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재현 Aug 03. 2021

'진짜진짜'어른은 아직이라고!

피터팬과 후크선장의 시선으로

피터팬과 네버랜드

어렸을 때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KBS에서 하는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 위해서 일찍 기상하던 기억이 있다. 한 편이라도 놓치는 날에는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의 대화에 함께하지 못하니까 기를 쓰고 만화를 챙겨봤었다. 피터팬도 그런 애니메이션 중 하나였다. 줄거리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된다.(한 명만 빼고) 웬디는 네버랜드에서 피터와 달빛 아래의 춤을 추면서 사랑에 빠지지만, 피터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평범한 아이인 웬디는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겠지만 피터팬은 그것을 거부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른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피터팬 증후군(Peter pan complex)이라고 한다.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 마이클 잭슨도 이 증상을 보이는 유명한 인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늘 자신을 네버랜드의 피터 팬이라 말하곤 했으며, 실제로 스스로 '네버랜드'라는 이름의 놀이공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6살의 나이에 형제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로 데뷔하여 죽을 때까지 슈퍼스타의 삶을 살다 간 마이클 잭슨, 다른 이가 바라봤을 때 모든 것을 다 이룬 것 같은 팝의 황제의 마음속에도 피터팬이 살았을지 모른다.

한 평생을 슈퍼스타의 삶을 살다간 마이클잭슨 [1]


후크선장과 똑딱악어

우리는 주인공 피터와 웬디 그리고 팅커벨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주요 등장인물을 종종 간과한다. 바로 후크선장이다. 왼손이 갈고리(hook)라 후크 선장이라 불리는 그는 피터팬의 영원한 숙적이며 만화의 메인 빌런이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한쪽 손과 함께 시계를 먹은 똑딱 악어 (Tic Tock Croc)의 배속에서 시계가 여전히 똑딱거리면서 악어가 나타났음을 알려주기에 그 시계 소리만 들렸다 하면 해적 선장답지 못하게 패닉에 빠져 자신의 부하를 애타게 찾는다. 선장으로서 위엄이 떨어지는 그의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후크선장이 만화 피터팬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어른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인공 피터팬이 영원히 소년이기를 바랐던 이유가 무엇일까 추측해 볼 수 있다.

똑딱악어에게 쫓기는 후크선장 [2]

가설 1. 피터팬이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는 후크선장처럼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유년시절에 종종 우린 빨리 어른이 되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며 살기를 원했다. 어리다는 것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으로 자주 해석된다.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권리의 그릇도 작아지기 마련이다. 가설 2. 하지만 네버랜드에서 피터팬은 능력과 함께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 과연 큰 매력이 있었을까. 어쩌면 그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채 살아가길 원하였을지 모른다. 가설은 경험적으로 검정되지 않은 일종의 예비적 이론, 혹은 둘 이상의 변인들 간의 관계에 대한 추측적 진술로 실증적으로 검증 가능해야 한다. 피터팬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가설은 굳이 뽑자면 일반화 및 계량화가 유의한 자연과학보다는 연구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반영되는 사회과학에 가깝다. 하지만 위 두 개의 가설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검증하는 것은 (통계적 추론 등) 어려우며 그냥 필자의 개똥철학으로 바라본 하나의 의견이다. 만화 피터팬에서는 어른이 되는 것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후크선장이 똑딱 악어에게 쫓기는 장면은 분명 웃음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어른이 되면 일어날 일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 악어 뱃속에서 똑딱거리며 울리는 시계는 시간 그 자체를 의미하고 악어가 후크선장을 좇는 모습은 시간이 우릴 먹어치우려고 하는 것을 묘사한다. (아니 잠깐, 만화 피터팬 사실 알고 보니 완전 잔혹동화였네.) 나도 피터팬의 입장이라면 어른이 되길 포기하고 행복이 가득한 네버랜드 속에서 안락한 삶을 영위하지 않았을까 자문해본다. 그런데 그러면 웬디는 어떻게 하지? 그녀는 평범한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랄 것이고 피터에게 사랑을 바라지만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다. 시작부터 끝이 보이는 사랑, 아니 사랑이라고 칭할 수도 없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의 무한한 가능성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어른이 된 다는 것

배우 권상우는 내 학창 시절의 최고 스타였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옥상으로 올라와!”라고 외치는 장면은 나의 올타임 넘버원씬이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배우 권상우 씨의 말이 인상 깊었다. 2008년 32살의 나이에 결혼과 함께 영화 주인공 캐스팅 제의는 점차 줄었다고 한다. 또래 다른 최정상 남자 연예인과 비교해보면 결혼이라는 선택을 조금 더 미뤘을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 연예인의 비슷한 사례로는 만 23세에 결혼한 배우 한가인 씨가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확실히 결혼하고 연예인으로서 인기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그 선택으로 인해서 너무 행복한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정상의 정점에 있었던 배우 권상우 씨는 결혼 후 달라질 그의 삶에 대해서 충분히 숙고했을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지금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물론 나에게 그는 훌륭한 어른이며 여전히 슈퍼스타이다.

언제부터 우린 어른이 되는 것일까? 법적으로는 만 19세 이상의 사람을 성인이라고 칭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미 훌쩍 지난 지 오래다. 우리는 언제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자각하는 것인가. 처음 술집에서 당당하게 식당 주인에게 민증을 제시하며 술을 먹을 수 있을 때? 아니면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사드렸을 때 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했을까?

정든 고향과 부모님을 떠나 만 19살에 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끝냈을 때일까. “음.. 아직 학생(사관생도)이니까 아직은 아니야.”그러면 24살에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첫 부임지 가서 30명이 넘는 소대원들 앞에 마주 섰을 때였을까? “소대원들이 나하고 한 두 살 밖에 나이 차이도 안 나니까 밖에 나가면 뭐 형이지 아직 어른은 아니야” 100명 정도 되는 중대원 앞에 섰던 30살에는? “에이 같은 90년대 생인데 그리고 만 나이로 치면 아직 같은 20대인걸. 그리고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 날을 지정했을 때 만 18세까지 어린이로 보았는데 당시 평균 수명을 고려했을 때 이를 환산하면 약 30세까지 어린이라고!”라며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아내에게 꺼내다 등짝 스매싱을 맞는다. 이런 어쩌지 끝이 보이지 않는데 다음에는 어떤 변명을 스스로에게 하려나.


초등학생 시절 누가 장래희망을 물으면 으레 다른 아이들처럼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 답했다. 그 시절에는 모두 그러하였듯이(?) 당연히 대학교는 하버드 아니면 스카이를 갈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조금 나이를 먹은 고등학생 때는 현실과 조금 타협해서 정의로운 검사가 되고 훗날에는 국회위원 되는 꿈을 꿈꾸기도 했다. 대학교는 스카이는 무리지만 in 서울 대학의 좋은 학과에 입학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육사생도가 되어 제복을 입은 군인이 되었다. 졸업을 앞둔 23살에는 이왕 군인의 길을 가기로 했으니까 장군이 되어서 사단장도 하고 참모총장도 하고 전역하고는 국방부 장관도 해야겠다 다짐하며 보병 병과를 선택했다. 그렇게 임관 후 약 8년의 시간이 지났고 결혼을 했으며 올해 딸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면 지금 나의 꿈은 무엇일까.

굉장히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아들이 되는 것이다. 물론 직업군인의 길을 걷는 모든 이처럼 상위계급으로 진급하는 것에 대한 원대한 꿈은 가슴 한편에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23살과 31살의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꿈이 결코 내 삶의 전부가 아닌 아주 작은 일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가정을 뒤로한 채 높게 진급을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밤낮으로 야근을 하는 삶을 꿈꾸지 않는다. 물론 이는 야근과 같은 힘든 업무를 피해 워라벨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며 지금 이 순간에도 국토방위를 위하여 헌신하는 군인들을 깍아내리는 것은 더욱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군인으로서 나의 업무에는 충실하되 다만 그것만을 너무 쫓은 나머지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태를 멀리하고자 함이다. 직업을 통한 일의 만족이 계급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군인으로서 사명을 다한 명예로운 순간에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비록 그 끝이 대통령이나 국회위원 또는 국방부 장관이 아니라고 해도… 글을 쓰는 지금 아가방에서 이제 막 백일이 되어가는 딸아이가 자고 있다. 아마 딸도 그런 아빠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진짜진짜' 어른은 아직 아니야.

나이를 먹어가면서 선택해야 하는 일은 점점 많아진다. 직장을 고르며, 첫 차를 고민하고 정착할 도시를 결정한다. 그리고 선택이 쌓여갈수록 점차 무한했던 가능성과 잠재력도 작아짐을 느낀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걱정이 늘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피 끓는 24살 소위 시절에는 GP든 해외파병이든 어디든 불러만 준다면 당장 뛰어들 수 있었다. 군인이라면 조국이 부름에 언제든 응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신념은 물론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이자 아빠로서 가정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부끄러운 마음과 동시에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모습이지 않냐며 스스로 위로한다. 위와 같이 명예로움과 동시에 멋진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도 한 번쯤 다시 고민해보는 순간이 늘어가겠지. 20대 초중반 미혼, 국가와 군에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면 좌고우면 하지 않고 무작정 뛰어들 용기가 있었던 그 시절을 종종 생각한다.


지금은 어떠한가? 대통령을 꿈꿨던 아이는 좋은 아빠와 남편이라는 목표를 이루기에도 삶은 퍽퍽하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꿈이 작아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는 희생은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20대가 가진 것이 무엇일까? 카뱅 통장에 잔고는 없어도 시간과 젊음이 넘친다. 반면 어른이 되면 주머니는 두둑해졌지만 늘 후크선장처럼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 똑딱 악어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꾸준히 달려야 한다. 그런 삶이 예견되지만 그럼에도 나는 후크선장이고 싶다. 가정에서는 가장이자 부대에서는 지휘관으로 부여된 역할에 책임지는 그런 어른이고 싶다. 무한한 가능성에 취해 성장과 선택을 기피하여 도망치기보다는 무서운 것은 무섭다고 인정하며 주변이에게 (1등 항해사 부하) 도움을 청하는 그런 사람이 더 어른스럽지 않은가. 우리가 가진 젊음을 맞바꿔서 원하는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어른이 되는 것은 그런 것이지 않을까… 이제 겨우 31살이 된, 어른인 척 흉내를 내보는 나는 생각한다. 생도 시절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한 예비역 대장께서 강연을 오신 적이 있는데 인상적인 말씀을 하셨다.


장군 : “생도들은 참모총장이 부럽나?”
생도들 : 예~ 맞습니다!
장군 : “나는 당신들이  부러운걸.  당신들은 참모총장이   있지만 나는 생도가 다시   없다네.”


이 말씀을 해준 장군님도 행복한 군생활을 하셨을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과 시간을 바꿔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나도 스스로 묻는다. 너 지금 행복한가? 물론!

아 잠깐잠깐 그런데 ‘진짜진짜’ 어른은 아직은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허쉬 초콜릿 우유를 마시던 중 오줌을 싸 잠에서 깬 딸아이 기저귀를 갈러간다.



배경 사진 출처 : https://disney.fandom.com/wiki/Peter_Pan_(character

사진 1 : https://webneel.com/daily/

사진 2 : https://www.pinterest.co.kr/pin/41552750309583869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