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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재현 Sep 05. 2021

군 복무의 희로애락

군 생활의 기쁨과 슬픔

미국에서 가장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업은?

미국의 대표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 통신은 2014년에 취업사이트 커리어캐스트(Careercast)가 선정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에 대해 소개하였다. 

<미국에서 스트레스 많이 직업군>[1]

당시 커리어캐스트는 200개 직업을 대상으로 매년 체력적 부담ㆍ마감ㆍ경쟁ㆍ 출장 빈도 등 총 11개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스트레스 지수를 산출하여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은 직업으로는 군인(84.72)을 1위로, 장군(65.54)을 2위로 기록했다. 1, 2위를 점한 직업이 모두 군인이라는 것은 저자들과 본서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의미가 크다. 1, 2위를 차지한 직업이 모두 군인이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미국과 대한민국의 문화적 차이는 분명 존재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상당히 참고할 만한 데이터다. 먼저 수치상으로 볼 때, 군내 신분,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군인이라는 직업군 자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해당 연구가 대한민국 군대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시사점이다. 미국이라는 국가와 우리나라와의 문화적 차이가 분명 존재하는 것에 대해 인정하나 직업의 특성 차이는 문화적 차이에 비해 덜 한 것이 사실이다. 


각 국가는 PKO, 다국적군, 군사협력 등으로 대표되는 국제안보협력 체제를 통해 수십 년 전부터, 국제적 안보 거버넌스가 유지 및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상호 조율과 동일시의 과정은 필수적이자 필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조금 확장하면, 미군의 스트레스 지수가 시사하는 바를 우리나라 군인의 스트레스에 적용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 군인 역시 많은 스트레스를 겪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징병제도를 감안하면, 한국군의 스트레스는 더 클 것으로 짐작된다. 본 장에서 다룰 역경이란 개념과 스트레스는 내포하는 의미가 매우 유사하다. 구체적으로 사전적 의미를 분석하면, 스트레스가 주(主)가 되는 여러 요소들의 합집합이 역경이 된다. 또한 역경은 시간적으로 스트레스에 선행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역경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이다. 스트레스의 사전적 정의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ㆍ신체적 긴장 상태.’이다. 이를 연계하면 역경이라는 처지나 환경에서 인간이라는 객체가 경험하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인 셈이다. 이처럼 군인이 겪는 스트레스, 조금 더 큰 개념으로 바라본다면, 경험하게 되는 역경은 타 직업군보다 그 정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군인은 직업군 중 가장 많은 역경을 겪는 직업이라면, 앞서 Soldiers are made, not born. 군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하였는데 역경이 그들의 창조주가 되는 것인가? 또, 그렇다면 군인은 직업군 중 가장 많은 역경을 겪는 직업인데, 군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연유에서 가장 많은 역경을 겪는 직업에 몸을 담고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군인이라는 직업에는 역경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이며, 만약 역경과 어려움만 가득한 직업군이 있었다면 그것은 진작 필연적으로 소멸되었을 것이다. 산행 중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은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군 복무의 역경이 많다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였을 때 얻을 수 있는 보람도 많다는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본 장에서는, 상기 제시된 군인이 겪을 수 있는 역경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군 복무 간 보람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 


역경과 보람이 말해주는 것

"인생에서 가장 큰 역경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또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위 질문은 우리에게 익숙한 질문이다. 생활 속 취업, 입학, 선발 등을 위한 면접에서 가장 고전적이지만, 가장 높은 빈도로 제시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면접자 입장에서, 면접 대상자에게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가? MZ세대의 많은 이들이 꿈꾸는 꿈의 기업,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차업체인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 역시 위와 같은 면접 질문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던 그의 면접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살면서 어떤 결정을 했는지, 또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내게 말해달라. 그리고 당신이 맞닥뜨렸던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말해달라.” 

일론 머스크는 진짜로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이유로 본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 공식적으로 단언할 수는 없으나 위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질문은 면접자의 삶에서의 역경, 보람의 순간을 통해 면접 대상자 삶의 전반을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로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역경과 보람이 한 사람의 삶을 대표할 수 있는 지표로 적용되는 메커니즘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A라는 사람이 면접에서 위 질문을 받았고, 답변을 했다. 면접자는 A의 답변을 통해 A의 삶이 어떤 환경 속에서 흘러왔는지 어느 정도 유추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역경을 A가 어떤 방식으로 극복했는지 알 수 있다. 한편, 보람에 대한 문답을 통해서는 A가 삶 속에서 성취한 것들에 대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A의 역량 역시 짐작할 수 있다. 동시에 A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판단도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역경과 보람’이 내포하는 의미의 스펙트럼은 크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음 질문을 던지고 싶다.                

“군 복무 간 경험할 수 있는 역경은 무엇이 있으며, 느낄 수 있는 보람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 군인의 삶에 대한 많은 가치와 정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역경일 수 있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보람된 일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성취에 불과할 수 있다. 이는 역경과 보람 모두 개인의 주관에 의존하며,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 조직 구성원 각자가 겪는 역경 혹은 보람에 대해 논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체를 통해 전체를 본다.”는 말이 있다. 모든 개인 서사를 기록할 수 없지만, 두 필자의 사례를 통해서 군 복무 간 경험할 수 있는 역경과 느낄 수 있는 보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앞서 다룬 바와 같이 역경과 보람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에, 다음의 사례가 모든 군인에게 보편타당하게 적용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님을 밝힌다.


역경 바람이 분다는 것은 정상이 가까워진다는 것

복무 간 하는 일이 모두 순조롭고, 쉽게 흘러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군인 역시 여느 다른 민간의 직업과 마찬가지로 역경이 따를 수밖에 없다따라서 군 조직 내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은 역경-> 극복-> 새로운 역경->또다시 극복의 반복을 겪는다. 군 복무 간 겪을 수 있는 역경은 크게 개인ㆍ관계ㆍ업무 측면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개인적 측면은 주관에서부터 사생활까지 망라하며, 관계적 측면은 군 조직 구성원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업무 측면은 임무수행 간 겪는 역경으로 정의하겠다.


첫째, 개인적 측면의 역경                    

아이러니하게도 두 필자가 경험한 개인적인 역경은 대부분 솔선수범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솔선수범은 대의적 모범 행동을 실천하며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행동으로서 정의 내릴 수 있다. 조직유효성으로서 직무만족과 직무 동기와의 영향관계에 있어서, 상급자(상관)가 솔선수범 행동을 실천할수록 부하직원의 직무만족도 및 직무 동기는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쉽게 찾을 수 있다. [3] 그렇기에 군 간부로 부하를 지휘 함에 있어, 솔선수범은 지휘의 이상향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21년 8월 30일,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전쟁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막을 내렸다. 20년이 넘는 이 전쟁으로 총 사망자 23만 명, 난민 500만 명, 재산은 한화 환산 1100조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다. 사진 한 장은 강한 파급력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전쟁에 관한 것은 더욱 그러하다. [4] 최근 뉴스포털 검색 1위를 차지한 어느 군인의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마지막 군인의 사진>[5]

주인공은 누구인가? 사진 속 군인은 개인 화기를 들고 공항 관제탑을 등진 채 걸어오고 있다. 그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계급이 높았다면 부하의 엄호를 받으며 수송기에 올라탔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사진 속 주인공은 크리스토퍼 도너휴 82 공수 단장이었다. 시민과 부하들을 먼저 보내고 마지막 비행기에 가장 늦게 올라탐으로써 그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떠나서, 이 사진 한 장은 솔선수범하는 리더가 던지는 무거운 신뢰감, 그리고 책임감을 보는 이에게 선사한다.


군인의 솔선수범은 작게는 단정한 용모와 정리 정돈부터 크게는 전투 시 부하보다 앞장서는 것 등을 포함할 수 있는 복합적인 개념이자 가치이다. 그렇다면 군인의 솔선수범이 어떻게 역경을 유발한다는 것인가.

기술한 바와 같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기본이 솔선수범임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는 당위성에 근거해 반드시 이행되어야 할 가치로 자리 잡혀있다우리는 모든 리더의 필수조건이 솔선수범임을 알고 있으며, 앞 장에서 모든 군인은 언젠가 리더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리더 역시 한 명의 인간이기에, 어렵고 힘든 순간에 다른 범인 (凡人)들처럼 편안함과 안일함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런 순간이면 이성과 감정이 서로 상충하기 시작한다. 두 필자 모두 장교 이기전에 한 명의 인간이기에, 솔선수범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종종 내적 갈등을 겪었음을 밝힌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편함이 아닌 옳음’을 추구하려는 자세로, 나태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분명 힘든 과정이었다. 솔선수범을 수행함에 있어 나태해지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어쩌면 이 연습의 과정 자체가 솔선수범을 행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또 다른 역경이 될지 모른다.


훈련 복귀 후 모두가 지치고 힘들 때 끝까지 남아서 재출동준비를 확인하는 A대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전투화를 손질하는 B 일병. 

연병장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서 주머니에 넣는 C 상사. 

제설 작전, 진지 공사 간 한 번이라도 더 현장에서 부하와 함께하는 D 중위. 


위는 크고 작은 솔선수범의 예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솔선수범을 실천하는데 필요한 노력의 정도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힘든 훈련 종료 후 편히 쉬고 싶은 순간에도 솔선수범을 위해 전투화를 손질하는데 필요한 노력과 평소 꾸준히 전투화를 손질하는 데 필요한 노력에는 차이가 있다. 그 노력은 솔선수범을 이행하는 자라면 마주하는 역경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역경이 극복된다면, 그리고 극복이 습관이 된다면, 군인으로서 최종 목적인 전투에 임했을 때, 다부동 전투의 백선엽 장군처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를 외칠 수 있게 된다. 즉 신성한 솔선수범이 필요한 순간에 이를 실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리더의 솔선수범은 조직원의 직무 동기와 만족도를 향상하므로 군 조직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둘째, 관계적 측면의 역경

관계적 측면에서의 역경은 앞서 「함께하는 전우, 간부와 용사」에서 다뤘던 간부의 딜레마와 일맥상통한다. 다음 사례를 살펴보자.「중대장 A는 다음 주 대대 전투력 측정을 앞두고 있다.   중대장 A는 대대장님의 지휘의도와 요구하신 훈련 수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반면, 중대원들의 훈련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여 추가적인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부하들은 지속된 훈련에 많이 지친 상태이며, 힘들어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중대장 A는 이 간극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상급자의 의도에 따라, 어떤 성과를 달성하고자 할 때, 휘하 부하들과 합을 맞춰 성과가 달성되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임무수행의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군대는 여러 개체의 군인이 모여 이루어진 조직이기에 모든 구성원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뒤따른다. 이처럼 상급자의 의도와 부여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부하들과 뜻을 맞추고, 부대를 지휘하는 과정에서 최상의 하모니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군 간부들은 이와 같은 관계적 측면에서 발생하는 간극 속에서 역경을 겪기도 한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역경을 극복하는 방법은 역시 ‘소통’이란 단어로 귀결된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도 원활한 ‘소통’을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앞서 ‘함께하는 전우’로 서로를 인식하는 것이 소통의 출발점이라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는 큰 틀에서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기에, 그 방향성 안에서 부대별, 주어진 상황별 발생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갈등과 역경을 해결하는 최적의 소통을 찾아야 한다. 더욱이 모든 군인은 상급자와 하급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간자적 위치를 갖는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군인은 중간관리자로서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소통의 능력을 갖추어 부대를 원활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시간과 노력의 투입을 요구하며, 때로는 분명 예상보다 많은 규모의 그것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관계적 측면의 역경을 극복하는 방법의 시작점이다. 또한 군인으로서 기본적으로 상 · 하급자 모두에게 최적해를 창출해야 하는 기본적인 본분을 이행하는 것일 뿐임을 강조한다. 


셋째, 업무적 측면의 역경

역경의 마지막 분류인 업무 측면에서의 역경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업무 측면에서의 역경은 일반적으로 맡은 직책에서 수행하는 업무의 강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업무 측면에서의 역경은 군 조직의 업무 특성에서 기인하며, 그리고 이는 군 조직 문화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군인의 업무는 대표적으로 훈련, 행정업무를 뽑을 수 있다. 이 업무를 통해 군은 군대의 존재 이유를 달성한다. 군대 존재의 주요한 이유는 전ㆍ평시 전투력의 건설 및 유지를 위함이다. 그리고 전투력은 유형 전투력과 무형전투력으로 나누어진다. 유형의 전투력으로 대표되는 화기의 개수, 전차의 대수 등은 하나의 物로 존재한다. 반면에 무형의 것들은 말 그대로 무형이기에 시작과 끝을 정하는 것이 어렵다. 


유형적 전투력 : 무기체계, 병력, 부대, 장비 등

무형적 전투력 : 교육훈련, 리더십, 정신교육 등


일반적으로 과학은 어떤 특수한 영역의 존재자(存在者)를 구성하는 원리를 탐구한다. 반면 철학으로 대표되는 형이상학은 영역적·부분적인 지식이 아니라 보편적·전체적인 지식을 구한다. 보통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다룰 때 더 어려움을 느낀다. 군사력의 건설에 두 형태의 전투력 모두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무형적 전투력을 다룰 때 손에 잡히지 않는 특성은 더 큰 역경을 유발하기도 한다. “훈련 준비는 끝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훈련 준비 기간은 시간의 개념이기 때문에 시작과 끝이 있다. 예를 들어 훈련 준비 기간이 3일이면, 시작하는 날부터, 종료되는 시점을 의미하기에 그 기간이 명확하다. 하지만, 훈련 준비 과정은 시작과 끝이 불명확하다. 훈련에 투입되는 병력, 장비, 물자 등의 모든 것은 훈련이 시작하기 직전까지도 계속 준비를 해야 한다. 


오전 9시 훈련이 예정되어 있는데 시작 5분 전 갑작스럽게 환자가 발생했다면, 그 환자를 조치하는 것도 훈련을 준비하는 과정일 것이다. 또한 훈련 간 운행될 차량에 대한 점검을 예로, 그것은 훈련 전ㆍ중ㆍ후 지속되며, 이 역시 시작과 끝을 정의하기 어렵다. 즉, 이와 같이 군대의 많은 업무들은 시작과 끝의 구분이 모호한 시간의 연속선상에 존재한다. 이러한 본질을 두고 볼 때, 군인들은 끝이 존재하지 않는 업무와 싸운다. 즉 군인들은 시작과 끝이 모호한 과업을 수행하며, 이는 역경으로 다가온다.


역경 속, 육체적ㆍ정신적 강함은 이런 역경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들을 통해서 불확실성을 지는 군 업무가 가져오는 역경에 대한 내성을 형성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주도적으로 업무를 통제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여기에서 말하는 역경을 극복하는 내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역경을 극복하는 내성은 그릿(GRIT)으로 칭해진다. 그릿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앤젤라 더크워스가 ‘Growth(성장)’, ‘Resilience(회복)’, ‘Intrinsic Motivation(내재적 동기)’ ‘Tenacity(끈기)’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이다. 그녀의 저서 그릿은 성공과 성취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투지 또는 용기를 뜻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열정과 근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함과 낙담하지 않고 매달리는 끈기 등을 포함한다. [6]

군 복무 간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역경의 상황은 어쩌면 군인에게 그릿 (GRIT)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보람 군 복무 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

군 복무는 단순히 역경이 주어지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아니다. 역경을 극복하면서 찾아오는 보람에 대해서 간과하면 안 된다. 보상에는 종류가 있지만, 어떤 일을 마치며 찾아오는 보람은 물질적 보상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앞서 역경을 개인적 측면과 관계적 측면, 업무적 측면에서 분류한 바와 같이 보람도 동일한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보람은 만족감을 통해서 발현되며, 역시 주관적인 개념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첫째. 개인적 측면의 보람

먼저 복무 간 느끼는 개인적인 보람이다. 군인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이미지인 ‘강인함’과 관련된 보람이다. 군인은 타 직업군과 비교했을 때 직업 특성상 월등히 많은 운동량과 활동량을 자랑한다. 이를 통해 강인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으며, 유명한 격언처럼 건강한 정신을 깃들게 해 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이라는 것은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 가장 어려운 것을 군 복무를 통해 달성할 수 있고, 이는 군인으로, 그리고 한 명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보람이 된다. 많은 전역자가 ‘군대에 있을 때가 제일 건강했는데’ 혹은 ‘군대에 있을 때 몸이 제일 좋았는데’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개인적 측면의 보람은 전우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에서 비롯된다. 필자들의 예로, 지휘관 경험을 통해 녹색 견장을 스쳐 지나간 모든 이들을 떠올리곤 한다. 중대장 임무수행 간 고된 훈련을 마치고 복귀했을 때, “중대장님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삐뚤삐뚤하게 적힌 Post-It과 캔 커피 한잔이 중대장실에 놓여있을 때, 전역 당일 전역병의 우렁찬 경례와 함께 “보고 싶을 겁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들었을 때, 힘들어하는 중대원과 면담 간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이후 차차 나아지는 모습을 바라볼 때 등. 이 모든 것은 군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전우애이자, 전우애가 만들어내는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관계적 측면의 보람

관계 측면에서의 보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다양성에 기인한 보람이다. 군대에서는 다양한 삶이 배경을 가진 동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개 보병 소대에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약 30명이 모여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다양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외모에서부터 재력, 학력, 성격 등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하지만, 소대라는 하나의 집합체로 존재하게 된다. 이 무궁무진한 다양성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보람,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간관계를 확장해 나간다는 것은 군 복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큰 보람이자 자산임에 틀림없다.


다른 관계적 측면에서의 보람은 앞서 다룬 다양성을 결합, 운용할 때 발생하는 보람이다. 군대는 신분과 무관하게 모두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되는 리더십의 장(場)이다. 병사 신분에서는 복무 간 분대장을 경험할 수 있고, 부사관 역시 분대장에서부터 반장, 부소대장, 훈련 중대장까지 리더로서 역할을 경험하게 된다. 장교 신분도 소대장에서부터 합참의장까지 넓은 범주에서 다양한 리더의 역할을 경험한다. 이처럼 리더는 팔로워의 존재를 기반으로 한다. 군 복무 간 느낄 수 있는 관계적 측면에서의 보람은 팔로워로부터 비롯된다. 사소하게는 리더로서 부하에게 행동의 변화나 군 복무에 필요한 부분들을 교육하고 지도했을 때, 변화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고 겪는 것이 있다. 더 크게는 부하들이 자신을 리더로서 인정하고, 존경하는 가운데 자발적 복종이 이루어지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 즉 상하동 욕 자승 (上下同欲者勝 )이 실현될 때가 군문에 들어선 이들에게 큰 보람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그 과정 속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전우애는 보람을 극대화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셋째. 업무적 측면의 보람

끝으로 업무 측면에서의 보람이다. 군 복무의 역경에서 다룬 바와 같이, 군 복무 업무의 본질상 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군인들은 인사 정책상 주기적인 부대 이동과 그에 따른 보직 변경은 필수적이다. 장교의 경우에 그 횟수가 더 잦아진다. 두 필자 모두 임관 후 5번의 다른 보직을 경험했다.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은 다른 제대에서 다른 직책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익숙해지고 전문성이 붙어갈 때 즈음이면, 언제나 새로운 과업들이 군인을 기다리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접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과 내가 이 일을 잘못해서 부대에 피해가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대대에서 지원과장 보직을 하던 중 장병들이 사용할 풋살장 신축공사 과업이 내려왔다. 1개를 건설하는데 수억 원이 들어가는 생각보다 큰 사업 액수에 한 번 놀랐고, 중간실무자가 추진하고 확인 및 보고해야 하는 과업도 많았다. 공사 진행 정도에 따라서 시공업자와 사용부대 회의도 자주 있었고 참모로서 지휘관이 의도를 업체 측에 전달하기도 하고 제한사항을 보고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다. 결국 멋지게 풋살장이 완공되었고, 그 공간에서 대대원들이 즐겁게 모여서 운동을 하고 전우애를 다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찬 순간을 경험했다. 만약 사단급 부대의 시설 장교로 근무했다면, 훨씬 더 큰 규모의 예산을 다룰 것이며, 예하 부대에 수십 개의 풋살장 및 편의시설의 시공을 책임지게 된다. 시설 장교가 직접 그 체육시설에서 운동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지만, 직접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의 전우들이 그것을 앞으로 오랫동안 잘 이용할 것이다. 계급과 직책이 올라갈수록 더 큰 임무를 맡게 되며, 많은 책임을 진다. 이것은 동시에 더 큰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독자들은 바닷가재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고 있는가? 바닷가재는 연하고 흐물흐물한 동물인데, 아주 딱딱한 껍질 안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 딱딱한 껍질은, 절대 늘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닷가재는 어떻게 자라는 것인가. 바닷가재가 자랄수록 껍데기는 그들을 더욱 조여 오고, 압박하고 극한의 스트레스 사항에 놓이게 된다. 이때 바닷가재들은 바위에 숨어서 새로운 껍질을 만든다. 이때 연약한 피부가 포식자에게 노출되는 위험을 맞이하지만, 그들이 탈피를 거부한다면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바닷가재가 또 자라게 된다면, 그 껍데기 역시 불편해질 것이다. 그러면 다시 바위 속으로 숨어 그 과정을 반복한다. 바닷가재가 자랄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성장할 때가 왔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 역경을 제대로 이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그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 속 많은 군인은 업무적인 측면에서 보람을 경험한다. 끝이 없는 업무에 마주할 때, 어떻게든 업무를 완성하려는 임무에 대한 의지와 업무 간 일련의 과정 속, 업무 숙련도와 효율성은 증가하며 업무를 관통하는 통찰력과 전문성도 향상된다. 숙련도와 전문성의 향상은 군 조직 안에서 자신의 역량 강화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 이는 곧 군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하나의 자기 계발이다. 결과적으로 업무에서의 자기 계발은 내적으로는 성취감과 자신감을 만들어내고, 외적으로는 군인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한층 향상할 수 있는 군 생활의 가장 큰 보람 중 하나이다.



역경과 보람의 환류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일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기쁨과 우리의 삶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살핀다. 집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어느 순간에 자신을 대변하고 규정짓게 되었다. 어쩌면 일은 일상이 되어 우리는 더 외면하지 않고 있는가? 군 복무에서 찾은 역경과 보람을 살펴보면 군인이라는 직업이 각개 군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깨닫고,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전해준다. 


처음 전투복을 입던 순간의 다짐을 생각해보자. 군 복무가 아무리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어려운 근무여건 속에서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보람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군인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본 서의 앞면 표지는 책의 주체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거친 원석을 잘 다듬고 제련하여서 보석이 되어가는 과정이 군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생각에서 선정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크게 군대란 무엇이며, 그 속에 존재하는 개체의 시각에서 군인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본 장에서 다룬 군 복무에서 겪는 역경과 보람은 실제 복무 간 마주하는 역경과 보람 중 지극히 작은 예시에 불과하다. 지금 내 옆의 전우 역시 역경과 보람의 반복을 경험하고 있고, 우리의 선배, 우리의 후배 군인 모두 지금 우리가 느끼는 역경과 보람을 마주했었고, 언젠간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역경과 보람은 개인에게 환류됨을 넘어,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사에 상존하듯, 군인의 복무 간에도 지속적인 환류를 거듭할 것이다.


<배경 사진 출처>

더위에도 빗속에도… 전투훈련 쉼 없다 (국방일보, ’ 21.5.17.)


<각주 및 출처>          

[1] 미국 스트레스 직업 1위는 군인(2014.1.10)


[2] 이데일리, 머스크 테슬라 CEO 면접에서  물어보는 질문은? (2017.2.14)


[3] 상사의 솔선수범 행동과 조직유효성 (이춘우, 한국 인사조직 학회 , 2009)


[4] 1969년 Edward T Adams가 촬영한 Saigon Execution(사이공 처형식) 사진은 그 해 퓰리처 상을 수상하였고, 미국 내 반전운동을 촉발하여 결국 미군의 베트남 철수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5] 아프간전 마지막 미군은 중무장한 투스타 백전노장 (연합뉴스, ’ 21.8.31.)


[6] 더크워스는 2013년 TED 강연에서 그릿을 처음 소개했는데, 이는 재능보다 노력의 힘을 강조한다. 즉, 평범한 지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도 열정과 끈기로 노력하면 최고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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