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0주가 되자, 나도 임산부 배지를 달기 시작했다. 사실 이 시기에는 배가 전혀 나오지 않아서 외부에서 봐도 티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12주까지는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임신 전에는 지하철에서 임산부석만 비어 있으면 거리낌 없이 앉곤 했다.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든,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막상 내가 임산부가 되고 나니, 지하철의 분홍색 좌석이 그렇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이 자리는 내 자리야"라고 예약해 둔 느낌이랄까.
임산부석에 누군가 앉아 있으면 그 사람이 배지를 달았는지부터 확인하게 되었다. 만약 배지가 없는 사람이 앉아 있다면, 괜히 얄밉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반드시 비켜줘야만 하는 좌석이 아니라 배려석이긴 하나 왜 임산부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억울한 마음이 살짝 들었다.
2년 전,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에서 9호선을 타고 집으로 오던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피곤해서 남아 있던 임산부석에 캐리어를 들고 털썩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나를 톡톡 건드리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여기 앉아도 될까요?”
눈을 떠보니, 그분의 배는 눈에 띄게 나와 있었다. 임산부임이 분명했다. 나는 “어머나, 그럼요!” 하며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나도 피곤한데 왜 꼭 내가 일어나야 하는지 속으로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당시에는 그 임산부가 나에게 너무 퉁명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내가 임산부가 되고 나니 그분이 나를 봤을 땐 얼마나 답답하고 얄미웠을지 이해가 된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맞다. 내가 임신을 해보니 비로소 임산부들의 고충, 특히 입덧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고, 단축근무를 하는 임산부들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 아이를 낳고 나면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워킹맘들의 마음도 조금 더 알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