. 2023

미용실에 가는 소심하고 유별난 남자의 마음

나는 머리를 그리 자주 자르러 가는 편은 아니다.

평균적으로 세 달에 한번 정도.

그렇기 때문에 미용실에 가는 것이 마치 계절마다 치르는 어떤 특별한 행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특별히 머리 손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약간은 긴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아침에 머리를 감고 나면 수건으로 물기를 털어내고 가르마 방향으로 머리를 쓸어주면 끝.

특별히 어떤 스타일링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은 머리다.

이건 바쁜 아침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내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둘째,

멋진 헤어스타일이 딱히 필요 없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회사에 출근하는데 굳이 멋을 부릴 필요도 없거니와

주말에는 두 아들과 빡세게 몸으로 놀아주는 아빠에게 최신 유행의 멋진 헤어스타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셋째,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미용실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서 사실 미용실에 가는 날에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곳에서 경험하게 되는 그 일련의 모든 과정과 상황들이 대체로 내가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첫 번째 힘든 상황은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

사실 이때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원하는 건 지난 3개월 전에 잘랐던 것과 동일한 스타일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항상 자르던 대로 잘라주세요.”


라고 말하면 절대 안 된다는 걸.

이렇게 말한들 결코 지난번과 같은 스타일로 될 리 없다.


하긴, 미용사님은 매일 수많은 고객분들의 머리를 만지실 텐데 3개월마다 한 번씩 보는 손님의 머리를 어찌 정확히 기억하시겠는가.  


어떤 미용사님은 이전에 고객들이 자른 머리를 사진으로 촬영해서 따로 관리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테일한 설명을 해 주지 않으면 지난번과 같은 스타일은 다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내 경우엔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그 부분을 설명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말로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엔 그냥 두리뭉실하게 설명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안타깝게도 항상 별로였다.


두 번째 힘든 상황.


목에 가운을 두르고 있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게 고통스럽다.


이리저리 빗질을 당하며 때로는 머리에 우스꽝스러운 삔이 꽂힌 내 얼굴을 계속 보고 있는 것도 왠지 민망하고

무자비하게 잘려나가는 내 머리카락을 보고 있으면 뭔가 참담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뭐랄까, 손발이 묶인 채 어딘가 나 자신이 발가벗겨진 채로 해부당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항상 마음속으로는


‘어어 이거 너무 짧은 거 아닌가? 내가 원하는 길이랑 다른데…?’


라는 생각이 수십 번도 더 들지만 그럴 때마다 왠지 중간에 그 현란한 가위질을 멈춰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그냥 잘려나가는 내 머리카락들을 보면서 속으로 체념할 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째 힘든 상황.


무언가 마음에 내키지 않는 대화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나고 어디 가세요?”


라는 질문을 주로 많이 받는 것 같은데

내가 머리 자른 후에 가긴 어딜 가겠는가?


오로지 마음속에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라는 생각뿐이다.


물론 미용사님 입장에서는 손님을 응대하는 차원에서의 친절함 이겠지만 (그리고 그 배려심을 생각하면 감사하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소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정말 곤혹스러운 순간이다.


굳이 내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머리 자르면서 무겁고 진지한 주제의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니면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만 이야기하는 것도 왠지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정말이지, 대화를 이어나갈 만한 주제를 찾아내기가 힘들다.


그렇게 영혼 없는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하루에 쓸 에너지를 미용실에 앉아있는 시간에 거의 다 소진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머리를 다 자르고 난 다음에는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곤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그 헤어스타일을 3개월의 시간에 걸쳐 참고 길러낸 뒤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3개월 뒤에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처음 보는 미용사 분과 그 모든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 들을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경험상 마음에 드는 헤어스타일을 하게 될 성공확률도 매우 낮았다.


지금도 그 상황을 생각하니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미용실에 가는 게 너무 힘들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미용실에 방문 전 앱이나 인터넷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기장과 머리 스타일을 아주 디테일하게 미리 설정할 수 있게 하고 (마치 게임에서 아바타를 설정하듯이)

방문 시에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미용사와 고객이 아무런 대화 없이 독서실과 같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머리만 자르고 나오는 그런 미용실.

아, 그래도 배경 음악은 있었으면 좋겠다. 대신 너무 시끄럽지 않은 걸로.


흠. 아무래도 뭔가 너무 삭막한 느낌 이려나.

아마도 그런 미용실을 좋아하는 고객들은 그다지 많지 않겠지.


아무튼 다시 머리를 잘라야 하는 그 3개월의 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부디 이번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미용실에 다녀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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