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가진 힘을 알아야 돈을 버릴 수 있다.
한국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어서 일까 40년을 살면서 실물을 볼 일도 쓸 일도 별로 없었지만 수없이 많이 들어서 엄청 익숙한 것이 있는데 바로 '달러'입니다. 그동안 그저 미국의 돈으로 알고 있던 달러 왜 그렇게 뉴스에서 TV에서 떠들어 대는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하는데 정작 저에게는 우리나라에서는 달러를 들고 동네 편의점에서 물건 하나도 제대로 못 사는 남의 나라 돈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의미였습니다.
주식에 투자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미국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달러를 접하게 됩니다. 왜 우리나라는 미국의 돈에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 궁금했었는데 흔히 연준이라 부르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의 의장이 내뱉은 '테이퍼링'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주가가 급락하는 걸 경험하고 나서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구고 테이퍼링이 뭐길래 내가 투자한 주식이 떨어지는지 화가 나서 찾아보게 됐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패닉에 빠져 버렸고 그 여파로 한국의 주식시장은 코로나가 뉴스로 보도되는 2020년 1월 후반 전조증상을 보이고 2월에 들어 대폭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 어느 나라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미국이 어떻게 하는지 예의 주시하던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경기침체를 우려해 양적완화를 선택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돈을 풀기 시작합니다. 대 유동성의 시대로 전환되며 2020년 3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약 1년 3개월간 코스피는 약 130% 상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저는 왜 모두가 미국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예의 주시하고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그러니까 돈을 풀겠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도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 생각이 들었고 막상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니 달러의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고 해서 시작부터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우리가 쓰는 돈이라는 물건은 어느 나라든 국가가 지정한 곳에서 발행을 합니다. 사실상 이 돈이라는 물건은 그저 약속이지 그 자체로 어떤 고유의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금이나 은과 같은 어디엔가 쓰임이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가치가 없지만 가치를 부여받은 물건입니다. 그 가치를 보증하는 기관이 국가라는 거죠. 그런데 이게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할 때는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우리가 만든 자동차를 갖고 싶다고? 그럼 당신들은 뭘 주겠냐고 물었는데 본인들 나라에서 발급한 돈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 돈 우리나라에 가져가 봐야 쓸모도 없는 거 우리에겐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미국은 19세기 중반 많은 나라들이 그랬듯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서 자신들이 만든 달러를 쓰기 위해 '금본위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달러라는 지폐를 가져오면 금으로 교환해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금은 어느 나라든 가치가 높은 화폐 수단이었기 때문에 금으로 교환 가능한 보증서 같은 지폐는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금을 보유한 만큼 지폐를 발행하는 방식은 생산량이 적고 제품을 생산할 때 원자재로 쓰이는 금이 가진 특성 때문에 충분한 양을 발행할 수 없었고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 비축했던 금은 바닥을 보이고 국가 재건을 위해 많은 양의 화폐가 필요했던 이유 때문에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됩니다.
미국이 생산한 전쟁물자를 금으로 구입해야 했던 유럽 덕분에 미국은 그 당시 전 세계의 금 보유량의 70%를 가질 만큼 부자나라가 되어 있었고 금본위제를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달러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지게 됩니다. 국가 간의 무역에서 달러는 중요한 지불 수단이었기 때문에 이제 미국에서만 쓰이는 통화가 아니었고 이후에 금의 적은 생산량과 원자재로 쓰이는 이유로 발행량이 경제규모를 따라가지 못하는 금본위제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미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됩니다.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 있는 통화였기에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인데 발행량을 늘려야 했던 이유로 금본위제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점차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던 달러는 천재적인 기지를 발휘해서 오일쇼크 이후 달러로만 원유를 결제하게 하는 협상을 성공시키며 금이 아닌 원유의 가치를 품는 통화가 되었습니다. 유로화, 위안화, 엔화 등 달러의 위상을 넘보는 통화들이 많았으나 그들이 달러를 넘어설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국가가 돈을 계속해서 발행을 하면 인플레이션이 옵니다. 사람들이 돈이 많아지고 물건은 한정적이니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생깁니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 발행된 돈을 다시 회수하는 작업을 한다고 가정하면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먼저 돈이 부족해지고 물건을 구매하지 않으니 물가가 낮아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동할 것으로 보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돈이 부족해져도 물가는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미국은 돈을 회수하는 방법으로 금리를 올립니다. 소위 달러빚을 가진 나라들은 내야 할 이자가 높아지면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원금을 일부 갚아서 부담을 줄여야 합니다.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한 고통의 기간을 세계 모든 나라에게 분담시키는 방법으로 자국의 고통을 줄입니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 보면 달러의 지위는 횡포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미국이라는 국가적 지위가 달러의 신뢰를 뒷받침해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국가적 지위는 대부분 원유를 결제하는 유일한 통화라는 것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석유가 필요하지 않은 나라는 없기에 쓰고 싶지 않아도 쓸 수밖에 없는 통화입니다. 달러의 지위가 미국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이기에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는 상황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흔히 석유에 진심인 나라라고 미국을 얘기하는 인터넷 밈들이 미국이 석유에 얼마나 예민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지금 석유로 대표되는 에너지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전기 생태계가 그것입니다. 지금이야 전기 생산의 대부분을 석유 같은 화석에너지가 담당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점점 그 비중이 줄어들 것입니다. 석유의 가치를 품어서 생긴 달러의 위상은 이제 석유가 아닌 다른 가치를 찾아야 하는 시대를 맞이 했습니다.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 없는 이 시점에 석유를 대체할 가치는 뭐가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