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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별 May 27. 2024

된장 냄새의 역습(feat. 음쓰 처리기)

귀차니즘과 맞바꾼 된장냄새


 이 음식물 처리기 진짜 획기적이래.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일을 담당하는 남편이 어느 날 퇴근하자마자 얘길 한다. 

"음식물 처리기 사자! 내가 이리저리 알아봤는데, 미생물 분해 음식물 처리기가 괜찮다네? 가격은 좀 있는데, 유튜브 후기 보니까 꽤 괜찮은 거 같아. 음쓰도 자주 안 버려도 되고 정말 좋은 거 같아."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게 은근히 귀찮고 싫은 일이었던 남편은 마치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은 사람처럼 신나 보였다. 

나는 남편의 열정적인 설명에 설득당해 공동통장에 남은 잔고를 탈탈 털어 무려 80만 원을 주고 그 기계를 구매했다. 처음 며칠은 정말 신세계였다.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처리기에 넣고 버튼만 누르면 끝! 귀찮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작업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남편은 마치 발명가라도 된 듯 뿌듯해했다. 그리고 미생물을 잘 키워보겠다며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어느 날부턴가 음쓰 처리기에 음식물을 넣고 나면 집 안에 이상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거 뭐지? 요리하면서 뭐가 잘못됐나? 된장통 좀 잘 닫아야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는 점점 심해졌다. 마치 우리 집이 거대한 된장 항아리로 변한 듯한 느낌이었다. 냄새의 원인을 찾기 위해 집안을 뒤지던 우리는 결국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냄새의 주범은 바로 음식물 처리기였다. 미생물이 음식물을 분해하면서 생긴 냄새였던 거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남편은 망연자실했다. 귀찮음을 피하려다 된장냄새의 유격을 받은 남편의 눈에는 처음 구매를 갈망할 때 보였던 반짝이는 눈빛이 사라졌다. 그리곤 머쓱하게 이야길 한다.

"이래서 베란다에 두고 쓰는 건가 봐. 우리가 부엌 쪽에 넣어서 그런 거 같아. "

나는 얘길 했다.

"오빠, 그냥 쓰던 음쓰 냉장고에 버릴게.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버려줘."



미생물 음식물 처리기를 사용하는 주변 분들에게 물어보니 "물이 많거나 매운 거 넣으면 죽는다"는 얘길 해줬다. 아마 남편이 미생물을 잘 키우겠다며 초반에 물을 좀 많이 주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악취를 품게 했던 원인이었던 거 같다. 


남편아. 잘못된 사랑으로 미생물이 많이 죽은 거 같아. 우리의 코를 살리기 위해선 미생물을 다시 살려내야 할 거 같네. 음쓰를 사기 위해 초롱초롱 빛내던 눈빛 에너지를 다시금 뿜어내길 응원할게.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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