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인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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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현재 존재하는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하는 미래를 그릴때 우리는 기계가 대체 할 수 없는 업무가 무엇인지 묻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어디에 “인간의 가치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이다. 시대를 앞서서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한 철학자가 있다.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58년 낸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적 삶을 세 가지 요소, '노동', '작업', '행위'로 나눈다.
노동
노예의 일. 인간이 스스로 생물학적으로 생존하고 종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 한 필수품들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 결과물은 오래 남아 있지 않고 즉시 소비되어 사라지며, 바로 추가로 생산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은 허망함을 주는 반복적인 과정이며, 생물학적 생존에 필수적이므로 끝없이 지속된다.
작업
장인의 일. 소비되어 사라지는 것을 생산하는 노동과는 달리, 세계의 일부가 되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물건을 생산하는 일이다. 독창적인 생각으로부터 원재료를 얻는 일을 거쳐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생산 프로세스를 뜻한다. 노동과는 달리 시작과 끝이 있으며 장인들의 제작 활동이나 예술가의 작품활동 들을 예로 들 수 있다.
행위
정치가나 시민운동가의 일. 말이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사람에게 전달하고 관계를 맺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들이 필수 불가결한 노동을 전담하기 때문에 귀족들은 이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의무복무 입대한 병사에게 군 복무는 위 개념을 적용해보면 노동 · 작업 · 행위 중 어디에 가까울까? 추계 전투진지 공사에 투입되어 민간인 통제구역에 위치한 거점상의 주요 교통호를 정비하는 김 일병은 단순하고 기계적인 서비스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 자리에서 소비되어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질 낮은 노동으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김 일병이 앞서 우리가 살펴봤던 군대의 존재 목적과 군 복무의 사명을 이해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그가하는 교통호 보수공사는 노동이 아닌 작업에 가깝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시멘트를 바르고 사대를 쌓는 수준을 넘어서 진지의 상태를 파악하고 더 전투력을 잘 발휘될 수 있도록 구상하는 단계로 나아간다면 이는 작업을 하는 인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업’이야말로 기계가 대체하기 어렵고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은 인간에게 남겨진 역할이라고 본다.
‘철드는’ 군인을 꿈꾸며
필자들에게는 각자 1살, 5살 된 딸이 있다. 어쩌면 약 20여 년 되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두 아이가 성인이 되어 의무복무 중에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는 미래의 환경은 예측할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과거의 성공 법칙은 더이상 보장되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곧 낡은 지식이 되니, 얼마나 아는가는 덜 중요해졌다. 시대의 변화를 읽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능력이 논리적 사고가그래서 중요하다. 지식의 총량에 비교하면 각 개인 사이의 지식의 차이는 미미할 뿐이니까. 유리수로 비유하자면 분자는 예전과 비슷한데 분모가 턱없이 커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두뇌가 담을 수 있는 지식의 총용량은 결코 컴퓨터의 그것을 따라갈 수 없다.
[2]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군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개인의 자질을 넘어서는 외부의 요인에 주목했다. 즉 강한 군대는 각개 전투원이 지닌 본질적인 강인한 자질도 중요하지만, 훈련이나 환경과 같은 외부 요인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타당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강한 군대에서 강한 군인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군대도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혁신의 물결을 결코 피해 갈 수 없다. 어쩌면 아직도 우리에게 군대는 낯설고 먼 존재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으리라 여겨지는 조직일지 모른다. 군대의 현실과 국민의 인식 사이의 간극을 줄여나갈 때 강한 군대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관건은 미래의 김 일병이 군대에 가서 단순히 ‘철’ 드는 노동을 넘어서 ‘철드는’ 작업을 하는 군인이 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오늘의 군대를 이끌어가는 우리 군인들에게 있다.
[1]
이 꼭지는 소득의 미래, 18장 p.385~387 (이원재, 2020) 의 논리전개를 참고하여 작성함을 밝힘. ('노동', '작업', '행위'로 살핀 4차산업혁명과 인간)
[2]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고 2장 지식의 시대는 저무는데 (박형주,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