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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재현 Jul 17. 2021

군대의 미래, 그리고 군인

4차 산업혁명시대 군인의 역할

100마일의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오늘의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이 속도의 충돌 때문임을 밝힌다. 경제 발전의 속도를 사회 제도나 정책 등이 보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은 시속 100마일의 속도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정부나 군대와 같은 관료조직, 정책과 법 제도는 30마일도 안 되는 속도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고 시대를 풍미한 석학은 꼬집었다.

<변화의 속도>[1]

이런 속도의 차이는 결국 상호 충돌을 야기하고 변화, 발전의 흐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우리의 세계는 지금 이 시각에도 변하고 있다. 어릴 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대기업에 취직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얻어서 은퇴 후 안락한 삶을 꾸미는 한국 사회의 경제 모형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통계청에서 공개하는 일자리 이동통계 결과를 살펴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일하는 사람 3명  중 1명은 1년 안에 자리를 옮긴다. 불안정할 수 밖에 없고, 1년 뒤를 내다보며 일할 수 없다.

<주된 일자리 이동 규모>[2]

이미 자본과 노동을 묶었던 고용이라는 고리는 해체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숙박업체인 에어비앤비 (Airbnb)는 온라인 플랫폼 하나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숙박업체가 되었다. 2021년 기준 기업가치는 108조 원을 넘었으며 힐튼이나 하얏트 같은 기존 호텔업계 강자들을 제치고 세계 숙박업계를 이끈다. 하지만 직접 고용한 인력은 3천 명이 조금 넘을 뿐이다. 모두 본사의 관리 인력이며, 단 한 명의 숙소 서비스 직원도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또한 단 한 채의 숙소도 직접 소유하지 않는다[3] 물론 에어비앤비 (Airbnb)의 사례가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자본은 노동자를 가까이 두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 21세기의 4차 산업혁명은 19세기 2차 산업혁명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기계 옆에 노동자가 늘 붙어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노동 뿐 아니라 이제 기업은 자산도 직접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군대에는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


왜 군대는 장기복무 정규직을 선호할까?

앞서 빠르게 혁신하고 있는 세계에 비해서 군대와 같은  관료제 조직은 비교적 느리게 변화함을 언급하였다. 한 조직의 미래와 흥망성쇠는 결국 어떤 인재를 선발하는가에 달려있다. 군대는 리더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군인사법 (법률 제8732호) 제6조에 따르면 장교와 부사관 군 간부들은 장기복무와 단기복무로 구분하여 복무하게 되어있다.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만 장기복무하는 장교로 근무할 수 있다. 변재현 대위는 1번, 최위진 대위는 3번의 경우에 해당한다.

1. 사관학교를 졸업한 자

2. 장기복무를 지원하여 임용된 군법무관

3. 단기복무장교 중 장기복무장교로 선발된 자

4. 공군의 조종병과장교로서 비행자격이 부여된 자


반면 단기복무장교는 육군3사관학교 또는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한 자, 사관후보생 및 학생군사교육단 사관후보생 과정출신장교와 제2항의 장기복무장교에 속하지 아니하는 자로 한다. 부사관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장기복무자와 단기복무자를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군대에 청운의 꿈을 품고 입대한 청년들은 반드시 장기복무에 선발되어야만 꿈을 이어나갈 수 있다. 민간 사회의 고용 유동성 증가와는 사뭇 다른 방향이다. 그리고 장기복무를 향한 경쟁은 날이 갈수록 더욱 치열해진다.   안정성과 형평성을 중시하는 공공 부분에서는 더 나은 성과가 더 높은 소득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장기근속과 호봉제 임금제도는 이를 뒷받침 하는 제도였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실력 있는 사람들은 공공 부분보다는 경쟁해서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노동시장을 선호했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그런 믿음이 깨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1년 7급 공무원의 필기시험 경쟁률은 48:1을 기록했다. 왜 우리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질주하는가? 기술의 혁신이 가져온 일자리 불안, 1년 뒤 나의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혁신에 따른 고용 감소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던 중에 정년과 연금까지 보장된 공무원, 공공기관의 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직업적 이상향이 등장한 것이다. 30여 년 전만 해도 공무원이 지금처럼 인기가 높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IMF를겪은 후부터 다른 직장보다 안정적이고 편하다는 점에서 공무원은 점차 인기를 몰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보수 등 처우도 민간 부분보다 낫다는 점이 알려졌다. 좀 더 지나고는 기술혁신 및 고용 변화와 경제 변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꿈의 직장으로 탈바꿈했다. [4]


필자의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변재현 대위는 육군사관학교, 최위진 대위는 홍익대학교를 졸업하여 둘 다 서울에 위치한 4년제 대학교를 나왔다. 필자들이 진로를 결정해야 했던 2010년도 초에는 사실 지금보다 고용시장이 지금보다 덜 경쟁적이었다. 즉 만19세 청년의 관점에서 공공부문에 대한 유입 매력 요인이 2021년보다 높지 않았다. 일례로 육군사관학교 입학경쟁률은 2010년 평균 20.2:1 (여생도37.5:1)에서 2020년 44.4:1 (여생도 111.2:1)로 대폭 증가했다. 임관 동시에 장기복무 전환되는 부사관 모집의 경우 평균 8.5:1, 드론·무인기(UAV)운용 부분은 28.8대 1까지 치솟았다. 이런 수치는 군대에 유능한 인재들이 유입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물론 이는 군대의 변화하는 임금과 복지의 변화한 위상이 반영된 결과다. 2021년 연말정산에서 변재현 대위는 국세청에 총급여 54,927,120원을 제출하였다. 대한민국 일반직 공무원의 65.7%를 차지하는 9급 공채출신은 대학을 졸업 후, 평균 29세에 신규임용되었으며, 초봉으로 월 1,659,500원의 급여를 받았다.[5]


29세 변재현 대위는 평균 20대 직장인의 월 소득 206만 원, 연봉 2천 5백만 원보다 약 두 배를 더 벌었다.[6]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에 비하면 결코 높다고 할 수 없지만, 정년과 연금이 보장된 공공부문임을 참작하면 매우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을 확인할 수있다. 임금 보수 뿐 아니라 군인의 직급에 대한 예우도 좋다. 국가공무원법 제4조에 따르면 일반직 공무원은 1급부터 9급 까지의 계급으로 구분하며, 직군(職群)과 직렬(職列)별로 분류 한다. 한편 특정직 공무원은 일반직에서 통용되는 계급 구분을 준용하지 않고 별도의 직위 체계 및 보수 체계를 적용을 받는다. 군인은 특정직 공무원으로 일반직 공무원처럼 숫자에 의한 분류가 아닌 계급으로 그 직급을 분류한다. 그래서 일반 공무원과의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임금 보수를 기준으로 보면 각종 수당을 제외한 순수 봉급을 놓고 봤을 때 소령 1호봉이 2,995,400 4급 1호봉이 2,870,000원으로 유사하다.[7] 소령과 일반직 4급 공무원 모두 승진 시 시간외 근무수당이 없어지며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는 점이 똑같다.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4급 공무원의 평균연령은 56세였다. 장교의 경우 평균 만 34~36세에 소령으로 진급하며, 동 계급 정체 기간은 5~10년 정도 소요된다. 요약하면 군대의 임금 보수 측면과 직급체계 모두 공공부문에서도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필자가 입대를 결심한 시점에서 이와 같은 통계자료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했으며, 이런 물질적인 보상 외 앞장에서 언급한 필자 개개인이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관이 더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보상이 주어짐으로써 안정적인 소득수준이 유지되며 예측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어 국가와 국민에 더 충성할 수 있음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앞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를 통해 필자들의 입대와 맞바꾼 가보지 못한 진로에 대해 아쉬움을 언급했었다. 각종 지표로서 나타나는 삶을 보았을 때 2010년대 초반 두 청년의 선택은 결코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고 본다. 유능한 인재들이 군에 더 들어오고자 하는 오늘의 상황 역시 같은 이유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미래를 준비중인 군대

앞서 군대의 주요 고용 형태가 장기복무를 기본 전제로 이루어짐을 살펴보았다. 플랫폼 노동을 기반으로 한 N잡러가   출현하고 국민 3명중 1명은 1년 뒤에 현재 하고 직업을 영속하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과 많이 다르다. 기업은 100마일 속도로 변하는데 정부조직은 30마일의 속도로 변한다는 앨빈 토플러의 예언이 적중한 것인가? 군대라는 조직이 공룡처럼 거대하여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사회가 변하고 있기 때문일까? 필자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혁신과 함께하지 않고 이를 배척하는 군대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


육군은 지난 2019년부터 '인공지능(AI) 면접관'을 간부선발에 도입했다. 나아가 2022년부터 간부선발 전(全) 과정에 AI 면접체계를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위탁교육 선발 및 부사관 장기복무 선발 과정에 이를 도입하고 있다. 타당도(Validity)는 측정하고자 하는 것을 실제로 측정했는가의 기준이 된다. 그중에서도 예측 타당도를 통해 어떠한 행위가 일어나리라 예측한 것과 실제 대상자 또는 집단이 나타난 행위 간의 관계를 측정한다. 주로 채용, 선발, 배치 등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며, 적성 및 면접 검사 결과가 좋은 사람이 실제 업무도 잘한다면 이는 높은 예측 타당도를 갖는다고 본다. 과거 전문 인사면접관의 능력에 100% 의지하여 인재를 뽑아왔던 군도 이미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예측한 훌륭한 군인의 자질을 지닌 사람에 관한 판단이 실제로  선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국방부 차원의 변화도 심상치 않다. 4차 산업혁명 과학 기술을 국방 전 분야에 적용하는 국방혁신을 통해 ‘디지털 강군, 스마트 국방’을 구현하고자 2019년 4차 산업혁명 스마트 국방혁신 추진단을 구성하여 각 군과 함께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초연결 · 초지능 · 초융합의 국방인프라 조성을 위한 기술 · 기반 혁신 분야, 투명하고 효율적인 국방운영 구현을 위한 국방운영 혁신 분야, 무기체계 지능화 · 고도화를 통해 미래전을 대비하는 전력 체계혁신 분야 등 3대 혁신 분야에 관련 과제 및 사업을 선정하여 예산을 반영하고 체계적 사업 관리를 하고 있다. [8]

<동명부대 무인 지뢰탐지 로봇활용 하 폭발물 제거 훈련>[9]


또한 대한민국의 인구구조의 변화는 군대의 입대 자원에도 영향을 직접 줄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3월 9일에 치러질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많은 정치인들이 여성 징병제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10]

"여성과 남성 모두가 함께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여성도 당당한 국방의 주역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에 남성과 여성이 모두 기초 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는 혼합병역제도에 관한 정치권의 주장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세 남성인구 추계와 병력충원 전망>[11]


여성 징병제와 관련한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에게 남성만 징병해야 하는지, 여성도 징병해야 하는지 물은 결과 47%는 ‘남성만 징병’, 46%는 ‘남녀 모두 징병’이라고 답했다. 특히 여성 징병제 도입에 관한 의견을 물은 여론조사에서는 징병 대상인 20대에서 찬성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 모두 징병’ 이라는 응답이 51%로 ‘남성만 징병(37%)’ 이라는 응답을 10% 포인트 이상 앞섰다.[12] 물론 여성 징병제는 아직은 정책 제안 수준이며,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헌법의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13]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정말 여성도 의무로 군에 입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를 정리해보면 우리 군도 기술의 혁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인력구조의 변화에 따른 입대 자원의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고용 형태 측면에서는 최근의 유동성과 자율성에 기반을 둔 흐름보다는 전통주의적 관료제 사회의 그것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의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군대의 고용형태가 장기복무 간부 중심으로 유지되는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민간 사회의 경우 개인의 이익 추구에 따른 자연스러운 이직으로 경력직 신입의 유입과 공개채용을 통한 인력 충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군대는 대체재가 없다. 군인과 유사 직종인 경찰관이나 해외 용병 경험이 있는 자를 현역 군인으로 채용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현역 군인을 대상으로 자유로운 고용 체계를 도입하면 계급 체계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군대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 각종 군사기밀에 대한 보안 유지의 어려움은 더 언급할 것도 없다.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군대를 둘러싼 사회의 환경은 변화 하였지만 (기술 및 제도의 변화) 군대의 존재 목적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영국의 공학자 프레데릭 란체스터는 상대방의 힘의 관계를 보여주는 미분방정식을 고안하였다. 이 방정식 중에서 많이 알려진 방정식은 란체스터의 제곱 법칙Lanchester's Square Law은 소화기(小火器) 같이 장거리의 무기를 사용하는 현대전을 묘사하기 위한 방정식이었다. 란체스터의 아이디어의 핵심은 “승리를 위해 전투력의 운용을 집중하라.” 였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란체스터방정식은 군용 M&S체계 및 전투효과 판단에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으며 전투력 집중의 원칙은 한국군의 교리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물론 여기서 제시한 전투력의 집중이 과거처럼 물리적인 공간에 전투원이 모여서 발생하는 집중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전투력 발휘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가용한 수단을 (인원, 장비, 물자 등) 시간 · 목적 · 공간 면에서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작금(昨今)의 인구절벽의 시대에 병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상군인 육군을 대폭 감소하고 대신에 최첨단 무기체계로 무장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최첨단 무기체계의 등장에도 인적자원을 기본으로 하는 지상작전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강조되고 있다.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이 이를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가 된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병사 2명을 납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당시 이스라엘은 지상작전 없이 고정밀 · 고위력의 무기로만 적의 지도부를 공격하여 작전을 종결하고자 하였으나 군사적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즉 레바논에 진입하여 헤즈볼라를 지도부를 무력화 시키고 무장해제 시키는게 전쟁의 궁극적 목적이었으나 실패하였다. 적대세력의 위협은 지상을 기반으로 하며, 이러한 위협을 제거하는 것은 대부분 지상작전 을 통해서 가능하며 지역을 지속적으로 통제해야 전쟁을 종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는 사회의 기업처럼 이익을 창출하는 집단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위협 상황을 가정하여 전투력을 육성하고 배양하는 조직이다. 이것이 군대가 장기복무제도를 기반으로 한 인력구조를 지속 유지하는 이유다.


기업은 더이상 노동자가 한 공간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지만, 군대는 그렇지 않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인적자원은 군대를 구성하는 핵심이며 미래 그 자체다. 종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으로 구성된 미래의 군대를 엿보곤 한다. 언젠가는 실현이 가능한 기술과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아직 영화 속처럼 100% 군인을 대체할 수 없으며, 실현 가능한 미래가 언제일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과 「인간의 조건」[14]

기술이 현재 존재하는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하는 미래를 그릴때 우리는 기계가 대체 할 수 없는 업무가 무엇인지 묻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어디에 “인간의 가치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이다. 시대를 앞서서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한 철학자가 있다.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58년 낸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적 삶을 세 가지 요소, '노동', '작업', '행위'로 나눈다.


노동

노예의 일. 인간이 스스로 생물학적으로 생존하고 종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 한 필수품들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 결과물은 오래 남아 있지 않고 즉시 소비되어 사라지며, 바로 추가로 생산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은 허망함을 주는 반복적인 과정이며, 생물학적 생존에 필수적이므로 끝없이 지속된다.


작업

장인의 일. 소비되어 사라지는 것을 생산하는 노동과는 달리, 세계의 일부가 되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물건을 생산하는 일이다. 독창적인 생각으로부터 원재료를 얻는 일을 거쳐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생산 프로세스를 뜻한다. 노동과는 달리 시작과 끝이 있으며 장인들의 제작 활동이나 예술가의 작품활동 들을 예로 들 수 있다.


행위

정치가나 시민운동가의 일. 말이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사람에게 전달하고 관계를 맺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들이 필수 불가결한 노동을 전담하기 때문에 귀족들은 이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의무복무 입대한 병사에게 군 복무는 위 개념을 적용해보면 노동 · 작업 · 행위 중 어디에 가까울까? 추계 전투진지 공사에 투입되어 민간인 통제구역에 위치한 거점상의 주요 교통호를 정비하는 김 일병은 단순하고 기계적인 서비스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 자리에서 소비되어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질 낮은 노동으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김 일병이 앞서 우리가 살펴봤던 군대의 존재 목적과 군 복무의 사명을 이해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그가하는 교통호 보수공사는 노동이 아닌 작업에 가깝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시멘트를 바르고 사대를 쌓는 수준을 넘어서 진지의 상태를 파악하고 더 전투력을 잘 발휘될 수 있도록 구상하는 단계로 나아간다면 이는 작업을 하는 인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업’이야말로 기계가 대체하기 어렵고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은 인간에게 남겨진 역할이라고 본다.


‘철드는’ 군인을 꿈꾸며

필자들에게는 각자 1살, 5살 된 딸이 있다. 어쩌면 약 20여 년 되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두 아이가 성인이 되어 의무복무 중에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는 미래의 환경은 예측할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과거의 성공 법칙은 더이상 보장되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곧 낡은 지식이 되니, 얼마나 아는가는 덜 중요해졌다. 시대의 변화를 읽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능력이 논리적 사고가 그래서 중요하다. 지식의 총량에 비교하면 각 개인 사이의 지식의 차이는 미미할 뿐이니까. 유리수로 비유하자면 분자는 예전과 비슷한데 분모가 턱없이 커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두뇌가 담을 수 있는 지식의 총용량은 결코 컴퓨터의 그것을 따라갈 수 없다. [15]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군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개인의 자질을 넘어서는 외부의 요인에 주목했다. 즉 강한 군대는 각개 전투원이 지닌 본질적인 강인한 자질도 중요하지만, 훈련이나 환경과 같은 외부 요인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타당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강한 군대에서 강한 군인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군대도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혁신의 물결을 결코 피해 갈 수 없다. 어쩌면 아직도 우리에게 군대는 낯설고 먼 존재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으리라 여겨지는 조직일지 모른다. 군대의 현실과 국민의 인식 사이의 간극을 줄여나갈 때 강한 군대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관건은 미래의 김 일병이 군대에 가서 단순히 ‘철’ 드는 노동을 넘어서 ‘철드는’ 작업을 하는 군인이 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오늘의 군대를 이끌어가는 우리 군인들에게 있다.

 


표지사진 출처
4차 산업혁명 걸맞게… 로봇·무인체계 끝없이 진화(국방일보 '20.11.23)
          

[1] [집중토론] 앨빈 토플러 신작 ‘부의미래’(매일경제, ’06.19.10)


[2] 행정자료를 활용한 「2019년 일자리이동통계」결과 (통계청, ’21.6.8.)


[3] 소득의 미래, 4장 노동자 필요 없는 기업들 p.106 (이원재, 2020)


[4] 소득의 미래, 5장 정규직 7.6퍼센트 진입을 위한 전쟁p.121 (이원재, 2020)


[5] 2021년 인사혁신처 직종별 공무원 봉급표 (http://www.mpm.go.kr/mpm/) 


[6] 이는 동시에 직업군인이 임용 평균연령이 민간의 청년의 그것보다. 평균 5세 이상 빠른 근속 기간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7] 소령1차 진급 시 만 34세 호봉은 소령 8호봉으로 봉급은 3,946,000원이다.


[8] 국방백서 2020 제4장 4차산업혁명 기반 디지털 강군 스마트 국방 구현


[9] 4차 산업혁명 걸맞게 로봇·무인체계 계속 진화 (국방일보 '20.11.23)


[10] 글을 작성중인 2021년 7월기준 여야 3명의 대선후보 유력 정치인들이 남녀공동복무제, 징모병혼합제 등의 정책제안을 국민에게 주장하고 있다.


[11]  20대 남성 인구 추계와 병력충원 전망 (중앙일보, '21.2.12.)


[12] 여자도 의무로 군대 가는 세상이 올 수 있는가? (서울경제, ’21.6.19.)


[13] 병역법(법률 제17684호) 제3조(병역의무) ①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대한민국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14] 이 꼭지는 소득의 미래, 18장 p.385~387 (이원재, 2020) 의 논리전개를 참고하여 작성함을 밝힘. ('노동', '작업', '행위'로 살핀 4차산업혁명과 인간)


[15]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고 2장 지식의 시대는 저무는데 (박형주,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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