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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재현 Jun 24. 2024

군인, 박사과정 대학원생 그리고 가장(3)

"성공하면 졸업, 실패하면 수료아니겠습니까?"

https://brunch.co.kr/@uce03211/56

(지난글에 이어서…) 정신을 차려보니 박사과정에 입학한 지 벌써 한 학기가 지나갔습니다.

대학원 첫 학기 동안 아래의 의식적 흐름을 경험했습니다.


 1. (‘23년 12월 합격 ~ 2월) 기분 좋음 +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원을 다닐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
 2. (‘24년 3월) 퇴근하면 완전히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는 실체가 있는 현실이 되었고
 3. (‘24년 4 ~ 5월) 막상 해보니 할 수 있겠는데? (가끔씩 할 만한데?)
 4. (‘24년 6월) 학기가 끝나가니, 어라 벌써? 난 아직 더 배워야 하는 것 같은데
 5. (지금) 종강 후 수업이 없으니, 아 너무 좋다..ㅎㅎ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학부와 석사과정까지는 일정한 커리큘럼을 잘 따라가면 졸업이 보장되어 있었는데, 박사과정은 정말 막막하더군요. 단순히 수업을 듣고 과제를 제출하는 코스워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논문을 어떻게 작성할 것인가? 연구질문 및 주제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한 학기였습니다. 다음은 제가 지난 한 학기 동안 KAIST에서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느낀 점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1. 다양한 대학원 입학 동기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에는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이 주를 이루는 대학원입니다. 학우들의 연령 폭도 비교적 다양한데, 석사를 마치고 바로 취업과 박사과정을 병행하는 학생도 있고(20대 중후반), 박사학위가 있으며 직장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직위가 있음에도, 다시 석사과정으로 입학하여 공부를 하고 계신 분(40대 후반 ~ 50대 초반)도 있습니다. 저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저와 완전히 다른 분야에 계신 학우들을 만나면 먼저 다가가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교류하고 있습니다. 학우들에게 왜 본 대학원에 진학했는지 인터뷰(?)를 해보면 아래와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 본인이 공부하고 있는 분야(주로 논문 주제)에 대한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서 입학
나. 특정 분야에서 직장 외에서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데, 해당 분야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음
다. 더 좋은 조건으로 커리어 이직을 위해서 학위를 취득하고자 입학
라. 졸업 학부나 석사보다 더 좋은 학벌을 가지고 싶음 (A.K.A. 학벌세탁) 
마. (기타) 정신을 차려보니 대학원에 와 있더라..? 잉..?


그러면 나는 어디에 속할까? 스스로 자문해보니, 앞서 언급한 입학 동기 모두 일정 부분 해당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작년에 대학원 입학 자소서를 작성하고 2차 면접 시에는 교수님들께 학업과 연구에 대한 열정이 가장 우선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원래 서로 주고받는 win-win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겠지요. 학생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학교는 연구실적도 만들고 (또 학비를 통해 수입을 얻고…). 학생 개개인별로 대학원 입학 동기는 이처럼 다양하며, 어느 하나에만 속하지 않고 그 어느 중간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2. 인적 네트워킹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의 장

우리 사회에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구나 느끼는 지난 학기였습니다. 저와 같이 입학한 대학원생(석·박사과정) 학생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 법조인, 중앙부처 공무원, 의료계, 언론인, 정출연 연구원, 대기업 및 스타트업 사원 등

특수대학원의 경우 풀타임 전일제 학생과 직장인의 비율이 약 8:2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입학 기수별 상이할 수 있음) 풀타임으로 공부하는 박사과정 학우님들도 입학 이전에 각자의 커리어를 가지고 계셨으며, 입학 후 풀타임으로 전향하거나 입학 전에 결심을 하고 소속 직장을 그만두고 전일제 학생으로 등록하신 분도 여럿 계셨습니다. 참고로, KAIST의 경우 군학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정원의 5-10% 내외로 현역 군인의 정원 외 입학을 허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문술미래전략대학원에는 대전, 계룡, 세종권 근무하는 군인들이 재학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세요^^) 저는 현역 군인이다 보니까, 육사사관학교 4년을 포함하면 거의 15년 동안 군 조직 내에서 커리어를 쌓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변 인맥이 아무래도 국방 분야 종사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환경과 교류하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다.” (존 맥스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자신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대학원 진학을 개인적인 인적 네트워킹 외연 확장의 기회로 삼고 싶었습니다. 소셜 네트워킹 부분도 학교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능한 학교 행사에 참여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 중인 학우들과 교류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인사이트를 얻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퇴근 후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친해진 학우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같은 교수님 랩실에 소속된 학우들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연구 주제가 겹치거나 서로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러한 대학원 학우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은 직장 동료 모임과 다르게 이해관계를 벗어난 인적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같은 직업군과 직장을 공유하는 사이면 상하 관계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어서 교류에 조심스러운 점이 있는데, 학업을 목적으로 만난 사이다 보니 나이와 사회적 위치 등을 떠나서 친밀한 교류가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직장인이 주를 이루는 대학원의 경우 이러한 인적 네트워킹의 기회 역시 혜택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단순히 특정 분야에 아는 지인이 한 명 늘었다가 아니라, 다학제적 융합학문을 추구하는 대학원의 설립취지와도 잘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3. 대학원은 내가 중심을 잡고 연구하는 곳

직장인 중심의 대학원에 입학하면 다양한 입학 동기를 가진 여러 학우들을 만나서 인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직장인 중심의 대학원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입니다. 이곳에서는 직장과 학업의 병행에서 오는 다양한 제한사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시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야간 수업이 있는데, 직장에서 회식에 참석해야 한다. 수업 참석에 지장이 생긴다.
나. 0월 0일에 출장(외근)을 나가야 하는데 그날은 000 00 과목 수업이 있는 날이다.
다. 퇴근하고 과제를 하려고 했는데, 직장 동료(상사)가 같이 한잔하고 들어가자고 한다.
라. 주말에도 수업이 종종 있는데, 가족(자녀 등)과의 약속이 있다.
마. 시간을 마련해서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이미 직장에서 에너지를 다 써서 몸에 힘이 없어 의욕상실 


여기에 일도 공부도 그리고 가정생활도 다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불안감은 기본(default)으로 깔고 갑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의무감에 일도 공부도 가정생활도 마치 자동운전(또는 자동사냥) 모드처럼 해치우는 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우리가) 스스로 원해서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는 사실입니다. 개개인별로 구체적인 입학 동기가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입학 전에 개인이 품었던 처음 마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에서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 扮)이 부패해가는 대통령(이성민 扮)을 보며 이렇게 묻습니다. “각하, 왜 혁명했습니까? 왜 우리가 목숨을 걸고 혁명했습니까?” 이 질문은 단순히 과거의 혁명을 회상하는 것 이상으로, 현재의 부패와 타락을 꼬집는 강력한 경고였습니다. 김규평의 질문은 대통령의 초기 이상과 현재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며,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혁명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혁명(대학원 입학)의 목표는 단지 권력(네트워킹, 학벌상승)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부패한 체제를 청산하고 국민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연구, 학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대학원 입학 초기의 목적을 잃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자신에게도 이러한 자문이 필요합니다. “왜 대학원에 입학했습니까? 왜 우리가 퇴근 후에도 공부하고 연구했습니까?”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와 목표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현재의 자신이 그 초심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성찰해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혹은 사회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입학한 것이 아닙니다. 깊이 있는 연구와 학문적 성취, 그리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입니다. 이를 잊지 않고 다시 초심을 되찾아야만, 학업과 연구에 진정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 속 한 장면>

솔직히 이 세상 어디에 바쁘지 않은 직장인(월급쟁이)이 있겠습니까? 사실 직장인들 대다수는 본인이 원하는 바를 우선하기보다는, 소속 조직 또는 다른 사람(주로 상급자)이 생각하는 어떤 무엇을 이루기 위해 일과 중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하루 종일 다양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퇴근 후 집에 오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습니다. 저도 퇴근 후에 과제 레포트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아 하기 싫다… 그래도 학생이니까 해야지.. 이와 같은 감정을 겪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과제 작성을 위해서 읽어야 하는 논문이나 아티클이 거의 대부분 영문 원서로 작성되어 있으니까 정말 눈에 안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내일 출근을 일찍 해야 하고, 또 과제는 이번 주까지 제출해야 하고 이런 상황의 반복이면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이건 참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저보고 대학원에 가라고 누가 등 떠민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단돈 1원도 받은 적도 없고요. 개인의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내가 가진 자원(시간, 돈)과 열정을 연료로 삼아서 퇴근 후 학교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대학원 수업은 일종의 퇴근 후 취미 같은 거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공부나 연구는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당연한 말을 잊지 않으려고 습관화하려고 마음을 먹으려고 합니다. 결국, 대학원은 내가 중심을 잡고 연구하는 곳입니다. 친목 도모나 네트워킹을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를 하기 위해서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나 학부생처럼 누군가 정해준 길을 시키는 대로만 따라가면 되는 곳이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연구 주제를 설정하고 공부해서 지도교수를 설득하고 때로는 랩실 동료들과 협업을 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처럼 직장인이 주로 모여 있는 특수대학원 소속의 학생들이라면, 이 당연한 사실을 더욱 잊지 말고 스스로 중심을 잡고 연구를 해야지 언젠가 ‘졸업’할 수 있겠지요.


어차피 성공하면 졸업, 실패하면 수료 아니겠습니까? 공부가 힘들고 지칠 때면, KAIST 박사과정 대학원생답게 기왕이면 ‘연구하자’라는 멋진 표현을 쓰고자 합니다. 직장에서의 피로함과 기타 여러 스트레스 요인으로 공부건 뭐건 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스스로 이렇게 자문해야겠지요? “당신은 왜 대학원에 입학하셨습니까? 왜 우리가 퇴근하고 공부하고 있습니까?”



4. 주변(가정)의 도움과 지지의 필요

개인적으로 생각했을때, 대학원 공부와 직장을 병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주변의 도움과 지지입니다. 직장 생활과 학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시간 관리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큰 부담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족의 이해와 응원은 큰 힘이 됩니다. 가족으로부터 배려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있다면, 보다 안정된 마음가짐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 격려와 지지는 어려운 시기에 큰 위안이 됩니다. 제 경우 주말에도 과제나 레포트 작성으로 늦은 밤까지 공부해야 할 때, 아내가 저의 상황을 이해하고 지지해었기에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족이 함께 목표를 공유하고 응원해주는 것은 동기부여에 큰 도움이 됩니다. 가족이 서로의 목표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는 모든 구성원이 성장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자가 생각하는 미래를  공감하고 또 적극적으로 지지해줄 때 학업의 성과는 극대화 됩니다. 주변(가정)의 도움 없이는 직장과 학업의 균형을 맞추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주변의 지원은 단순히 물리적인 도움이 아니라, 심리적인 안정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저녁 식사 준비를 대신해주거나,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나눠준다면 그 시간만큼 더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며, 고통의 부담을 수반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 한정된 그 시간을 가족이나 중요한 다른 이가 아니라 학업을 하는데 할애해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 요인이 됩니다. 온전히 학업에 집중해도 힘들 수 있는 대학원 과정을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면서 하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가정의 도움과 지지는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가족의 응원과 지지 없이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성공적으로 해내기 어렵습니다. 가족이 함께 목표를 나누고, 서로를 응원하며,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서, 함께 성장하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가정의 도움 덕분에, 대학원 박사과정 첫 학기를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첫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한다면 끝까지 해낼 수 있을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이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갚아나가야겠지요?

 

<그림 출처>

표지 배경 : https://www.armytimes.com/news/your-army/2023/06/02/more-recruits-eligible-for-army-pre-boot-camp-study-fitness-courses/

영화 '남산의 부장들' : https://www.netflix.com/kr/title/81259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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